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동방신기' 전속계약 효력정지 첫 가처분 승소 임상혁 변호사

2009. 12.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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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노예계약' 폐지 이제 장동건·배용준 나서라

-동방신기를 알고 있었나요?

"(웃음) 이거 보도되면 안 되는데…. 얼굴을 몰랐어요. 찾아온다기에 오전 내내 뮤직비디오랑 사진을 컴퓨터에 띄워놓고 얼굴과 이름을 외웠죠. 최강창민과 영웅재중이 끝까지 헷갈렸는데 다행히(?) 최강창민이 안 왔더군요."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등 동방신기 멤버 3명을 대리해 소속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낸 임상혁(40·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지난달 25일 "동방신기 얘기는 묻지 말라"며 손사래 치던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지난 10월 27일 "SM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동방신기 멤버들의 경제적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 계약내용을 무효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며 전속계약 효력을 정지시켰다. '일부 인용' 결정이지만 사실상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의 패소였다.

연예계는 가처분 신청 결과보다 '가처분'이란 방식이 먹혔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가처분은 정식 재판을 통해 다투면 때를 놓치게 되는 상황일 경우 신청할 수 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며칠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 유족이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게 좋은 예다.

-왜 가처분을 택한 거죠?

"연예인 계약 분쟁은 대법원 판례가 없어요. 정식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려면 2∼3년 걸리는데 그동안 연예인은 활동 못하고 잊혀집니다. 다들 소송 냈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거죠. 동방신기도 정식재판 했으면 그렇게 됐을지 몰라요."

가처분 신청을 내자 법조계에선 "세종이 실수했다"고들 했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두 가지를 인정받아야 했다. ①계약이 무효에 해당한다는 점. ②정식 재판에 앞서 가처분을 해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라는 점.

"그동안 (연예인들이) 두 번째 요건 때문에 가처분 신청을 못했어요. 우린 이게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이돌 스타는 수명이 짧아 2∼3년 소송하면 생명이 끝나버린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거죠."

-SM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그쪽은 이의신청 등 세가지 대응 방법이 있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동방신기 멤버 3명은 가처분 결정으로 원하는 걸 얻었다. 계약이 정지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연예인들에게 불합리한 전속계약에서 벗어날 '급행열차'가 생긴 셈이다. 임 변호사는 "동방신기가 후배들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했다. 연예기획사들은 바짝 긴장해 있다.

가처분 신청 내용은 아니지만 멤버 3명이 한 화장품 회사에 투자한 게 계약 위반이냐 아니냐 하는 다툼도 SM과 동방신기의 쟁점 중 하나다. '모든 방송출연 및 국내외 연예활동에 관한 권리는 SM에 있다'는 포괄적 계약서 문구가 분쟁을 유발했다. SM은 "화장품 광고 수주에 영향을 미치므로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멤버들은 "그럼 삼성전자 주식을 사는 것도 허락받으란 거냐"고 반박했다.

-동방신기 같은 대스타가 이런 계약을 참아온 이유가 뭘까요?

"연예매니지먼트 산업은 가요계와 비(非)가요계로 확연히 갈라져 있어요. 가요시장은 트레이닝, 음반제작, 유통망을 모두 갖춘 3대 메이저 회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동방신기조차 영원한 을(乙)이죠."

-비가요계는요?

"진입 장벽이 낮아 쉽게 기획사를 차릴 수 있는경쟁시장이죠. 예를 들어 배우 기획사에는 '에스컬레이팅 조항'이란 계약 관행이 있습니다. 신인이라도 인기를 얻으면 계약 조건을 상향 조정해줍니다."

연예계 불평등 계약 관행은 고 장자연씨 사건으로 주목받는 듯했지만 별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재발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연예인도 파업을 할 수 있어야죠."

-지난해 미국배우조합(SAG)은 파업 직전까지 가던데, 국내에서도 가능할까요?

"배용준, 장동건이 움직이면 돼요." 그는 '조직된 개인'보다 '압도적 1인'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를 예로 들었다.

"방송작가들이 방송사와 맺는 표준계약서는 갑과 을이 헷갈릴 만큼 공평해요. 김수현 작가가 나섰기 때문이죠." 김 작가는 1987∼1995년 작가협회 이사장 시절 집필 거부에 앞장서며 방송사와 저작권 문제를 풀었다.

가장 궁금했던 걸 물었다. 간결한 답변이 왔다.

-기획사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나요?

"기획사 논리는 '(가수 양성) 투자의 리스크 때문에 장기계약이 불가피하다'는 건데, 법원은 한 번도 이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가요계 3대 메이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새로운 전속계약서 양식을 만들었다. 이를 심사한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준전속계약서 기준을 충족하는 '공정 계약'이라며 합격점을 줬다. 연예매니지먼트 산업 전반을 개혁하는 법안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다.

임 변호사는 스스로 연예인 전문 변호사 2세대라고 했다. 연예인 개인보다 연예·문화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과 소송을 한다는 의미에서다. 연예인 소송을 많이 맡았던 최정환 홍승기 변호사가 1세대로 통한다. 세종과 태평양(SM엔터테인먼트 측 변호 담당)이란 메이저 로펌이 뛰어든 것도 동방신기 사건이 '2세대형' 연예인 관련 소송임을 보여준다. 소송의 진화처럼 연예계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동방신기란 이름값에 이슈화되고, 연예인이 '가처분'이란 신무기를 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예요." 그의 다음 행보에 연예계 이목이 집중돼 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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