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다 말하면 나와 주변이 다칠 것 같았다"

최보식 선임기자 2016. 10. 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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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처음 말했던.. 박관천 전 경정] "문제의 보고서 올린 그날, 처음 박지만씨를 만났다 그 저녁 자리에서 누군가가 박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다" "잠긴 서랍에 넣어둔 서류들 몰래 들어와 복사했고 기자에게 그걸 넘기고 경찰 自殺.. 풀리지 않는 의문"

요즘 거의 모든 언론에서 박관천(50) 전 경정(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쫓아다니고 있다. 그는 2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유출 파문으로 구속됐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검찰 조사에서 했던 말이 새삼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씨가 1위이고,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당시 이를 가십처럼 보도한 신문에서는 '황당한 내용'이라는 촌평(寸評)까지 달아놓았다. 그때는 최순실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 그의 황당한 말은 어느 날 보니 현실로 다가와 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 북한산 아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을 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런 말을 한 게 맞나?

"그렇게 바깥으로 보도될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권력 서열 3위라고 했으니… 검찰에서도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면회를 온 아내와 변호사로부터 '당신은 찍힐 일만 골라 하느냐'는 핀잔을 받았다."

―어떤 상황에서 '대한민국 권력 서열' 얘기가 나왔나?

"조사 과정에서 내 심경을 얘기했던 말이 새나간 것 같다. 검사가 '보고서 유출 파문으로 정윤회나 박지만은 더 이상 비선(秘線) 활동을 못 할 것'이라고 하기에,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는 한 명 더 있다. 실제 권력 컨트롤에서 최순실씨가 1위이고 정윤회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말도 한다. 이제 내 임무는 끝났고,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라고 말했던 거다."

―최순실씨가 1위라는 판단의 근거는 뭐였나?

"그건 말할 수 없다. 내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다. 검찰 조사에서도 '다 털고 가자'고 종용받았다. 하지만 다 말하게 되면 나와 내 주변이 다칠 것 같았다(순간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떤 파장이 있을지 아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무덤까지 갖고 갈 것이다."

―이 부분이라는 것은 최순실씨의 인사 및 국정 개입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최씨와 대통령과의 관계에 관한 것인가?

"정말 죄송하다. 이건 말할 수 없다. 검찰에서 수사할 것이다."

―최순실씨를 만난 적 있나?

"그것도 말하기 어렵다."

―최근 터져 나온 최순실씨 의혹을 보면 어떤가?

"잘못된 부분에서 본인(최순실)이 책임지고 솔직히 사과하는 게 맞다. 부인할 수 없는 대목까지 '아니다' 하니까, 의혹이 부풀려지고 막장드라마로 간다. 당초 본인은 신의를 갖고 했겠지만 인간이니까 사리사욕이 들어간 부분이 있을 거다. 정확하게 빨리 해명하고 불이 안 번지게 해야 한다."

―2년 전 본인을 구속으로 몰고 간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에 대해 질문하겠다. 작성 계기는?

"2013년 11월 내 상관인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으로부터 '정윤회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을 미행하고 대통령을 만나려면 그에게 최소 몇억원을 줘야 한다는 제보가 있다. 조사해서 첩보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쨌든 그때 처음으로 보고서에 '정윤회'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며칠 뒤 한 주간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을 보도했다. 청와대에서 난리가 났다. 보도 진위 여부와 그 말의 진원지가 어디 있는지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조응천 비서관 선에서의 지시였나?

"조 비서관이 '할배(김기춘)가 시켰다'고 말했다."

―그게 정윤회와 '십상시(十常侍)'가 등장하는 문제의 보고서였나?

"그렇다. 그때 내가 조응천 비서관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7~8차례 수정했다. 내가 쓴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꼼꼼하게 수정한 적이 없었다. 다음 날인 2014년 1월 6일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됐다."

그 보고서에는 정윤회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소위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만났고, 이 자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을 논의한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를 읽은 김기춘 실장 반응은 어땠나?

"이는 1차 동향 보고서에 불과했다. 민감한 사안이라 조사를 본격적으로 할지 말지를 위에서 오더를 내려줘야 하는 것이다. 보고한 조응천 비서관에 따르면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김기춘 실장 선에서 무마됐다는 건가?

"그때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조사를 지시했을 때와 보고서를 받은 뒤에 김 실장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현실 판단을 잘하신 것 같다."

―그 뜻은? 처음에는 자신의 경질설에 분개했지만, 권력 실세의 힘을 알고 나서 비굴해졌고 타협했다는 뜻인가?

"말하자면 그런 뜻이다. 조응천 비서관이 '아무래도 우리가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 같다. 이제부터 정보를 갖고만 있고, 지시가 내려오면 몰라도 안 그러면 보고하지 말자. 사고만 안 나게 예방만 하자'고 말했다."

―얼마 안 돼 당신은 청와대 근무에서 경질됐다면서?

"열흘쯤 지나 대통령께서 외국 순방을 떠나는 날이었다. 김기춘 실장이 출국하는 대통령께 인사하러 가니,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 있는 경찰 13명 중 두 명만 남기고 다 바꾸라고 한다'며 교체 및 신규명단을 건네줬다. 김 실장에게 바꾸라는 지시를 받은 조응천 비서관이 '큰일났다'며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 완전히 뒤집힌 인사가 발표됐다."

―뒤집힌 인사라면?

"당초 경찰 13명 중 두 명만 잔류시키고 다 바꾸라고 했는데, 거꾸로 잔류 대상 2명 중 1명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잔류시키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뜻이라고 했다. 정말 어리둥절했다."

―계속 청와대 근무를 할 수 있게 됐던 건가?

"인사 있고서 며칠 뒤인 설 연휴 마지막 날(2월 2일)에 조응천 비서관이 포장마차로 나를 불러 '오늘 할배(김기춘)가 자네를 내보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내가 잘렸다는 통보였다. 조 비서관이 '공석(空席)인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장으로 가게 될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당분간 계속 맡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2월 13일 청와대에서 잘린 날, 서울청 정보1분실로 서류 상자 두 개를 갖다놓았다. 그런데 다음 날 갑자기 발령이 취소됐다."

―어디로 발령이 났나?

"(휴대폰에 저장된 메시지를 보여주며) 총리실로부터 '공직복무관리관실 발령이 결재가 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날 이것도 취소됐다. 김기춘 실장이 국무조정실장을 불러 '박관천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도봉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최종 발령 났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과 청와대 파견 근무를 거친 경력으로는 눈에 띄는 좌천(左遷)이었다. 그가 도봉경찰서에 근무하던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을 보도했다.

―당신이 작성했던 것인데 어떻게 신문사로 들어가게 됐나?

"앞서 말한 대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장으로 발령 날 것으로 알고 서류를 옮겨놓고, 열쇠로 서랍을 다 잠갔다. 발령이 취소돼 이틀 뒤에 갖고 나왔다. 그 문건이 서랍 속에 그대로 있었으니까 설마 복사됐을 줄은 몰랐다."

―그 문건은 그 뒤 어떻게 됐나?

"조응천 비서관의 부탁으로 정윤회와 박지만 쪽의 일을 계속 맡았기에 내가 도봉경찰서로 들고 왔다. 조 비서관이 4월 중순 청와대에서 물러났을 때 모두 파쇄했다."

―검찰 조사에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직원이 그 문건을 복사해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내가 서울청 정보분실에 놔둔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어떤 의도로 몰래 사무실로 들어와 복사를 했고 그걸 기자에게 넘겨줬을까. 문건의 파장이 어떨지 다 알 텐데 말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됐다. 해당 경찰은 자살까지 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유출 동기와 경위를 확실하게 수사해달라'고 하니, '네 신상이나 신경 쓰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이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처음에는 '지라시' 수준이라고 했고, 또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는데?

"청와대에서는 문건 작성자가 나라는 걸 발표했다. 그때부터 문건 내용의 진위(眞僞)보다 내게 초점이 맞춰졌다. 문건 작성자인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고 '개인적 일탈'이라고 했다. 심지어 9년 전에 내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추가 기소까지 했다(그는 결백 자료를 갖고 있었고, 항소심에서 공소시효가 지난 걸로 판결)."

―보고서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는데?

"김기춘 실장의 인사 빼고는 그 뒤 그대로 다 이뤄졌다. 이정현 홍보수석도 청와대에서 내쳐졌지 않나.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됐을 때, 보고서에 나오는 '근본도 없는 놈'이라는 말을 인용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최순실씨가 '진짜 비선 실세'로 드러난 마당에, 그 보고서는 정윤회씨를 잘못 겨냥했던 게 아닌가?

"문건이 터지고 난 뒤에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다."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있나?

"내가 도봉경찰서로 옮긴 직후 그에게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내가 보고서를 만든 것을 알고 그랬을 것이다. 그 무렵 정윤회와 박지만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박지만 측에서는 정윤회가 사람을 시켜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정윤회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고 나를 통해 박지만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다."

―그가 비선 실세처럼 보였나, 아니면 대통령의 총애를 잃고 끈 떨어진 쪽으로 보였나?

"후자는 아니었다. 다른 데를 통해서도 그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었다."

―박지만씨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문제의 보고서를 올린 바로 그날 처음 박지만씨를 만났다. 조 비서관이 '박 회장이 저녁을 사겠다고 한다'며 나를 데려갔다."

―박지만씨에게 17건의 공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는데?

"박지만씨에게 문건을 건네줄 때는 조치난에 '박지만에게 통보'라고 적어 비서실장에 보고된다. 그 보고서에는 그걸 적지 않았다. 그에게 통보해줄 성격의 문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7건이 아니라 바로 이 보고서였다. 이걸로 유죄를 받아 감옥에서 500일 살았다."

―그날 저녁 자리에서 박지만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나?

"내가 전해주지는 않았다. 항소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답변했다."

―왜 그렇게 했나?

"주위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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