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사업에 생업 잃은 골재업자 결국..

2010. 6. 11. 19: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정부가 원망스럽다" 유서남기고 목숨 끊어

경찰은 "4대강과 관련없다" 덮기에만 급급

낙동강에서 20년 넘게 골재채취를 해온 사업자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를 비난하는 유서(사진)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일 오후 5시께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골재채취업체 ㄷ산업 대표 ㅎ(72)씨가 사무실에서 농약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것을 친구 이아무개(70)씨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11일 새벽 0시17분께 숨졌다. 발견될 당시 ㅎ씨 옆에서는 에이4 용지 3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 유서에서 ㅎ씨는 "수십년 간 투자하여 이룩한 사업체와 따른(딸린) 종업원을 말도 없이 금년 네로(내로) 작업을 끝내라고 하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습니까. 한없이 원망스럽고 분하여 세상에 살수가 있습니가(까)"라고 적었다. 또 유서에는 "종업원 기업주 모두가 대책없이 그만두면 불경기로 진 빚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뚜렷한 대책이 없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원망스러운 이 정부을(를) 하직하는 것이"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또 ㅎ씨는 "내 한 몸의 생명이 모든 골제(재)업자들의 장래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그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것을 어떻게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지"라고도 썼다.

21년 전 설립된 ㄷ산업은 준설선, 덤프트럭 등 중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직원이 10여명인 중소 골재 채취업체다.

숨진 ㅎ씨와 친분이 있는 다른 골재 채취업체 ㄱ대표는 "성격이 온순하고 직원들을 잘 챙겨주는 너그러운 성품으로 '참 사람 좋다'는 평을 들어왔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태완 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조 위원장은 "최근 자주 전화를 걸어와서 '평생 해온 일을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아무런 대책도 안 내놓는 정부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말을 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사업이 어려웠던데다 곧 일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는 데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대구 남부경찰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강행으로 일어난 ㅎ씨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히기는 커녕 덮기에 급급해 기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11일 ㅎ씨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고, 이에 대한 지인들의 증언이 잇따랐는데도 기자들에게 "ㅎ씨가 목숨을 끊은 것과 4대강 사업은 관련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또 애초에는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ㅎ씨의 유서의 내용을 일부 기자들에게 공개했다가 각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자 "유서를 공개할 수 없다"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사회적 원인으로 인한 자살 사건의 경우, 경찰은 죽음의 이유를 밝힌 유서를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대해 권영하 대구 남부경찰서장은 "언론이 이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채무관계 등을 더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유서를 공개할 수는 없으며, 이 사건과 4대강 사업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은 이 유서는 유족들을 통해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한편, ㅎ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은 대구·경북지역 골재업체 대표 20여명은 이날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을 항의방문했다.

대구/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공식 SNS 계정: 트위터 www.twitter.com/hanitweet/ 미투데이 http://me2day.net/hankyoreh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