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말이 잃어버린 품격 회복 이젠 희망의 소설 쓸 것"

2007. 12. 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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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대통령 선거를 하는 해여서 그랬겠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통되지 않는 말들이 1년 내내 들려왔고 연말에 이르러 녹초가 됐습니다. 양쪽에 아무런 공통의 기반이 없는, 이유없이 끝까지 적대하는 언어들로 소통불능의 절정을 이루었지요. 새해는 우리사회의 말이 잃어버린 품격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지배계급이 벌인 말의 성찬을 묘사한 장편소설 '남한산성'(학고재)으로 올 한해 한국문학의 중심에 섰던 작가 김훈씨(59). 이념과 도덕보다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메시지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층 힘들어진 서민들의 삶을 반영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승리를 안긴 '실용'의 정신을 구현했다. 26일 모처럼 빨간 넥타이를 맨 회색 정장 차림으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 나타난 그를 만났다. 첫 장편소설 '칼의 노래'(생각의나무) 100만부 돌파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다.

-소설 '남한산성'이 전파한, 명분에 대한 혐오가 대선정국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당대의 삶을 그린다든지, 현실의 알레고리로 작용한다든지 하는 건 전혀 생각한 바가 아닙니다.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가 있지만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요. 다만 삶의 구체성, 일상의 지엄함에서 유리된 언어작용의 허망함에 대해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실용'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실용이 도덕성을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국가가 부도덕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실용에도 반합니다. 단 도덕과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면 이익을 추구하는 게 건강한 국가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자타가 인정하는 보수주의 정권입니다. 그런데 진보라는 것이 진보주의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어야 그가 말하는 국민화합, 갈등의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가치의 바탕 위에서 좌파정부의 업적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회전이 아니라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좌회전을 해나가야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겁니다. 보수로 급선회하면 갈등과 혼란에 빠지고 말아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셨나요.

"제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 된 게 처음입니다. 도덕성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더럽혀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지요. 백지상태보다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불순, 부도덕을 옹호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양극화 해소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 지지율이 3% 미만이었습니다. 권영길 후보가 비정규직, 영세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그들조차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는 것이지요. 서민들의 열망이 보수정권에 와있음을 알고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중산층 이상만을 껴안고 간다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패배한 진보진영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패배라기보다는 자기네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이루고 교대했다고 봅니다. 10년 동안 북한의 적대와 군사적 도발이라는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됐습니다. 이것 없이는 경제발전도 소용없습니다. 이전 정권에서 환경에 대한 의식도 많이 높아졌지요. 임무가 바뀐 것이고, 시대가 바뀌면 그들이 다시 전면에 부각될 것입니다."

-문학으로 돌아갈까요. '칼의 노래'가 1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소감은 어떠신지요.

"이 작품을 6년전 썼는데 세상과의 불화 끝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책없이 파묻혀있을 때였지요. 겨울은 매우 춥고 독에 쌀도 없었습니다. 후배의 지하 작업실을 빌려 희망없고 불친절하고 신경질에 가득찬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읽혀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100만부 팔리는 걸 보니까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1948년 건국둥이로 태어나 겪은 전쟁과 가난, 억압, 황폐가 제 가슴에 그대로 남아있고 그런 슬픔과 억눌림이 글에 묻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없는 세계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데 놀랍니다. '남한산성'도 7개월 만에 4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이 많은 독자들과 함께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제시해야 할지 겁나는 일입니다."

-다음 작품 계획은 무엇입니까.

"이념이 아니더라도 법과 규칙 지키고 세금 내면서 이어지는 일상에 대해 역사소설이 아닌, 현대소설로 써보고 싶습니다."

〈글 한윤정·사진 이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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