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회복됐지만 아직 할 일 남아".. '인혁당' 추모문화제 참석한 故 송상진씨 장녀 명희씨

2008. 4. 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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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버지! 지금도 '명희야'라고 부르시며 나타나실 것만 같은 아버지!"

서울 견지동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8일 열린 '인혁당재건위 사건' 민주열사 33주기 추모문화제에 참가한 송명희(52·여)씨는 '아버지'라는 말에 금세 눈시울을 적셨다. 송씨는 1975년 당시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된 8명 중 한 명인 고 송상진씨의 장녀이다.

송씨는 소감을 묻자 멍하니 한곳만 바라보다가 이내 "가신 분에게 무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보상 뒤에 가족들은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며 "아버지는 엄청난 고통을 받으셨고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당했다"고 가슴을 쳤다.

송씨는 "아버지는 2남1녀 중 외동딸인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셨다"면서 "고3 때 대입 공부 때문에 늦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항상 큰길까지 마중을 나오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립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송씨는 교육계에서 종사하시던 선친은 언제나 웃음이 넘쳤고 가정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전했다. 송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선친이 1년 만에 싸늘한 재가 돼 돌아왔을 때 하소연도 못하고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송씨 등 유족들은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은 637억원 중 일부로 '4·9 통일평화재단'을 설립했다. 통일평화재단은 당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명에 대한 추모사업과 함께 이들에 대한 책자 발간 사업,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연극화, 추모 음반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 일본 우토로 마을 대책위 및 평화통일 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도 계획 중이다.

송씨는 "내게 소중한 아버지가 정권 연장의 도구로 희생됐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조속히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1964년 8월 중앙정보부가 인혁당이라는 대규모 지하조직이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고 발표한 사건으로 75년 4월8일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고 다음날 18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32년이 흐른 지난해 1월23일 서울중앙지법은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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