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들만의 재판' 겨눈 '석궁 교수'
"판사님이 법에 따라 판결하시겠다고 약속하거나 맹세할 수 있습니까?"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석궁테러' 사건 피고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50)는 당당했다. 판사는 "답변하지 않겠다. 당연한 얘기다"라며 고개를 돌렸지만, 표정은 몹시 곤혹스러웠다. 판사와 피고인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순간이었다.
5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김 전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김 전 교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법정에 들어섰다. 손에는 작은 법전 한 권과 대학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날 김 전 교수는 시종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이며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규정과 원칙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재판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공판 내내 숨기지 않았다. 본인 확인을 위해 판사가 사는 곳을 묻자 "성동구치소입니다"라고 답해 법정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수용자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의 피고인 심문 때는 심문 내용을 문서로 요구해 꼼꼼히 읽어가며 심문을 받았다. "'불만'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거나 "석궁을 '겨누었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달라"는 등 표현 하나하나를 반박하거나 수정했다.
김 전 교수와 재판부는 공판이 끝날 무렵 '충돌'했다. 검찰측 증거신청 절차가 진행될 때 김 전 교수가 "나도 증거신청할 권리가 있다. 내 의견도 물어달라"고 이의를 제기, 논쟁의 막이 올랐다. 김 전 교수가 "검찰은 증거가 각각 어떤 공소사실을 입증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판사와 검사는 김 전 교수를 설득하는 데 5분이 넘도록 진땀을 빼야 했다.
변호인측과 재판부의 신경전도 날카로웠다. 변호사가 김 전 교수를 계속해서 "김교수님"이라 부르자 판사는 "피고인으로 부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기욱 변호사는 "공판에서 피고인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공판이 끝날 때까지 김 전 교수를 '피고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임종인 의원은 "법조인들만의 용어와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김 전 교수가 신선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박영흠기자〉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이재명 대표에 총리 후보 추천 부탁하나…첫 영수회담 의제 뭘까
- 조국혁신당 “윤 대통령, 4·19 도둑 참배” 비판···이재명·조국은 기념식 참석
- 이미주-송범근 ‘열애’ 팬들은 알고 있었다···이상엽도 응원
- 디올백 건넨 목사 ‘김건희 스토킹’ 혐의 입건
- 이준석, 이재명 만난다는 윤석열에 “조국이나 이준석은 부담스러우실 것”
- 국정원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필로폰 총책, 캄보디아서 검거”
- 이스라엘의 군시설 노린 재보복, “두배 반격” 공언 이란 대응 촉각 …시계제로 중동 정세
- [단독]해병대 사령관·사단장, 비화폰으로 수차례 통화…추가 검증은 미제로
- “선거 지고 당대표? 이재명식 정치문법” 한동훈 조기 등판에 부정적인 국민의힘
- ‘2000명 증원’ 한발 물러선 정부···“원점 재검토” 접을 뜻 없어보이는 의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