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서 무너진 모습 보일 수 없었어요"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16. 3.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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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여행에서 돌아온 이세돌 "대국 때 가족 부른 것 잘한 결정, 잉씨杯 등 올해 3~4개 우승 목표.. CF 촬영은 대국 지장없는 선에서"

"혜림이의 동물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예요. 미로공원, 휴애리 같은 곳을 갔었는데 너무 즐거워해 저도 피로가 싹 풀렸습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마치고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던 이세돌(33) 9단이 21일 오후 상경했다. 당초 일정보다 이틀을 단축해 5박6일이 된 것도 딸 혜림(10)이 때문이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함께 놀던 유치원 친구들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앞당겨 올라오게 됐어요." 동갑내기 아내 김현진씨의 설명이다.

모녀는 4월 초 일단 캐나다로 복귀했다가 7월 말~8월 초쯤 귀국, 제주도에 정착하기로 했다. 4년 만의 가족 복귀에 대비해 이번 여행 동안 월셋집을 둘러보았다. 3개월 후부터 이 9단은 서울과 해외(주로 중국), 그리고 제주도 등 세 곳을 옮겨 다니게 된다. "이제 헤어질 때마다 모두가 눈물 글썽거리며 이별할 일은 없게 된 거죠." 혜림양은 9월 학기부터 서귀포시 영어교육도시에 있는 한국국제학교(KIS)에 다닐 예정이다.

이 9단은 알파고와의 대결 때 3연패를 하고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 역시 혜림이 덕분이라고 했다. "아이 앞에선 절대 무너진 모습을 보일 수 없었어요. 참담한 기분 속에서도 혜림이와 놀다 보면 의욕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5번기 기간 동안 가족을 부른 것은 잘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알파고전 패배의 아쉬움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인공지능 패턴을 파악하면서 4국과 5국은 후회 없는 내용을 만들었어요. 다시 둔다면 이길 것도 같고…. 하지만 알파고는 심적 동요가 없고 지치지도 않는 등 강점이 많아 설욕을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알파고의 실력은 갈수록 더 늘어가겠죠." 그는 만약 3개월 안에 박정환 등 후배들이 알파고와 대결한다면 박정환 쪽에 걸고 싶다고 했다.

그는 기계가 아무리 인간을 이기더라도 바둑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거든요. 승부는 예술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이나 창의력, 심미안이 예술의 본질인데 이게 빠진 승리는 예술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런 점에서 기계와 사람이 함께 출전해 겨루는 대회가 열린다고 해도 자신은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며칠 전엔 알파고의 아바타를 맡았던 아자황이 꿈속에까지 나타나더라고요."

이세돌은 오는 30일 김지석 9단과의 맥심배 8강전으로 다시 '인간계'로 돌아온다. 컴퓨터와 '면벽(面壁)' 대결 이후 처음이다. 오랜 시간 알파고에 적응돼 있어 오히려 혼란스럽진 않을까? 이 질문에 이세돌은 즉각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4월 중순부터 열리는 최대 규모 세계 기전인 잉씨배를 따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올해는 3~4개의 국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할 생각뿐이에요." 알파고 충격을 딛고 그는 빠르게 본래의 '최강 멘털'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CF 모델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뉴스에 대해 이세돌은 "바둑 두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기업을 골라 선택할 생각"이라고 했다. 사람들 모이는 대합실을 피해 공항 주차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커피도 뽑아다 주고, 무작정 얼굴 들이밀고 셔터도 눌러댔다. 하늘을 찌르는 인기였다. 이세돌은 "내가 잘한 게 없는데 모두들 수고했다니 좀 쑥스럽다"면서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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