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경찰, "이 xx, 육수 빼야 정신차린다"

임지영 toto@sisain.co.kr 2010. 6. 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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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x안되겠구만, 사무실에 가서 육수를 빼야 되겠다." 지난해 12월17일 절도미수 혐의로 체포된 ㄱ씨는 검거 직후 양천 경찰서로 향하는 차량에서 형사들에게 욕을 들었다. 욕 하지 말라는 ㄱ씨의 말에 경찰은 '육수를 빼야겠다'는 자기들끼리의 은어를 썼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의미를 알게 됐다.

팀장 지시 하에 경찰은 강력팀 사무실의 소파에 있는 방석을 바닥에 깔고 그의 입에 화장지를 물렸다. 2명의 형사가 발과 무릎으로 그를 누른 후 뒤로 채워진 수갑을 위로 들어 올리는 일명 '날개꺾기' 고문을 10회 이상 했다. 허벅지를 발로 차기도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빌자 "xx야 이야기할 때 듣지 꼭 육수를 빼야지 말을 들어?"라고 했다. ㄱ씨는 잡혀온 공범의 '육수 빼는' 비명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시사IN 안희태

6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양천경찰서의 고문의혹을 제기하며 밝힌 22개 사례 가운데 일부이다. 지난 5월, 인권위는 이아무개씨(45)로부터 진정을 접수했다. 현재 수감 중인 이아무개씨는 올해 3월 검거 직후 경찰이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는 폭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비슷한 내용의 진정 3건 모두 양천 경찰서 강력팀을 지목했다. 인권위 조사관 9명은 한 달여간 직권조사를 통해 2009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양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32명을 직접 만났다. 그 중 22명이 경찰에게 고문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인권위는 병원진료기록, 피해자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CCTV 녹화자료를 통해 자신의 고문 장면을 열람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인권위가 밝힌 피해자 22명의 증언은 공범 관계가 아닌데도 겹치는 내용이 많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고문 장소로 의심되는 강력팀의 소파 방석이다. 일종의 매트 역할을 하는 것으로 3단짜리 소파 방석을 떼어 바닥에 까는 것으로 고문이 시작됐다는 증언이 일치했다. 3월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된 ㄴ씨는 "범죄 사실을 부인하자 경찰이 창문 쪽에 있는 3칸짜리 소파의 방석을 떼어내 벽 쪽에 쫙 깔고 나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장갑을 낀 후 방석 위에 쓰러트린 후 달려들어 발로 밟고 차며 폭행했다'라고 진술했다.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 팔이 부러진 것 같다고 하자, 잠시 멈췄으나 부러지지 않았다며 폭행을 계속했다는 내용도 밝혔다. 구치소로 이송된 후 받은 진료에서 팔꿈치 뼈 골절이 드러났다. 3월9일 체포된 ㄷ씨도 얼굴이 방석에 눌려 숨을 쉴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고문 방식도 일치했다. 22명은 경찰이 입에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 등을 두른 뒤 뒤로 채운 수갑을 위로 들어 올리는 날개꺾기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ㄹ씨에 따르면 그는 2월2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되어 경찰서 사무실에 도착한 뒤 의자에 앉았다. "수갑 찬 손을 의자 등받이 너머로 보내더니 팀장이 무릎 위에 올라 앉아 휴지를 입에 물리고 투명박스 테이프로 입과 목을 둘둘 말아 재갈을 물린 후 날개꺾기 고문을 했다" 고문을 받은 후 상관으로 보이는 양복 입은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별일 아니라고 하자 살살 하라며 돌아갔다는 진술도 덧붙였다.

CCTV를 의식한 진술도 있었다. 지난 1월18일 체포된 ㅁ씨는 경찰이 "도둑놈은 말이 필요 없다. 이 xx는 달아야 말을 듣는다. 준비해! 시작하자고, CCTV가 안 나오는 이쪽으로 하자"라고 외치더니 역시 방석을 붙여 깔고 날개꺾기 고문을 했다고 밝혔다. 방석에 코피를 너무 쏟아 웃옷이 피 범벅이 되었다. 현장검증 당시 범행 장소를 헷갈려하자 "이 xx 봐라.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라며 차량 바닥에 그를 앉히고 가랑이 사이에 피해자 머리를 끼우고 고문을 했다. 그는 정신적 후유증이 심해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나고 왼쪽 팔꿈치 인대가 늘어났다고 인권위와의 대면에서 말했다.

고문을 통해 피해자들의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범행 개수를 늘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ㅂ씨는 경찰이 범행의심 건수가 150건 정도 되는데 80건을 가져가라는 얘길 들어 그렇게까지 안했다고 버티다가 고문을 받은 후 65건을 가져가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ㅅ 씨는 고문에 못 이겨 미제사건을 다 달라고 하니 고문을 멈췄다고 밝혔다. 22명의 진술인이 밝힌 고문 피해 장소는 사무실이 13건으로 차량 11건에 이어 최다를 기록했다. 인권위에 최초 진정을 넣은 3명 가운데 한명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는 "의뢰인이 고문 사실을 털어놔 인권위에 진정을 했고 수사 과정에서 남부 지검에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라고 말했다.

양천 경찰서는 6월16일 보도가 나간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 "검거 당시, 피의자들이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강력하게 반항했기 때문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수갑을 뒤로 채울 때 저항하면 팔이 약간 꺾일 수는 있었겠지만, 그 외에 조사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라며 오히려 범죄자들의 진술만 듣고 이를 발표했다고 인권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경찰청은 인권위가 검찰에 고발한 형사팀장 등 5명과 양천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감찰에 들어갔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문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의혹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지영 / toto@sisain.co.kr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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