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끝없는 도전의 종착역은 장애인을 위한 '산파'"

입력 2008. 4. 19. 06:02 수정 2008. 4.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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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만난 '아름다운 청년'은 눈부실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 병아리 같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세상을 품에 안아 보겠다는 자신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어둡고 막막하던 긴 터널을 뚫고 나와 떳떳한 사회생활을 이어온 지 이제 1천여 일.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이 환희의 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세상을 향해 큰 발을 내딛는 서른 여덟의 '욕심쟁이' 황대철 씨를 만나봤다. 그가 꿈꾸고 있는 세상과 사랑,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황 씨를 만난 17일은 유난히 더웠다. 환한 웃음을 띠며 문을 열어주는 황 씨는 "기자님은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3년 전보다 더 멋지게 변했나. 그건 아닌 것 같고. 저는 많이 좋아졌는데" 하며 넉살을 부린다.

꼬박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따발총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그와 맞잡은 두 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섹스폰 부는 멋진 청년" "컴퓨터 박사"‥열정도, 재주도 많은 그

황 씨의 집안 풍경은 그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악기와 악보, 운동기구, 대형 모니터와 컴퓨터 그리고 각종 책자들이 방안에 가득했다.

"만물상도 아니고 이게 다 뭐예요""저의 발전상이자 큰 선물이죠. 그 동안 이 모든 잡동사니들이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어요".

황 씨가 자랑스럽게 하나하나씩 쓰임새를 설명해 줬다. 기자의 끊임없는 물음에 황 씨가 신이 난 듯 깔깔거리며 어린애 같이 즐거워했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1999년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장애와 따가운 시선을 물리치고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황 씨는 월남전 당시 파병용사로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에 걸린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강직성 척추염 환자다.

선천적으로 몸이 굳어 가는 잔혹한 병마다. 무의미한 인생을 내달리던 황 씨의 인생은 2005년부터 달라졌다.

비록 치료시기를 놓쳐 왼쪽 눈이 실명됐지만 시력이 살아있는 한쪽 눈으로 세상을 엿보기 시작했고, 두 다리는 장애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휠체어를 타고 바깥 나들이를 할 정도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황 씨는 2005년 한양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일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학업은 황 씨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4학년 졸업반인 황 씨는 유난히 공부에 욕심을 두고 있다. 대학원까지 진학해 사회복지학의 정점에 서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황씨의 학업성적은 전 학기에 걸쳐 전액 장학금을 받을 만큼 A+ 행진이다.

황 씨는 이말고도 최근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각종 악기를 섭렵하는 것이다.

우선 '소프라노 색소폰'에 도전했다. 환상적인 음색에 초보 수준이라는 황 씨의 말은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색소폰을 잘 부는 멋진 청년이 있다'는 소문에 여러 사회복지센터에서 연주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황 씨는 '컴퓨터 박사'라는 유명세도 치르고 있다.

매킨토시, 쿼크 익스프레스 등 편집용 프로그램도 능수 능란하게 다루는데다 수리도 할 수 있다.

고물로 취급받는 컴퓨터도 황 씨의 손을 거치면 새 것처럼 변한다. 황 씨는 폐기처분된 컴퓨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고 각종 부품을 업그레이드 해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공급하는 '산타클로스' 역할도 하고 있다.

"종착역은 장애인을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산파'"

황 씨의 끝없는 도전의 종착역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도와주는 데 있다. 성별로 '그룹 홈'을 조직한 뒤 일정 기간을 함께 생활하다 최종적으로는 개별적으로 분가(分家)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당당하고 떳떳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황 씨의 꿈이다.

꿈을 함께 이룰 '미래의 신부'는 없느냐는 엉뚱한 질문에 황 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며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내년 결혼을 약속한 아리따운 예비신부는 이은영(33) 씨로 지적장애 2급이다. 가끔 자신의 집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황 씨는 그녀를 '5월의 신부'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황 씨는 하루에 수면시간이 4시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나름대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장애라는 단어가 그의 삶 안에서는 무색하다.

3년 전 만난 황 씨와 현재의 그는 외견상으로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열정과 솟아오르는 자신감은 황 씨에게서 달콤한 향수를 내뿜게 한다.

"학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탄탄한 이론 속에서 완벽하게 행동으로 옮기고 싶을 뿐입니다. 침대에 홀로 누워 세상을 원망할 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을 바꾸리라. 나부터 변하리라. 이제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달려 큰 사람이 되겠습니다"

황 씨는 더 이상 세상의 작은 사람이 아니다. 큰 사람으로 우뚝 서 있었다.

3년 전 기자는 독자들에게 이 세상에 사랑과 희망을 선물하는 '기적의 목수'라고 그를 소개했다. 지금 그는 이미 기적을 넘어 신화를 창조하고 있었다.

10년 후 황 씨를 다시 한번 만나면, 오랜 벗을 만난 듯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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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제휴사/충청매일 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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