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남편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나?

2011. 2. 2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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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불거지는 의혹…확증없이 정황만

1월 14일 오후 5시 5분. 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남성은 경찰에게 "아내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를 벌인 경찰은 최초 발견자이자 숨진 박모씨(여·29)의 남편 백모씨(31)를 가장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날 새벽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어보자.

백씨는 사건 발생 전날인 13일 1차 전문의 시험을 치렀지만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속이 상한 상태였다. 평소 부인으로부터 "공부 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를 들어온 백씨로서는 박씨에게 "시험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외식이나 하자"며 부인을 불러냈다. 백씨는 식사자리에서 "시험을 망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부부 사이에는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부는 오후 5시 45분쯤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부부는 각자의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씨는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컴퓨터 게임에 열중했다. 이 시간 백씨의 인터넷 게임 프로그램에는 접속 기록이 남아있었다. 백씨는 평소에도 몇 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고 게임에 몰두할 정도로 게임광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의 백씨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을 중단한 새벽 3시부터 집을 나선 오전 6시 47분 사이, 백씨는 잠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 그날 새벽, 3시간 47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3주뒤 출산 불구 남편 50여통 무응답

현재 경찰은 박씨의 사망시각을 사건 당일인 14일 새벽 1시부터 남편 백씨가 도서관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되기 몇 분 전인 오전 6시 41분으로 압축시킨 상태다. 당초 1차 구속영장 신청 당시 경찰은 박씨의 사망 추정시각을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13일 오후 5시 45분에서 박씨가 집을 나선 14일 오전 6시 47분으로 기재했다.

법원 입장에서 13시간이 넘는 사망 추정시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실상 경찰이 정황증거들만 가지고 백씨와 박씨가 함께 있었던 시간 전체를 사망시각으로 정해 백씨를 옭아매려 한 게 아니냐고 볼 수 있었다.

서울서부지법 진철 당시 영장전담판사는 "시신의 상태로 미뤄봤을 때 목이 아래쪽으로 꺾여 있어 실족에 의한 질식사(사고사)를 배제하지 못하고, 경찰의 사망 추정시각이 너무 길어 특정이 되지 않는다. 추정시각 이후에 외부 침입이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만약 박씨가 오전 6시 47분 이전에 화장실에서 사망했다면 백씨가 이를 볼 수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들 부부가 거주하고 있던 아파트는 20평형짜리로 화장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백씨가 씻지 않는 버릇이 있지 않은 이상 집을 나서는 사람이 화장실을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집을 나선 이후에도 백씨의 이상행동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백씨는 오전 6시 47분쯤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때 백씨의 모습이 찍힌 CCTV에는 그가 두 팔을 만지면서 상당히 불안해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평소 장모와 전화통화를 하지 않던 백씨가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전문의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짚고 있다.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모에게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백씨는 장모와의 전화통화에서 전문의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시각은 오전 8시 56분. 백씨는 이후에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곧 출산을 앞둔 부인을 둔 남편의 행동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박씨는 3주 뒤 출산할 예정이었다.

이상 혈흔에 목눌림 질식사 가능성

14일 오전, 박씨가 교사로 일하는 어린이 영어학원은 그녀가 평소와 달리 연락도 없이 결근하자 박씨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박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학원은 남편 백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백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원은 백씨의 어머니 A씨에게 "박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전화를 남겼다. 당시 임신 36주째였던 만삭의 박씨가 산통 때문에 쓰러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즉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백씨의 휴대전화로 40~50여통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백씨는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백씨는 오후 4시 50분 처음으로 장모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모는 백씨에게 "학원에서 전화가 와서는 딸이 출근을 안 했다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집에 가서 확인을 해보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 백씨는 오후 5시 5분 "아내가 죽어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몇 가지 의문점.

1. 미끄러지면서 욕조 벽에 부딪혔다면 왜 혈흔이 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나.

박씨는 욕조에 몸이 접힌 상태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발견됐다. 백씨의 진술대로라면 만삭의 박씨가 화장실에 들어오는 도중 미끄러지면서 몸이 욕조 방향으로 날아갔고 욕조벽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장실 어디에도 박씨의 머리에 난 상처로 인해 생긴 피가 튄 자국, 즉 '비산흔(飛散痕)'이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욕조 방향으로 흐른 혈액의 양도 치사량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적었다.

국과수는 부검 결과서에 "박씨가 다른 장소에서 타살된 뒤 욕실로 옮겨졌으며 이후 외상에서 흐른 피가 떨어져 욕조벽을 타고 흘러내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2. 눈에서 생긴 피는 왜 눈썹 방향으로 흘렀을까.

박씨의 시신 오른쪽 눈에서 작은 혈흔이 발견됐다. 눈 안쪽부위가 찢어지면서 피가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피는 아래 방향이 아닌 눈썹 방향으로 흘러 있었다. 박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피는 아래로 흘렀어야 했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안방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백씨가 박씨를 숨지게 하고, 박씨가 사망한 이후 박씨를 욕조에 옮겨다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왔다. 눈썹 방향으로 흐른 피는 박씨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생긴 것으로 볼 개연성이 높았다. 경찰의 판단과 들어맞는 부분이다.

3. 박씨의 목에서는 왜 다량의 피하출혈이 발견됐을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미 1차 부검 결과에서도 '목눌림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이어 2차 부검 결과에서 이를 뒷받침할 증거들이 제시됐다. 박씨의 목에 다량의 피하출혈과 내부출혈에 의한 손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는 통상 강한 압력을 받아 피부가 눌렸을 경우 발생한다. 누군가 손으로 목을 졸라 질식시켰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모든 것은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목격자도 없다. 백씨가 자백하지 않는 한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류인하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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