"곰팡이 핀 쓰레기 먹고, 연탄집게로 맞고..6년간, 우리 남매는 목사님의 '노예'였다"

입력 2010. 8. 11. 09:43 수정 2010. 8. 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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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홍현진 기자]

"O교회에서 계속 때려서 살 수 없어서 도망쳐 나왔다."

2009년 12월 20일.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소년이 인천의 한 가출청소년 쉼터를 찾았다. 영하를 웃도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아이는 반팔 차림이었고, 상의는 코피로 얼룩져 있었다. 입소 동의서를 받아든 아이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번호, 그리고 입소사유를 제외한 모든 칸을 비워놓았다. 혹시라도 O교회 A목사에게 연락이 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O교회에서) 나올 때는 잡히면 그냥 차에 뛰어들자,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O교회에 있으면) 그냥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요."

지난 7월 26일 < 오마이뉴스 > 기자와 처음 만난 민수(가명, 15세)는 가출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왜 민수는 그토록 O교회에서 나오고 싶었을까. 왜 민수의 집은 O교회가 되었을까.

지난해 12월 20일 민수가 작성했던 쉼터 입소동의서.

ⓒ 홍현진

연락 끊은 아버지, 아이들은 여 목사의 위탁남매로

민수·민영(가명, 16) 남매가 A목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4년. 민수는 "어느날 A목사가 찾아와서 할머니에게 '우리 교회에 다녀라. 그러면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고 밤까지 안 돌아다닌다'고 했고, 그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A목사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민수가 초등학교 2학년, 민영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민수 남매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민영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K씨가 "사고를 쳐서"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밤 12시까지 떡볶이 장사를 하면서 두 남매를 키웠고, 아이들은 밤 늦게까지 시장을 배회하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2007년, 민수 가족이 A목사가 운영하는 O교회 근처로 이사 가게 되면서 민수 남매는 아예 교회에서 먹고살다시피 하게 됐다. 민영이는 "당시 할머니는 안 가려고 했는데 A목사가 '새벽예배도 드려야하고 아이들 공부도 더 봐 주겠다'면서 계속 (교회) 옆으로 오라고 해서... (이사를 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A목사가 민수 남매의 위탁모가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친가정에서 양육될 수 없는 아동을 일정기간 동안 양육하는 위탁가정에는 아동 한 명당 10만 원 정도의 가정위탁양육보조금이 나온다. 이미 민수 남매 앞으로는 2004년 12월부터 기초생활수급비도 지급되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A목사의 겉모습은 '길 잃은 양'을 돌봐주려는 훌륭한 성직자였다.

그런데, O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A목사가 종종 민수와 민영이를 때렸고, O교회 근처에 살기 시작하면서 '체벌'의 정도도 심해졌다고 한다. 민수 남매는 "A목사뿐만 아니라 A목사의 남편, 딸, 그리고 A목사와 함께 살고 있는 조카까지도 우리를 때렸다"며 "거기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 맞아봤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영이의 증언이다.

"겨울에 교회가 연탄을 썼어요. 2층 교회였는데 아저씨가 차에서 연탄을 내려주면 저희가 2층까지 (연탄을) 가지고 가서 연탄불을 피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희가 자고 있는데 A목사가 저희를 깨워서 연탄 있는 데로 데리고 갔어요. A목사님이 거기 고무장갑이 있었는데 연탄가루가 묻었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왜 거짓말 하냐면서 연탄집게로 계속 머리를 때려서 피가 터져서 옷이 다 (피로) 물들었어요. 제가 그 때 하얀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안경이 살짝 깨지면서 안경테에도 피가 들어갔어요."

민수의 팔. A목사에게 가위로 찔려 생겼다는 상처(좌)와 포크, 젓가락으로 찔려 생겼다는 상처(우).

ⓒ 홍현진

목사에게 맞다 ... "쇠몽둥이, 망치, 가위 등 손에 잡히는 게 '무기'"

아이들은 A목사가 자신들의 뺨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화가 날 때면 A목사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연탄집게, 쇠몽둥이, 각목, 등산지팡이, 망치…. 아이들 입에서 나온 '체벌의 도구'들이다. 민수는 자신의 양쪽 팔에 난 상처를 하나하나 짚으며 "A목사가 가위, 젓가락, 포크로 찌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체벌'을 하게 할 때도 있었다.

"새벽예배 때 졸면 토끼뜀 100번, 엎드려뻗쳐 30번 하게 하고 기도소리 크게 안 하면 학교를 안 보냈어요. 한 번은 새벽예배 때 졸았다고 부엌에 가서 서로 싸대기를 20대씩 때리게 했는데, 서로 미안해서 살살 때리면 다시 처음부터 때리게 했어요. 서로를 더 세게 때리게 했어요."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민영이가 눈물을 흘렸다. "청소를 안 했고, 새벽예배 때 졸았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체벌의 이유였다.

두 남매는 A목사 가족에게 매를 맞아 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 계양구 Y정형외과에 보관돼 있는 지난 2009년 2월 16일자 민수의 초진차트에는 '누나에게 벌로 맞은 후 (팔을) 전체적으로 사용 못함'이라는 문구가 기록돼 있다.

"B누나(A목사의 조카)가 제가 민영누나한테 계속 까분다면서 A목사님 나가시고 나서 저녁 때 저를 엎드려뻗쳐 시키고 쇠몽둥이로 계속 때렸어요. 제가 너무 아파서 토하는 척했어요. 팔이 너무 아파서 건드리기만 해도 아팠어요. 그러니까 B누나가 팔 나으면 다시 때린다고..."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던 민수는 "민영 누나가 말하면 안 돼요? 제가 마음이 약해가지고..."라며 말을 잠시 멈췄다 다시 이어갔다.

"팔 다 나으면 B누나가 때린다고 해서 그 때 가출했어요. 그리고 경찰에 걸려서 들어왔는데, 계속 거기서 밥 먹는 것도 싫었고 맞는 것도 싫었고 일하는 것도 싫어서 또 가출을 했어요."

2009년 2월자 민수의 초진차트. '금일 누나에게 벌로 맞은 후 (팔을) 전체적으로 못 사용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민수는 B누나가 자신을 쇠몽둥이로 때려서 팔을 다쳤다고 진술했다.

ⓒ 홍현진

"맞는 것보다 곰팡이 핀 음식쓰레기 먹는 게 더 싫었어요"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건 '밥'이었다. 민영이는 "맞는 것보다도 밥 먹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2일 민수가 세 번째로 청소년 쉼터를 찾았을 당시 상담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A목사 가족과 민수 가족은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는데 민수와 민영에게는 다른 사람들 밥 2배의 양을 (주면서) 쉰 김치와 비벼서 개밥처럼 준다고 함. (밥을) 다 못 먹으면 '음식 남기는 것은 죄악'이라며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본다고 함. 한 번은 누나가 (밥을) 몰래 버렸는데 음식물쓰레기 통에서 곰팡이 핀 밥을 가지고 (와) 끝까지 먹였다고 함.

민영이는 "정상적인 밥이 아니라 고기도 살짝 맛이 간 것, 쉰 것을 커다란 양푼에 비벼주면서 먹으라고 하다 보니 밥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버린 밥'이 발각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 번은 제가 양말 안에 밥을 넣어서 버렸어요. 숨길 데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A목사에게) 발각돼서 양말 안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라고...(했어요). 바가지에 물을 담아서 양말을 빨아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라고 하고, 뱉어내면 또 다시 먹게 하고..."

민영이는 "학교에 있다가도 밥 버린 게 발각되면 다시 교회에 가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와야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민영이는 "(A목사가) 항상 오이지에 밥을 비벼 줬다"며 "오이가 정말 싫다"고 말했다. 민영이는 지금도 오이지 냄새만 맡아도 그날 먹은 음식을 전부 토해낼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민수가 쉼터 상담원에게 보낸 문자.

ⓒ 홍현진

주민들의 증언 "애가 노비도 아니고"...'아동학대'로 A목사 신고도

2009년 12월 20일 쉼터 첫 입소 이후 민수는 사흘 만에 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사흘 안에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 쉼터의 규정 때문이었다. 당시 쉼터의 상담기록에 따르면, "(민수를 데리러 온 A목사가) '민수가 교회 헌금을 훔치는 등 근본이 글러먹었다'는 등 민수의 행동 및 성품에 대해 부정적으로 계속 이야기했다"고 적혀있다. 민수는 그로부터 사흘만인 지난해 12월 26일, 그리고 올해 6월 22일 두 차례 더 교회를 '탈출'해 쉼터를 찾았지만, 이 역시 '불발'로 끝났다. 그 사이 가출도 10여 차례 있었다.

지난 7월 9일. 민수는 네 번째로 청소년 쉼터를 찾았다. 쉼터를 처음 찾았던 지난해 12월에 비해 민수는 더 말라있었고 머리를 흔드는 등의 운동틱과 말 막힘, 말더듬 등과 같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계속 눈치를 살피는 등 불안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당시 민수의 상담기록이다.

-민수가 자유롭고 싶다고 쉼터에 보내달라고 하자 A목사가 "20세가 되기 전까지는 너희는 자유가 없다, 노예다"라고 말 함

-자신이 교회에 있으면 종이 된 거 같다고 말함

-제발 자신을 교회로 다시 돌려보내지 말라고 함

-자신은 교회만 아니면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림

반년 넘게 민수를 지켜봤던 쉼터의 박아무개 상담원은 지난 7월 31일 < 오마이뉴스 > 와 한 통화에서 "아이(민수)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면서 "쉼터에 있으면 너무 좋아하고 안정적인 걸 보면서 분명히 (위탁가정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상담원은 특히 "위탁모(A목사)는 계속해서 아이(민수)의 비행을 이야기 하는데 아이의 비행은 가정의 문제고 사회의 문제"라며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는 맞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이제 민수는 다시 교회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연락이 끊겼던 친부모를 찾게 됐기 때문. 지난해 11월부터 할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민수의 삼촌이 A목사로부터 갑자기 '민수가 가출해서 인천의 어느 쉼터에 있으니 찾으러 가자'는 전화를 받고는 이를 수상히 여긴 것.

쉼터 상담원을 통해 민수 남매의 상황을 알게 된 삼촌은 곧바로 민수의 친부모를 수소문해 이 사실을 전했고, 지난 7월 15일 민수의 친부모는 즉시 쉼터와 교회에 들러 아이들과 할머니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7월 28일, 민수의 부모와 함께 민수 남매가 살던 동네를 찾았다. "A목사가 교회 안에서 남들 안 볼 때만 때려서, (A목사가) 때리는 걸 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아이들의 증언에 따라, 당시 O교회를 다녔던 한 신도를 찾아 나섰다. 민수 부모를 만난 그 신도는 "애들이 늘 걱정되더라, 내가 (속이 상해서) 환장하겠어. 말로 할 수가 없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보기엔 애들이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새벽예배 때 존다고 발로 걷어차고, 때리고, 욕하고, 혼내고. 뺨때리는 건 예사고, 일도 그렇게 많이 시킬 수가 없어. 청소하고, 짐 나르고, 수틀리면 학교도 못 가게하고. (교회) 밖에도 잘 못 나가. 딱 시간 정해놓고 그 시간에 오라고 해."

이 신도는 "A목사가 아이들에게 썩은 밥을 먹이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설거지를 하려는데 곰팡이 핀 썩은 밥이 있기에 버리려고 했더니, A목사가 '다 쓸 데가 있어'라면서 그 밥을 아이들에게 비벼 줬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신도는 "애들보다 할머니가 더 불쌍하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거기 아니면 애들 공부시키기 어렵다고, 거기에서 나오면 죽는 줄 알고, 애가 잘못하면 (A목사에게) 가서 빌고, 수급비 다 뺏기고"라며 답답해했다. 아이들도 기자에게 비슷한 증언을 했다. 다음은 민영이의 말이다.

"저희들 관리를 잘 못했다고 (A목사가) 할머니한테 X년이라고 욕하고, 손들게 해서 벌세우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50이 넘었는데, 토끼뜀 100번시키고, 민수 가출 못하게 줄넘기로 할머니와 민수 손목을 묶기도 했어요."

O교회 인근 시장에서는 지난해 2차례에 걸쳐 A목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던 정아무개(46)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정씨의 아들과 민수는 당시 같은 학교 친구였다. 정씨는 "민수가 상처가 난 걸 보고 화가 나서 계양경찰서에도 신고하고 민수 담임선생님한테도 전화하고 근처에 있는 상인들한테도 (민수의 상처를) 다 보여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상황에 대해 민수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A목사가 갑자기 돈이 사라졌다면서 저보고 가져갔냐고 그러더니 들고 있던 가위를 가지고 팔을 찔렀다"고 기억했다.

정씨는 "애가 무슨 노비도 아니고, 무슨 감옥도 아니고, 거기(교회)서 나오지를 못하더라"며 "몰래 나와서 나한테 (교회에서) 맞는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민수가 대학생 누나들(B조카, A목사의 딸)한테 쇠몽둥이로 맞았다면서 온 몸에 피멍이 든 적이 있었는데, 우리 아들도 봤고 다른 친구들도 봤다"며 "밥도 큰 그릇에 말아서 개밥처럼 주는 걸 나도 보고 애들도 봤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정씨는 "그 때 계양경찰서에 신고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기에 다시 전화했더니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사건이 넘어갔다"며 "내 힘으로도 한계가 있더라"고 회고했다. 인천 북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지난해 5월과 7월 O교회에 조사를 나와 A목사 가족의 '아동학대' 사실을 일부 확인하고 '경고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체벌의 정도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해 A목사 가족으로부터 민수 남매를 분리시키지는 않았다.

A목사 "부모가 방치한 애들 도와줬더니...하나님이 다 알고 있다"

6년간 민수 남매를 '학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A목사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7월 29일 < 오마이뉴스 > 기자의 전화를 받은 A목사는 "걔네 때문에 지금 온가족이 난리가 났다"며 흥분했다. A목사와 통화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기자는 A목사와 B조카 그리고 A목사의 남편 C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부평의 한 교회에서 기자를 만난 A목사는 "민수와 민영이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펄쩍 뛰었다. 체벌에 대해 A목사는 "매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발로 찬 적은 두어 번 있지만 그건 민수가 돈을 훔치고 교회 아이들에게 톱을 휘둘렀기 때문"이라며 '학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옆에 있던 B조카 역시 "아이들이 거짓말 하거나 도둑질 할 때마다 장난으로 때리거나 매로 때린 적은 있다"고 말했다. 민수가 자신에게 맞아서 깁스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쇠몽둥이로 때린 게 아니라 매로 때렸는데, 민수가 맞기 싫다고 발버둥 치다가 팔을 잘못 맞았다"고 했다. A목사는 "그것도 쇼였다"며 "우리가 보는 앞에서는 (팔을 위로 들어올리며) 막 이렇게 하고 다녔고, 우리가 안 볼 때는 아픈 척 해서 진단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A목사는 "민수를 가장 많이 때린 건 민영이와 할머니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A목사는 "할머니가 (애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서 제가 (할머니를) 벌세운 적도 있다"며 "그래놓고 애들은 내가 (할머니한테 애들을) 때리라고 시켰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흥분했다.

자신보다 연장자인 할머니에게 반말을 하거나 폭언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A목사는 "(할머니를) 언니처럼, 엄마처럼 항상 그렇게 대했다"며 "할머니가 욕을 너무 심하게 하니까 애들도 욕을 많이 한다고 할머니를 야단친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음식물 쓰레기' 이야기가 나오자 A목사는 "음식물 쓰레기를 왜 먹이느냐"며 강하게 부인했다. 반면 옆에 있던 A목사의 남편 C목사는 "밥을 비벼주면 아무래도 흘리는 게 덜하니까 밥을 비벼 줬다"고 말했다.

A목사는 특히 "부모가 방치한 어려운 애들 도와주고 잘해준 게 너무 많은데 못한 것만 가지고 과대화(과장)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목사는 "하나님이 (진실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C목사는 "서로 의견이 상반되면 어떤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가를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A목사가 운영하는 인천 계양구에 있는 교회 건물.

ⓒ 오마이뉴스

고개 숙인 가족들 "내 새끼가 이렇게 살 줄은...못 지켜줘 미안하다"

계양구청에 확인한 결과, 2004년 12월 이후 민수 남매 앞으로는 매달 50~60만원씩 약 4천여만 원 정도의 기초생활비와 가정위탁양육보조금이 나왔다. 구청으로부터 급여가 지급된 민수의 통장에는 현재 75만 원정도가 남아있다. 민수 남매가 친부모를 만난 지난 15일 이후 지급된 돈을 제외하면, 민수 남매의 통장은 텅텅 비어 있는 셈이다.

지난 5일 만난 민수 할머니 P(59)씨는 "처음 몇 달만 (수급비를) 내가 관리하고, 그 후로는 A목사가 관리했다"고 말했다. P씨는 교회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가 애들 주민등록을 A목사 앞으로 옮겨놨기 때문에 (O교회에서) 나오게 되면 학교를 어떻게 보낼지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왜 이 어린 것들을 여기 데리고 들어왔을까, 원망도 했다"며 "내가 못 배우고, 몰라서 이렇게 당하고, 이렇게 참아 온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는 중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고 했었다"며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민수 남매의 아버지 K씨도 "내 새끼들이 이렇게 사는 줄은 진짜 몰랐다"며 "내 자식들한테 진짜 미안하다, 못 지켜줘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K씨는 A목사에 대해 "어떻게 됐든 내가 돌보지 못한 애들을 돌봐줬으니까 키워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한 달에 50만~60만원씩 생계비 받으면서도 자기 사리사욕 채운다고 애들 먹을 거 제대로 안 먹이고 개가 먹는 밥을 먹인 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L씨 역시 "우리가 못 봐준 건 잘못한 거지만 애들을 때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게 한 건 정말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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