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가장들' 생계형 범죄·자살 잇따라

입력 2009. 9. 7. 16:30 수정 2009. 9.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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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CBS 최호영 기자]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정이 딱한 '생계형 범죄'와 함께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주식투자로 4억 날린 50대 쌀 훔쳐

지난달 25일 오후 6시 50분쯤 창원시 남양동 한 마트에서 회사원 A(52) 씨가 외부진열대에 놓여져 있던 철원미 쌀 1포대를 훔치다 종업원에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다.

단순절도라고 여긴 경찰은 조사 후 귀가 조치했지만, 주위 상가와 마트에서 쌀이 없어진다는 신고가 들어와 인근 CCTV를 분석한 결과 A 씨가 범행한 것으로 들통나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네 가족의 가장인 A 씨는 한 달 꼬박 공장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이 빠듯한 생활로 이어지자 돈을 불려볼 생각으로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주식이 급격하게 하락하자 투자금은 점점 잃게 되고,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집을 담보로 1억 4천만 원의 가량을 제2금융권에 대출을 받기까지 했다.

5년 동안 주식 투자로 잃은 돈은 무려 4억 원.거의 전 재산을 몽땅 잃어버린거나 다름없는 A 씨는 한 달 받는 200만 원 가량의 월급도 절반은 대출 이자금으로 나가게 되자, 당장 생활비 걱정이 앞섰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의 학비도 만만치 않아 A 씨는 결국 인근 마트와 가게에서 쌀을 훔치기로 했다. 쌀을 팔아서라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훔친 쌀은 식사하러 자주 다녔던 인근 식당에 고향에서 가져온 것처럼 속여 다시 되팔았다.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주식투자로 재산의 대부분을 날리고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 이자로 갚다보니 생활비가 없어 쉽게 팔 수 있는 쌀을 훔치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 5월초순부터 최근까지 마트와 쌀 31포대를 훔친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퇴직금 날리고, 전세금 빼서 생활하다 결국 세상 등져

마산시 봉암동의 한 인쇄소에서 일하던 B 씨는 최근 일감이 줄어들면서 일을 못하게 됐다. 거의 실직이나 다름없는 B 씨는 네 가족의 가장으로서 당장 먹고 살일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단독 주택에 세 들어살던 B 씨는 결국 전세보증금 5천만 원을 빼서 가족 몰래 생활비로 쓰게 됐다. 생활비로 사용하던 전세보증금이 결국 바닥이 나 버렸고, 가족에게 들통이 나자 B 씨는 죄책감에 지난달 25일 집을 나가 버렸다.

모텔 등지에서 전전하던 B 씨는 결국 가출 8일 만인 지난 3일 밤 9시쯤 창원시 명서동의 한 모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숨지기 직전 딸에게 "엄마랑 오빠랑 잘 살아라. 하늘나라에서 지켜줄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소주 2병을 마신 것으로 보아 무능한 가장으로서의 죄책감에 많이 시달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앞서, 퇴직금을 다단계회사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채무에 시달리던 50대가 지난 2일 창원시 중앙동 한 오피스텔에서 5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딸 세 명을 출가시키고 20년전부터 혼자 생활해 오던 C(59) 씨는 토목회사를 다니며 모아놓은 월급과 퇴직금으로 남은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목돈을 더 불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단계 회사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

투자금은 고스란히 날려버렸고, 결국 먹고 살일이 막막하자 B 씨는 최근 상가 경비원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 원금도 날린 상태에다 빚까지 떠안게 되자 도저히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고, B 씨는 "어머님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약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계형 범죄·자살충동 이유 40% '경제적 어려움'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8 사회조사' 자료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우리나라 인구 10명 가운데 4명 정도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조사됐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충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40대 남성이 49.7%, 50대 남성 49.9%로 다른 연령대보다 가장 많아 사회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시기에 겪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충동까지 이르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초부터 생계침해형 범죄 단속을 하고 있는 경남지방경찰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올 3월부터 5월초까지 도내에서 검거한 강·절도 사범은 모두 1천35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천45명 보다 30% 증가했다.

범행동기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가 전체의 27%인 367명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51.7%나 증가했다. 경찰은 서민 경제가 어려워진 점이 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창원중부경찰서 박병준 지역형사 총괄팀장은 "경제가 어렵다보니 생활고에 시달려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던지 등의 4-50대 가장들의 생계형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사업이나 투자 실패로 인해 자살까지 하는 가장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딱한 사정 때문에 선처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처벌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생계 때문에 처음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또다시 생활고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다시 경찰에 붙잡혀 온 한 집의 가장들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isaac0421@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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