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판사 마음 울린 반성문.. 사법부 감동 물결

2010. 11.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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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김진선 판사가 최근 자신이 다룬 한 재판 사건을 소회하며 판사와 피고인에 앞서 인간으로서 느낀 연민의 정을 다룬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정호승의 시 > '라는 글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게재된 후 조회수가 1500회를 넘어서는 등 사법부 내부에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7월 대전지법 법정. 김인숙씨(여·가명·24)씨는 두차례에 걸쳐 지인들의 지갑을 절취하고, 절취한 신분증을 이용해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고 이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행사하고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재판을 받게 됐다.

김씨는 어린 시절 엄마가 가출하고, 조부모의 손에 양육된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할머니와 산다고 놀림을 받던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소망했고,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와 새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게 됐다.

새엄마는 아버지 앞에서는 소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줬지만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갖은 구박을 일삼았다. 이후 김씨의 아버지는 재혼에 실패한 뒤 두번째, 세번째 새엄마를 들였다.

김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비행없이 학업을 마치고 고교를 졸업하자 마자 취업을 하게 됐다. 그러나 건강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돼 씀씀이가 커져 버리자 일정하지 않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자 이 사건을 저지르게 됐다.

김 판사는 이 글에 "처음 공소장을 봤을 때는 죄질이 썩 좋지 않은데다 두 건이 병합돼 있어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며 "내가 그녀의 사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법정에서의 피고인 신문도 있었지만, 50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반성문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반성문은 형식적인 내용이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반성문에는 피고인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 한 편의 자전소설과도 같아 무심해진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을 하게 마련이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라며 "스스로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 피고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성문에서 이렇게 구속돼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돼 다행이라고 적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신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딴에는 아플만큼 아파봤다고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아파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기원했다.

김진선 판사 글 전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누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 것 이상의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시키지도 않는 이런 류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벌써 3개월이 지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많은 부분 잊어버렸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지난 7월 20일경의 일이다.

법정에 선 그녀는 24살의 아가씨였다.

그녀는 두 차례에 걸쳐 지인들의 지갑을 절취하고, 절취한 신분증을 이용하여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고, 그 과정에서 각종 서류를 위조하여 행사하고 피해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처음 공소장을 봤을 때는 죄질이 썩 좋지 않은데다 두 건이 병합되어 있어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법정에서 피고인은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고, 변호인 역시 양형사유에 중점을 두고 변론을 하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 엄마가 가출을 하고, 조부모의 손에 양육된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할머니와 산다고 놀림을 받던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소망하게 되고, 드디어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와 새엄마가 사는 집으로 가게 된다.

새엄마는 아버지 앞에서는 소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만,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갖은 구박을 일삼는다.

8살의 어린아이에게 젓가락질이 서툴다고 집 앞 거리에 나가 "젓가락질을 잘 하겠습니다"라고 외치게 하는 등 사소한 트집을 잡아 소녀를 괴롭히고 매질을 한다.

커다란 상처를 받은 소녀는 아버지와 새엄마를 미워하게 되고, 다시 할머니와 살면서 학교를 다닌다.

그 후 아버지는 재혼에 실패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새엄마를 들이게 된다.

소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반항을 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비행 없이 성실히 학업을 마치고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건강문제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되어 씀씀이가 커져 버린 그녀는 일정치 않은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자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사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법정에서의 피고인신문도 있었지만, 50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반성문 때문이었다.

내가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반성문이나 탄원서 내용 중 일부를 언급해서인지 한 때는 반성문이 정말 많이 들어와서 어떤 피고인은 매일같이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하고, 어떤 사건은 반성문이 공판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성문은 형식적인 내용이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있음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위 사건에서 피고인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긴 반성문은 한 편의 자전소설과도 같아 무심해진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을 하게 마련이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말이다.

스스로 범죄를 저질러 법정에 선 피고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성문에서 이렇게 구속되어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되어 다행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역시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비록 여러 건의 범죄로 구속되었지만, 초범이고, 아직은 어린 나이로 개선의 가능성이 있으며,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루어졌다니 빨리 선고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 후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그리고 선고를 하면서 그녀에게 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시 한편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였다.

여기에 정호승의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옮겨본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사실 그 무렵의 나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로 지새우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피고인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유년의 아픈 상처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살던 집이 경매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그 작은 손으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바구니를 만들기도 했다. 연탄배달조차 되지 않는 달동네에 살면서 두 손으로 직접 연탄을 나르기도 했고, 연탄가스를 먹어보기도 했으며, 장학금 없이는 공부할 수 없는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상처와 인간적인 연약함을 가린 채 법대 위에서 그 피고인을 향해 말하지만, 사실 나도 상처 많은 풀잎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당신의 인생만 아픈 것은 아니라고, 슬픔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고, 고통에는 뜻이 있는 거라고, 상처 많은 꽃잎들이 더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신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 딴에는 아플만큼 아파봤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아파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뿌리까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한다. 그 상처들이 나를 향기롭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법정에서 마주한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부디 그녀의 아픈 상처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삶으로 피어나기를...

대전일보 정재필 기자/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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