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변론하고 판례 쉽게 해석..새 장르 개척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홍보이사였던 하창우 변협회장이 변협신문에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유하셨어요. 막 2년 차 변호사였던 제가 변호사를 소재로 그리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몇 번이나 말씀하셔서 시작하게 됐죠."
그의 서초동 사무실은 여느 변호사의 공간과는 다르다. 책상 한편에는 액정화면에 태블릿 펜을 대고 직접 그릴 수 있는 전문 장비가 올려져 있고, 벽에는 아이돌그룹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 변호사는 "저작권법·엔터테인먼트법 분야를 많이 다루다 보니, 고객 중에 아이돌 기획사가 있다. 얼굴과 이름을 외워야 해서 붙여놨다"며 웃었다. 그는 "매주 목요일 저녁이 마감이다.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원고를 그리곤 한다. 고되지만 독자들이 좋아해줘서 할 맛이 난다"고 했다. 처음 만난 법조계 사람들로부터 만화 잘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에게 만화는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이다.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사법시험은 안중에 없었다. 그는 "과방 대신 만화 동아리방만 찾았다"고 했다. 직접 만든 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단편상과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졸업 후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1998년부터 늦깎이 고시생이 됐지만 그의 딴짓은 계속됐다. 그는 '고시생 만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 변호사는 "1999년 신림동 고시촌에 있을 때도 만화를 너무 그리고 싶어서 고시생 생활을 만화로 그려 무작정 신문사(법률저널)로 들고 가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한다고 할까 봐 '이성욱'이란 가명으로 연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만화 사랑은 변호사 일로도 이어졌다. 예술 분야에서 곧잘 쟁점이 되는 저작권법에 흥미를 느껴 사법연수원에서도 그 과목을 택했고, 석·박사 학위도 저작권법 관련 논문으로 취득했다. 이 변호사는 "부당 계약으로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를 비롯해서, 같은 작가로서 안타까운 사례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만화로 변론을 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2011년 맡은 사건이 사실관계가 무척 복잡해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100컷 정도의 만화로 만들어 프레젠테이션 하듯이 변론을 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승소였다. 이후에도 몇 차례 만화변론을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민법, 형법, 헌법의 주요 판례를 만화로 정리해 책으로 내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만화로 배우는 민법 판례 140'(박문각)은 친형인 이영창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함께 펴냈다. 이 변호사는 업무가 많아서 초등학교 5학년인 딸 볼 시간도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계속 '딴짓'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미국변호사시험을 준비 중"이라며 "한국의 좋은 콘텐츠를 제대로 수출하려면 저작권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화가로서의 목표에 대해 "피너츠(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등장하는 미국 만화)나 딜버트처럼 단순한 그림에 인생의 묘미와 무게가 담긴 만화, 그래서 오래오래 남을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변협신문에 10년간 만화를 연재하며 이 변호사에게 붙은 별명은 '법조계 고바우'다.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50년간 그린 만화 '고바우 영감'에서 따온 것. 별명 값을 하려면 40년은 더 연재해야겠다고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만화 그리는 변호사가 저 말고는 없어서, 후임 나올 때까지는 꼼짝없이 그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홍성윤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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