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도 좋다" 5060부모들 재취업 전쟁

입력 2011. 10. 25. 03:16 수정 2011. 10. 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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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취직을 못해서.. 아내가 암에 걸려서..
경비-청소직은 포화상태.. 도금공장 등 힘든 일까지

[동아일보]

14일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영세 도금공장.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환갑을 4년 앞둔 박모 씨의 작업복 상의는 화공약품에 흠뻑 젖었다. 팔뚝에는 약품이 맨살에 닿아 생긴 벌건 '도금독(毒)' 자국이 선명하다.

박 씨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석 달 전. 아파트 경비원과 택배기사로 일하던 그는 "야근 수당까지 챙기면 월 200만 원 이상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도금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박 씨는 "힘든 일이라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취업 재수생인 아들이 직장을 잡을 때까지는 생활비를 벌어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반월공단 인근의 세탁장과 식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신모 씨(63)는 3급 시각장애인. 중소기업을 다니던 중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사고 후 몇 년간 집에서 요양을 하던 그가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 것은 대기업에 다니던 아들이 지병으로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 아내마저 암에 걸려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뒀던 노후자금을 모두 병원비로 썼다. 아내와 아들의 병원비, 생활비를 그가 벌어오는 한 달 150만 원 남짓한 월급에 의지하고 있다.

'5060' 대한민국 부모들이 저임금 재취업 시장에 쏟아지면서 50, 60대 취업전선이 젊은층이 기피하는 3D 업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늘어난 수명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노후준비와 실업자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생활비와 병원비 마련을 위해 재취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년연장이나 임금피크제 등 안정적인 고령자 일자리 창출이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5060' 대한민국 부모들이 중국동포와 외국인을 대체하는 저임금 근로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안한 노후와 자녀부양 부담으로 50, 60대의 적극적인 구직이 늘면서 대한민국 부모들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대체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며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 대책에 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아들 대신 나라도… 일 놓을 수 있나요" ▼

50, 60대가 취업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부족한 노후준비와 함께 장기화된 청년실업으로 자녀부양 부담까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에 50, 60대 구직자가 크게 늘다 보니 공장 생산직이나 건설현장, 식당 등 젊은층이 기피하는 소위 3D 업종 외에는 이들을 반겨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이상 고령자 10명 중 7명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취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 부머'(1955∼63년생)들의 퇴직이 본격화하면 50, 60대 구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50, 60대 구직자들을 위한 일자리 지원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자녀 부양비 때문에… 공장·식당 전전하는 50, 60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한 도금공장에서 근로자 박모 씨(63)가 색을 입힐 전자부품을 도금판에 고정하고 있다. 이 공장은 지난해까지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 4명을 모두 50,60대 내국인으로 교체했다. 안산=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강원 원주시에 살고 있는 원모 씨(58·여)는 최근 인근 문막산업단지의 한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상경해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원 씨는 "남편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물가도 오르고 공부하는 아들 생활비까지 대려다 보니 나도 일을 구하러 나선 것"이라며 "동네 50, 60대 아주머니 절반 정도가 원주시내로 나와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50, 60대가 채용시장에 나서는 데는 이들을 부양해야 할 20, 30대 청년층의 구직난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기업들의 일자리 감소가 청년실업 장기화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자녀부양 부담을 느낀 50, 60대들이 다시 구직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모 씨(57)도 자녀 부양과 부인 병원비 때문에 재취업에 나섰다. 한 씨의 아들은 공고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했지만 2년 만에 그만두고 군대를 다녀와 지방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한 씨는 "작은 스포츠용품점을 하다 가게를 정리하고 쉬고 있었는데 아들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활비가 쪼들려 재취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과거 고령자들이 주로 취직하던 경비나 청소직은 이미 포화상태다. 한 아파트 경비용역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서울시내 한 아파트 경비원에 결원이 생겨 1명을 모집했는데, 1주일 만에 30명이 면접을 봤다"며 "요새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도 지원을 하기 때문에 60대는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전에는 일이 고돼 구직자들이 기피하던 공장생산직, 포장·운반업체는 물론이고 건설현장 청소나 주유소 아르바이트에도 50, 60대 취업희망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직장을 구하는 50, 60대가 크게 늘어 요새는 하루 상담의 절반 정도가 50, 60대"라며 "건설현장 청소는 물론이고 '막일'도 마다하지 않는 노인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 외국인 노동자 밀어내고 생계형 창업도 늘어

50, 60대의 재취업 러시는 국내 저임금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밀어낼 정도다. 실제로 외국인 체류자 수는 지난해 5만 명 남짓(6%) 증가하는 데 그쳐 2008년 9만 명(12%), 2007년 13만 명(21%)이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4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던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도금업체는 올 들어 이들을 모두 50, 60대 구직자로 대체했다. 이 공장 관계자는 "단순작업을 시킬 때는 숙소를 마련해줘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장년층이 낫다"며 "임금도 외국인 노동자와 별 차이가 안 나 앞으로 50, 60대를 계속 채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나마 여유자금이 있는 50, 60대들은 음식업 등 영세 자영업 창업에 나서고 있지만 하루하루 장사가 안 돼 마음을 졸이고 있다. 5년 전 중소기업에서 퇴직한 이모 씨(57)는 올 5월 경기 의왕시에 식당을 차렸다. 1억 원의 퇴직금 가운데 절반 정도인 5000만 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직원 월급과 재료비, 가게 월세를 빼면 그가 올리는 수익은 한 달에 1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 씨는 "식당 열었다가 잘못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노후자금도 부족한데 집에서 놀 수 없어 생활비라도 벌어볼 생각에 창업에 나섰다"며 "장사가 안 될 때는 괜한 일을 벌인 것 같아 가슴이 탁 막힌다"고 털어놨다.

50, 60대 창업이 늘면서 2000년대 중반 '자영업 대란' 이후 감소하던 자영업자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만8000명 늘어나 8월(5만3000명)에 이어 두 달 연속 증가했다. 특히 50, 60대 창업자가 증가해 지난해 말 현재 50대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42.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 베이비부머 퇴직으로 50, 60대도 일자리 부족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률은 지난해 28.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아이슬란드(34.9%)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문제는 베이비부머들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50, 60대 구직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2010년 기준으로 713만 명에 이른다. 연령마다 60만∼80만 명이나 된다. 기업의 평균 정년이 57세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5년 이상 매년 수십만 명의 은퇴자가 저임금의 채용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은 58.5%에 이르지만 실제 취업자는 46.7%에 그쳐 일자리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년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예산으로 편성한 2조5026억 원 가운데 고령자 일자리 지원 예산은 약 1700억 원으로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자 일자리를 위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50, 60대의 재취업 기회 확대를 위해 고령자를 위한 직업교육 지원 등이 필요하다"며 "저임금 일자리에 취업한 고령층이 근로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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