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없는 왕세자빈 때문에.. 위기의 日 왕실

이한수 기자 2013. 3. 30.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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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국어 능통한 마사코 '왕실 외교' 기대 컸지만 10년째 적응장애 앓아 실망

"황태자(왕세자)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일왕 왕위 계승권자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53세 생일을 맞은 지난달 23일 궁내청(왕실 직속 기관)이 배포한 '탄생일 기념사진'을 두고 일본 언론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에 부인 마사코(雅子·49· 사진) 왕세자빈과 딸 아이코(愛子·11) 공주의 모습이 없었던 것. 시사주간지 'AERA'는 "혼자 찍은 이상한 모양의 사진, 마사코 사마(님)와 아이코 사마가 없다"고 보도했다. 주간아사히(週刊朝日)는 "작년까지는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었다"면서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왕세자 퇴위론' 배경은 마사코빈

지난 2003년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10년째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마사코빈에 대해 일본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적응장애는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질환으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다. 'AERA'는 "동궁직(東宮職·왕세자 직속 기관) 고위 시종도 마사코빈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의견을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왕세자 독사진'의 원인일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궁내청은 "마사코빈이 감기에 걸려 함께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사코빈은 1993년 결혼 당시만 해도 '황태자'와 '엘리트 커리어 우먼'의 사랑으로 큰 화제를 뿌렸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5개국어에 능통한 마사코빈은 당시 '왕실 외교'에 큰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실이 왕손 출산을 강조하면서 갈등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2004년 기자회견에서 "왕세자빈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사코빈은 결혼 8년째인 2001년 아이코 공주를 낳았다. 왕위계승 등을 규정한 '황실전범'에 따르면 아이코 공주는 왕위계승 권한이 없다. 일왕은 '남자'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일왕'을 인정하도록 '전범'을 바꾸자는 논의도 일었다. 그러나 동서인 아키히토(明仁·79) 일왕의 둘째 며느리 기코(紀子·46) 왕자빈이 2006년 아들을 낳으면서 여성 일왕 논의는 수그러들었다.

최근 불거진 왕세자 퇴위론의 배경에는 마사코빈이 있다는 분석이다. 대를 이을 왕손을 낳지 못하고 적응장애를 앓고 있는 마사코빈에 대해 일부 왕실 옹호세력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원로 종교학자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81) 전 도호쿠(東北)대학 교수는 월간지 '신초(新潮) 45' 3월호에서 '황태자 전하, 퇴위하십시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후미히토 왕자 부상

왕세자 퇴위론은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충격적"(주간아사히)인 주장이다. 과거 왕실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가 테러를 당한 언론인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번 '왕세자 퇴위론'은 사정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유력 일간지 아사히(朝日)신문이 지난 25일 야마오리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확산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야마오리 교수는 자신의 '왕세자 퇴위론'은 동생인 후미히토(文仁·47) 왕자에게 왕세자 자리를 양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대를 이을 아들이 있는 후미히토 왕자가 나루히토 왕세자 대신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후미히토 왕자와 기코 왕자빈은 2006년 9월 아들 히사히토(悠仁)를 낳았다. 일본 왕실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은 40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후미히토 왕자가 왕위를 이을 경우 마사코빈은 왕비의 자리를 기코 왕자빈에게 내줘야 한다.

일본 언론들은 나루히토 왕세자 일가보다 후미히토 왕자 가족에 애정을 보이고 있다. 주간아사히는 동일본대지진 피해자 위로 등 관련 활동에서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는 3건에 그쳤던 반면 후미히토 왕자 부부는 15건이었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장년(壯年)인 왕세자의 공무 일정이 공란 투성이"라고 지적했다.

후미히토 왕자 부부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후미히토 왕자와 기코 왕자빈은 지난 25일 아들 히사히토 왕손을 데리고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참배했다. 일왕 가문의 선조를 모신 이세신궁에 히사히토 왕손을 참배하게 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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