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본극우도 반북땐 우리편" 이상한 보수

2011. 4. 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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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북전단 살포 보수단체, 일 극우인사 또 행사 참여 논란

지난 3월 26일, 보수단체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는 천안함 1주기를 맞아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시도했다. 인근 주민들이 "대북전단을 날릴 경우 북한의 조준격파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반발한 끝에 전단 살포는 좌절됐다.

이 자리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논객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도쿄기독교대 교수가 참여했다. 그는 "1954년부터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독도)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는 불법점거"라는 내용으로 논란이 된 이쿠호샤(育鵬社) 교과서(3월 30일 일본 문부성 검정 통과)의 근간이 된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여러 차례 지지해온 인물이다.

"독도·종군위안부 문제는 별개" 주장

니시오카 교수의 대북전단 살포는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6월 23일 국민행동본부가 백마고지에서 실시한 대북전단 살포 행사에도 참여해 우파 진영 내의 논쟁을 촉발시킨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당시 어버이연합은 니시오카의 대북전단 참여에 강하게 반발하며 "국민행동본부는 과거 일진회와 같은 친일 매국단체"라는 성명을 냈다.

서정갑 본부장은 니시오카의 과거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니시오카 교수의 과거 행적보다는 최근 행적을 봐야 하지 않느냐"며, "그는 극우가 아니라 대한민국 중심의 남북통일을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의 활동을 지지해온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전화통화에서 "니시오카 교수는 북한의 민간인 납치 문제를 국제 문제화시킨 훌륭한 사람"이라며, "일본 사람 중에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위안부 문제도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지 똑같으면 전체주의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생 때부터 니시오카 교수와 교류해왔고, 지난 3월 28일 그를 만난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게 니시오카가 어떤 인물인지 물어봤다.

구로다 지국장은 "니시오카 교수는 오래 전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피해자 문제에 앞장서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니시오카가 평소 "북한 체제를 바꾸는 것이 현 시대의 사명이며, 역사의식에 있어 한국인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북한 체제 변화라는 큰 목적을 위해 작은 것(역사 문제)은 제쳐두자"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한 구로다 지국장은 니시오카 교수가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이 50년 넘게 독도를 실효 점유한 점은 인정하지만 독도는 본래 일본 영토"라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독도를 두고 영토 문제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인 만큼, 역사 교과서에서 한·일 양국이 각자 알고 있는 내용으로 가르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구로다 지국장에 따르면, 니시오카의 주된 연구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니시오카는 2007년 일본 국회의원 45명과 함께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사실(The Facts)'이라는 전면광고를 낸 바 있다. 이 광고는 같은 해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결의안'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 광고에는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에게 성노동을 강요했다는 하원 결의안은 중대하고 의도적인 사실 왜곡" "많은 위안부들의 수입이 야전 장교들은 물론 장군 봉급보다 좋았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금지한 포고령이 엄격히 지켜졌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1991년에도 니시오카는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김학순 할머니는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며 위안부의 참상을 처음으로 알렸다. 당시 니시오카는 이 증언을 일본에서 처음 보도한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를 문제삼았다. 우에무라 기자의 장모가 양순임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장이라는 점을 들어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편향된 오보라는 의견을 냈다. 또한 니시오카는 김학순 할머니가 "40엔에 기생으로 판매됐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러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일노선 두고 반북보수단체 내홍

양순임 회장은 당시 니시오카가 "자신이 사위(우에무라 기자)의 친구라며 접근해왔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니시오카에게 위안부 문제의 현황, 앞으로 어떻게 일본 정부에 재판을 청구할 것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줬으나, 니시오카가 <문예춘추> <정론> 등 극우 성향의 잡지에 게재한 글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양 회장은 "니시오카가 내 사위를 '반일운동가의 사위'라고 매도한 이후 사위가 기자로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니시오카의 생각처럼 한국의 보수단체는 위안부, 교과서 등 역사 문제를 작은 문제라고 생각할까.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극우파 니시오카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위배된다"며, "이런 자와 함께 활동하면 친일 보수세력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말했다. 추 사무총장은 "니시오카와 손잡은 국민행동본부와는 앞으로도 함께할 생각이 없다"며,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보수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정갑 본부장으로부터 "위장탈북자"라는 비난을 받았던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2006년 북한인권운동가 수전 솔티의 초청으로 니시오카를 처음 알게 됐을 때에는 평범한 북한인권운동가인줄만 알았다"며, "알고보니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해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김정일에 반대한다는 뜻이 같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정서와 동떨어진 일본 극우파와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라는 뜻을 전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번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한 주민들을 "김정일의 협박에 동조하는 좌파 주민"이라고 규정했다. 구로다 지국장은 "니시오카는 한국 유학 중이던 70년대 말부터 일본 내 '친북좌파' 비판, 북한 정권 비판에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니시오카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견해와 대북전단 등 반김정일 활동이 진정 무관한지 지켜볼 일이다.

"북한의 김정일 테러집단은 민간인 납치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돌릴 목적으로 2차대전 이전 일본이 20만명의 한국 여성을 강제로 성노예로 만들었다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유엔 등에 꾸준히 뿌렸다."(니시오카 쓰토무, <위안부 논쟁의 이면 - 거짓이 어떻게 진실이 됐나>, 2007)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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