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심야고속버스, 술 취한 손이 내 가슴을..

정병선 기자 bschung@chosun.com 2011. 3. 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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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추행·만취 난동 끊이지 않는 '달리는 범죄 사각지대'로

지난 12일 자정 무렵 광주발(發) 서울행(行) 심야 우등 고속버스 안. 버스가 출발한 지 10분 만에 한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 막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는 갓길에 멈춰 섰다. 비명을 지른 20대 여성은 운전기사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여성 승객은 얼굴만 붉힐 뿐 이유를 얘기하지 않았다. 버스에 빈자리가 없어 운전기사는 여성 승객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고속버스가 다시 출발한 지 10분 정도가 지나자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버스는 재차 갓길에 멈췄다. 이 여성은 운전기사에게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가슴을 만졌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남성은 잠든 척했다. 이후 남성의 성추행은 한 차례 더 이어졌고, 고속버스는 예정에 없이 고속도로 갓길과 휴게소에 3차례 정차한 후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했다. 50대 남성은 도착 후 유유히 사라졌고, 20대 여성 승객은 얼굴을 가린 채 울면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심야 고속버스에서 성추행·흡연·난동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늦은 밤 편히 휴식을 취하며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가려는 이들이 선호하는 심야 고속버스가 '달리는 범죄의 사각지대'가 된 셈이다. 문제는 술에 취해 조용한 버스 안에서 고성방가를 일삼고 성추행까지 저질러도 제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심야 고속버스는 출발과 동시에 전등을 끈다. 승객들의 취침을 위해 소등하는 것이 운전기사들에게는 의무처럼 돼 있다. 버스 안이 어두워 성추행이나 도난을 당해도 주변에서는 범행을 목격하기가 힘들다. 동부익스프레스 관계자는 "회사 모든 버스에 블랙박스를 설치했지만, 버스 내부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어 촬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설사 버스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버스의 출발과 동시에 소등을 해 범행 현장 촬영은 불가능하다.

심야 고속버스에서 범행이 일어날 경우 제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운전기사가 유일한 안전요원이다. 버스 안에서 소란이 일어나거나 범죄가 발생하면 운전기사는 달리는 고속버스를 갓길이나 인근 휴게소에 세워야 한다. 한 버스 운전기사는 "취객이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여성이 항의하면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 순찰대에 연락해 조치를 한다"고 했다. 고속도로 치안을 담당하는 고속도로순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정시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달려야 하는 고속버스는 갓길이나 인근 휴게소에서 멈춰야 한다. 고속도로순찰대 관계자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종종 신고가 들어와 톨게이트나 휴게소로 출동해 범인을 인근 지구대에 인계한다"며 "순찰대가 30㎞마다 하나 정도 있다"고 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취객에 대한 승차 거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야 고속버스에서 술에 취한 승객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복수의 고속버스 운전기사들은 "취객들에 대한 단속은 절실하지만 승객을 한명이라도 더 태워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 우선시되면서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고속버스와 경쟁 관계인 KTX·새마을호 등 철도의 경우 국토해양부소속 철도특별사법경찰대 대원들이 심야시간 등 취약시간에 직접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에겐 수갑·포승·가스분사기 등의 용품과 함께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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