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월세로의 대이동' 빈부 양극화 심화

2011. 2. 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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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중산층 교육비·생활비 감소… 전월세 인상 상한제 도입해야

최근 전세난이 계속되면서 전세 물건이 월세로 전환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월 전국의 자가 소유가 아닌 주택 중 전세 비중은 57%. 나머지 43%는 보증부 월세인 이른바 '반전세'와 순수 월세였다. 특히 '반전세'는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1.4%가량 늘어났다. 문제는 집값이 하락 조짐을 보이면서 이런 반전세를 포함한 월세 전환 추세가 급격히 빨라진다는 점. 집 없는 자는 지출이 생기고 집 있는 자는 소득이 생기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금리 탓에 수익 높은 월세로 전환

2월 중순 서울 봉천동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한 상가에서 만난 주부 한모씨(42)는 최근 전세를 전월세로 전환했다. 지난 2009년 초 114㎡(34평형) 아파트에 전세 1억8000만원으로 이사한 한씨는 올해 초 집주인이 8000만원을 올려달라는 통에 한바탕 홍역을 겪었다. 맞벌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 교육비 탓에 모아 놓은 돈이 없었던 것. 게다가 전세 들어오면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한 상태였다. 한씨는 "여기저기서 다 끌어 모아도 3000만원 정도여서 결국 나머지 5000만원은 월세로 돌려 2억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으로 계약을 연장했다"며 "올해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월세를 좀 내더라도 학교 가깝고 학원도 많은 이 동네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세대금을 올려 줄 수 없어 이른바 '반전세'를 선택한 것이다.

한씨는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소형 평수의 경우 집주인들이 무조건 월세로 전환하려고 해서 결국 좀더 평형이 작은 아파트나 다세대를 찾아 떠난 이웃들이 많다는 것. "전세 대출 이자가 월세보다는 적어 빚을 내어서라도 전세금을 올려주려 하지만 요즘엔 집주인들이 온통 월세만 선호해 그마저도 힘든 세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세난 심화엔 집주인의 월세 선호현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 탓에 월세 이율이 은행 예금이자를 웃돌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9일 KB국민은행의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임대차 계약 구성비는 1월 기준 전세 57%, 보증부 월세(반전세) 40.2%, 순수 월세(사글세) 2.8%로 파악됐다. 이는 3년 전인 2008년 같은 달에 비해 전세는 2.4%포인트 낮아진 반면 보증부 월세는 2.3%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국토부에서는 전국적으로 640만여 전월세 가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봉천동 한마음부동산의 김모 소장은 "옛날이야 전세금 받아 은행에 맡기거나 이를 가지고 또 다른 집을 사들이는 데 투자했지만 최근 금리나 부동산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며 "집주인 입장에서야 돈 굴릴 곳도 마땅치 않으니 차라리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중 예금이자가 연 3~4%에 불과한 상황에서 연 10% 안팎의 수익률은 굉장히 높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전세 중심의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이 외국과 같은 월세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월 16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2020 서울주택종합계획'을 통해 "10년 후에는 서울 지역의 주택임대차시장이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며 "전월세 임대료는 꾸준히 오르고 월세가구 수가 전세가구 수를 앞지르게 된다"고 내다봤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개념으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월세가 임대차계약의 보편적 형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월세 전환율이 높아지면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가처분 소득 중 주거비로 나가는 비용은 20% 수준. 하지만 1·2분위 저소득 계층은 4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급격한 월세 전환이 양극화 현상을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세체제 무너지면 서민·중산층 붕괴

사실 우리나라 전세는 고금리·주택투기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세시장이 급격히 무너진다면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과 지출구조도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교육비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비 지출이 많게는 전체 소득의 절반까지 차지하는 현실에서, 도저히 월세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을 마냥 손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남철관 나눔과미래 주거사업국장은 "그동안 전세가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파이 키우기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저소득층이 빈곤을 벗어나는 일종의 적금 역할을 해왔다"며 "일정액 이하의 전세에 대해 월세로 전환치 않는 건물주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도 "이게 깨지면 소득 하위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무너진다"며 "전세체제 붕괴를 시장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개입하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세제도가 사라지지도, 월세시장이 쉽게 부상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집주인들은 선호할지 몰라도 세입자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오동훈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건물주에 의한 월세로의 전환은 예상됐던 것이지만 시장의 흐름은 늦다"며 "세입자들이 사교육비 지출 탓에 전세를 올려주더라도 월세 전환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전월세 상환제 도입을 위해 299명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에 나선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정부의 대책이 전세자금 대출요건 완화 등 금융지원에만 매달리다보니 서민들에게 오히려 빚을 내어 전셋값을 올려주라는 식이 됐다"며 "다른 대책보다 임대차 등록제 및 전월세인상상한제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임대차상한제 관련 법률안은 강기갑·박영선·이용섭·강용석 의원 등이 발의하여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 조 의원은 임대차계약이 갱신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새로 체결되는 임대차계약에서도 임대인에 의한 차임 및 보증금 증액 가능 범위를 기존 임대료의 5%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정하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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