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간 진검승부하자는 게 아니라니까

신윤영 2015. 4. 2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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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트위터에서 본 건 한 달 전쯤이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이 신조어는 2010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중 하나였고, 지난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뜻은 '남자가 주로 여자에게 윗사람처럼 굴며 설명하는 것'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SNS에서 맨스플레인의 등장은 거센 후폭풍을 낳았다. '나는 이런 맨스플레인을 당해봤다'라고 증언하는 여자들의 글이 줄줄이 이어졌고, '이건 성별보다는 권력의 문제라서 상대적으로 힘 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에게 하는 거다'라는 반박과 '남자는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설명을 한다'라는 첨언과 '여자들 중에는 설명충('상대가 이미 알 만한 내용을 지루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없는 줄 아느냐'라는 역지사지의 이의 제기와 '맨스플레인에 '맨'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젠더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으니 맨을 빼는 게 공정하다'라는 항의와 '이런 말이 유행하는 바람에 이제 여자한테 뭐라도 설명하면 맨스플레인으로 싸잡히는 거 아냐?'라는 걱정과 '상대가 좋은 마음으로 설명을 해주는데 상냥하게 들으면 될 걸 괜히 까칠하게 군다'라는 비난과 '왜 페미니스트들은 매번 남자를 이겨먹으려 드느냐'라는 힐난과 '워워, 여성분들 지금 뭔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맨스플레인이 뭔지 제대로 설명해줄 테니까…'라는 맨스플레인이 엎치락뒤치락했다.

맨스플레인의 문제는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을 한다'가 아니다. 설명을 조곤조곤 잘 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고, 그런 능력이 있는 남자만큼 섹시한 존재도 드물다. 맨스플레인과 '친절한 설명'의 결정적 차이는 여자가 '그거 나도 안다' 혹은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다'라고 밝혀도 화자인 남자가 의식·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문화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이 2008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잘 알려진 것처럼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글)에서 적절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솔닛이 파티에서 만난 남자에게 '얼마 전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에 관한 책을 썼어요'라고 말하자 그가 냉큼 말을 자르며 '최근 머이브리지를 다룬 신간이 나온 거 아세요? 내가 그 책을 <뉴욕 타임스> 서평란에서 봤는데'라며 한참 잘난 척을 했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솔닛의 친구가 '그러니까, 그 책을 쓴 사람이 얘라고요'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즉 맨스플레인은 '이 여자가 이걸 알겠어?(그러니까 내가 가르쳐도 돼)'라는 편견 섞인 확신에서 비롯된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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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중 누가 더 똑똑한지 진검승부를 하자는 게 아니라니까

'여자니까' 잘 모를 거라는 단정은 남성이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얻은 사회적 권력이라는 사실, 말하는 남성이 그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그가 그런 권력으로 여성의 전문성이나 지식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이런 차별적 사고방식은 남자들에게도 피곤하게 작용한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여자에게 '오프사이드는 아냐? 너 그냥 '얼빠'지?'라며 비웃거나 '이런 건 아가씨가 직접 하지 말고 오빠나 남자친구한테 해달라고 해요'라고 훈수 두는 남자들이라면 '남자가 돼가지고 어떻게 소주 한 잔을 못 마시냐' '사내대장부가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따위 강요도 서슴지 않을 테니까.

맨스플레인은 남자를 조롱하려고 만든 단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라는 문제 제기에 가깝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똑똑한지 진검승부를 해보자는 게 아니라, 동등한 눈높이에서 도란도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살자는 것. 결국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오늘따라 설명이 길었다.

신윤영 (<싱글즈> 피처디렉터)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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