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잃고 학교폭력과 싸운 18년, 아버지의 속죄록 썼죠"
집단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 아들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남부러울 것 없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끝모를 고통의 나락에 빠졌다. 아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인생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기업 사장 자리가 목전에 있었지만 다 허망한 일이었다.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는 "이 땅에서 학교폭력을 뿌리뽑겠다"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비를 털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의 학교폭력 예방 비정부기구(NGO)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을 세웠다. 18년 전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김종기 청예단 이사장(66·사진)의 이야기다. 그가 그동안 학교폭력과 맞서 싸운 이야기를 담은 자전에세이 <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은행나무)를 최근 펴냈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왜 다시 꺼냈는지 궁금했다.
"제 아들과 같은 일을 당하는 아이가 다시는 없어야죠. 그러려면 홀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때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저의 아픈 기억을 공유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학교폭력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잘나가던 김 이사장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1995년 6월. 출장차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비보를 접한 그날을 회고하는 김 이사장의 목이 잠겼다.
"아이가 죽음으로 내몰릴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 비극적 상황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날 이후 자괴감과 무력감에 악몽같은 날의 연속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을 괴롭힌 가해 학생들이 또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가 김 이사장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 순간 아무에게 말도 못한 채 괴로워했을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학교도 학부모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쉬쉬하면서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는 걸 보았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청예단입니다."
청예단은 현재 전국에 13개 지부를 두고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 및 학부모들과 26만건 이상 상담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2004년에는 47만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었고, 2009년에는 국내 청소년단체로는 유일하게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특별지위도 얻었다.
김 이사장은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해도 대통령과 총리가 나설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일었지만 그 이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역대 교육부 장관마다 취임 일성으로 모두 학교폭력 근절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의 임기가 평균 1년도 채 안돼요. 그러니 실효성 있는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죠. 자살, 범죄 등으로 이어지는 학교폭력을 아직도 학교와 학생만의 문제로 인식하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이제 학교폭력은 사회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김 이사장은 학교폭력이 양적으로는 줄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학생 수의 감소에 따라 학교폭력 건수는 줄어들지 모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훨씬 지능화되고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폭력이 처음에는 가해자가 장난처럼 시작해요. 하지만 교사와 교장, 정부가 숨기기 급급하고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동안 가해자는 괴물로 변합니다."
김 이사장은 요즘도 하루에 상담전화가 100통 넘게 걸려온다고 했다.
"상담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우리 아이들이 폭력에 떨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래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은 포기할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 글 김윤숙·사진 박민규 기자 ys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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