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유시민 행태를 비판했더니..
석 달 전 이 지면에서 유시민씨를 '영남 패권주의자'라고 규정한 뒤, 사이버 공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내 전자우편 주소까지 알아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메일로 나무란 분들도 있었다. 메일을 보낸 분들은 대개 예의를 갖추어 나를 비판했고, 그 밖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욕설이 휘날렸다. 유시민씨 지지자들에게 겸손한 조언을 드린다면, 육두문자로 휘갈기는 비난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그런 욕설은 나를 전혀 아프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너절하고 상스러운 이미지가 고스란히 유시민씨에게 들러붙는다. 예의를 갖추고 내 견해를 비판한 분들은,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내게 성찰의 계기를 주었다.
내가 일간지나 시사 주간지에 시사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그간 내 글에 가장 자주 불려나와 가장 혹독하게 비판받은 현실 정치인은 정동영씨다. 그런데 정동영씨 지지자들로부터 욕설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반면 유시민씨에 대한 비판에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듯 한두 마디만 던져도, 용케 그것을 알아챈 지지자들로부터 말의 돌팔매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정치인 정동영이 정치인 유시민에 견주어 시원찮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특히 조급증과 기회주의를 자양분 삼아 정동영씨가 실천한 정치적 곡예는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요컨대 그는 미덥지 못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 경향신문 > 5월5일자 칼럼에서 이대근 논설위원이 지적했듯, 정치인 유시민 역시 "너무 중요한 시기에 너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태도―인용자)를 너무 자주 바꾸었다". 나는 유시민씨가 정동영씨에 견주어 더 명민한 정치인이라고 여기지만, 더 신의 있는 정치인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유시민 비판이 정동영 비판보다 훨씬 더 거센 반응을 불러온 것은, 유시민씨 지지자들의 응집력이 유난히 크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에도 나를 비판한 유시민씨 지지자들은 늘 그렇듯,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영남 패권주의에 뾰족하게 감응하는 것은 내가 전라도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 정체성 가운데 다른 것은 다 그대로 두고 오로지 출신 지역만 바꾼다 해도, 다시 말해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영남 패권주의에 반대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영남 사람 가운데 지역 패권주의에 물든 정치인이나 유권자들을 비판했을 것 같다. 거의 '골품제'로까지 치닫는 영남 패권주의는 내가 영남 사람이었더라도 내 자유주의 감수성을 크게 거슬리게 했을 테니까.
영남 패권주의를 떠받치는 '해괴한 논리'
구차한 얘기 한두 마디. 내가 31년째 함께 사는 여자는 경상도 사람이다. 우연이겠으나 내 가까운 술친구도 여자든 남자든, 태반이 경상도 사람이다. 내가 경상도 사람 일반에 어떤 거부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가령 전두환의 제5공화국을 호시절로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경상도 유권자들을 나는 벌레 취급한다.
유시민씨는 1997년 대통령 선거 얼마 전에 낸 < 97 대선 게임의 법칙 > 이라는 책에서 1987년 대선을 회상하며, "전두환이 참말로 잘하기는 다 잘했는데 딱 한 가지 잘못한 건 김대중이를 안 죽이고 놔둔 것이라는 노태우 진영 선거운동원들의 선동이 대구 사람들에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먹혔다"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논거로 삼아, 1997년 대선에 김대중이 직접 출마하지 말고 조순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라고 권했다.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그 대구 유권자들이 조순을 지지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더러운 표다. 피 묻은 표다. 설령 내가 영남 사람으로서 대통령직에 출마했다고 해도, 결코 받고 싶지 않을 표다.
유시민씨는 그러나 그 표를 당시 야권으로 끌어오기 위해 김대중의 출마 포기와 조순 옹립을 주장했다. 영남의 간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대통령직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이 해괴한 논리가 유시민씨의 영남 패권주의를 맨 밑에서 떠받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유시민씨는 영남 패권주의자가 아니라 그저 야심가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과 대립하면서 민주당 표를 모아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전략"('이대근 칼럼')은, 그리고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유권자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충원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불미(不美)하고 불인(不仁)하다.
고종석 (저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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