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섭 목사 3년 투병 끝 별세.. 29일 민주사회장

이로사 기자 2012. 3. 2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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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 있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1988년 8월15일 한 목사가 대한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에 목사사직서를 던졌다. 한국 기독교장로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직을 반납한 그의 변은 이랬다.

"노동자와 빈민들과 함께 싸우다 구속돼도, 경찰이 노동자에게는 거친 언행을 퍼부으면서도 목사에게는 존칭을 쓰며 대접하는 것이 죄스럽고 괴로웠다." 그는 "목사직에서 해방되는 날, 교회의 제도권에서 해방되고 사회의 기득권에서 해방되는 날"이라고도 했다.

목사직을 내던진 주인공은 서울 동월교회의 허병섭 목사였다. 1941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군목으로 있으면서 휴가 때마다 도시 빈민촌을 찾아다녔다. 이내 빈민선교단체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의 총무를 맡고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 신설동 '꼬방동네'로 들어가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전북 무주에서 생태운동을 하던 2000년대 초반의 허병섭 목사.

허 목사는 언제부터인가 판자촌 빈민들에게 '달동네 성자' '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등으로 불렸다. 함께 판자촌에서 생활했던 이철용씨(전 국회의원)는 허 목사와 판자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 꼬방동네 사람들 > 이라는 소설로 풀어냈다. 허 목사는 < 꼬방동네 사람들 > 에 등장하는 빈민운동가 공병두 목사의 실제 모델이다. 허 목사를 세상에 알린 이씨는 그의 실천적인 삶에 감화돼 빈민운동에 삶을 바쳤고, 교회의 장로가 됐다.

도시정비 사업으로 청계천 일대의 꼬방동네가 철거되자 허 목사는 성북구의 달동네로 들어가 교회를 차렸다. 개척교회인 동월교회는 달동네 주민들의 지역 사랑방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그에게 목사란 직함은 거추장스러운 외투와도 같았다.

목사직을 내던진 뒤 그가 향한 곳은 막노동판이었다. 미장이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잡부 생활을 하면서는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일꾼 두레'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두레'는 알선업체의 농간을 배격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내세우며 '노가다' 일꾼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했다.

허 목사는 도시의 삶이 어려운 것은 가난 때문이고 가난은 잘못된 정치와 분단구조 때문이라며 민주화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유신 치하에서는 '목요기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20여차례 연행과 구금을 당했다.

도시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시작되던 1996년 그는 아내와 함께 돌연 귀농했다. 도시운동가에서 생태에 눈을 돌린 것이다. 전북 무주에 터를 잡은 그는 생태 대안학교 '푸른꿈 고등학교'를 세웠고, 2003년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 온배움터(녹색대학)'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허 목사는 2008년 3억원가량의 땅을 마을 공동재산으로 내놨다. 이 땅은 허 목사가 귀농하면서 동월교회에서 준 돈으로 구입한, 그들의 전 재산이었다.

평생 낮은 곳에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을 실천했던 허병섭 목사는 2009년 쓰러져 뇌손상 진단을 받았다. 먼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부인 이정진씨(64)를 간병하다가 생긴 질환이었다. 이후 3년간 병상에서 투병한 그는 패혈증이 도지면서 지난 27일 숨을 거뒀다.

목사인 그는 빈민운동가, 노가다, 생태운동가로서 민중을 하나님으로 모시며 평생을 살았다. 시대정신을 좇아 몸을 낮춘 그의 삶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와 함께 빈민·민주화운동을 한 박형규 목사(남북평화재단 이사장)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민중 속으로 내려놓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29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묘지다.

< 이로사 기자 r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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