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삼성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어요"

2010. 11.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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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

삼성 비자금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길었던 3년…

김상조 교수와 함께 '삼성공화국'을 극복할 시민의 불매운동을 토론하다

숨가쁜 3년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특검, 기소와 유죄판결 등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제 김 변호사는 삼성 고위 임원에서 중증장애인에게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야학 교사이자 철학과 석사과정을 밟는 학생이 됐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직을 사임한 뒤 단독 특별사면을 받고 다시 '왕좌'에 복귀했다. 모두 2007년 10월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김 변호사의 이름으로 개설된 50억원의 삼성그룹 차명계좌를 폭로하면서 비롯된 일들이다. 김용철 변호사와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이 10월28일 만나 '삼성 사태, 그 이후'를 돌아봤다.

김상조

3년 전 삼성 비자금을 고발한 용기 있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용철

불행한 일은 통제될 수 없는 권력체계가 생긴 것입니다. 사실 특검이나 수사·재판으로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 생겼다는 것을 검증하고 말았죠.

김상조

앞으로 모든 기업이 비자금 사건에 대해 '삼성처럼만 대우해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 삼성 수사 결과는 법체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용철

탈세만 봐도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입니다. 전무후무한 대형 사건인데도 불구속 수사를 했고, 자식에게 거대한 부와 권력을 물려주는 절차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거나 많은 증거가 조작됐다는 등 절차적 문제에 애써 눈감았습니다. 반면 요즘 수사를 보면 사주부터 구속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보통 사주가 구속되면 수사가 끝나는데, 사주부터 구속하고 수사를 시작하더군요. (웃음)

김상조

하하, 삼성 특검 때는 주변부터 수사하고 몸통에 접근하겠다고 했죠. 최근 3개 그룹에서 비자금 문제가 나오는데, 이런 문제가 왜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김용철

범죄가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선진국에서는 제대로 된 처벌을 하죠. 삼성은 비자금에 대해 선친에게 몰래 물려받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상속세 시효는 넘었고, 차명계좌를 관리해 양도소득세를 포탈(임직원들이 이건희 회장에게서 차명계좌를 받아 얻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한 데 대한 세금만 내고 말았습니다. 굉장히 좋은 선례가 됐죠. '문제가 되면 세금만 내면 된다. 뺏기는 일은 없다'는 식이죠. 잘은 모르지만 현재 다른 그룹들도 똑같이 해명할 것입니다.

김상조

CJ그룹도 (비자금에 대해) 그랬고, 한화그룹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김용철

일종의 '야전교범'이 돼버렸죠. (삼성그룹이) 저렇게 처리하고 (검찰과 법원이) 저렇게 대응하면 당연히 (다른 기업들도) 계속 비자금을 만들죠.

김상조

최근 그룹 수사를 보면 처음에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기업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로비 대상이 야당인 기업을 상대로 수사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한 자리에서 '공정한 사회는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공무원 또는 권력을 가진 분들이 법이라는 도구를 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행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수사하면 법 집행에 대한 국민이나 기업들의 불신을 자초하는 길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용철

만일 하명 수사거나 그런 의도를 가진 수사라면 (검찰이) 그나마 철저히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칼날(의 방향)은 또 바뀔 테니까요. 칼질한 사람은 그 칼에 또 자기가 다쳐요.

김상조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태광그룹은 티브로드를, C & 그룹은 워크아웃 기업들을 인수해 성장했습니다. 국내에서 기업이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빠른 시간에 확장할 때 여전히 로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비자금이 필요하고, 다시 기업이 어려워지면 무마하기 위해 비자금이 필요한 식입니다. 시장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게 비자금 조성이 필요한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김용철

국가의 통제 기능이나 언론의 감시 기능이 무력합니다. 요즘 강연에 가면 불매나 투자 거부 얘기를 합니다. 현실성 얘기가 나오지만, 시민이나 투자자가 요식 측면에서라도 (견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외신기자클럽이 주최한 비공식 간담회에서 '한국 사회에 큰 폐해를 끼치는 기업에 유럽 연기금 등이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를 공모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수주의적으로 보면 매국노 발언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김상조

삼성의 이익을 훼손하면 매국노라는 인식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삼성공화국'(김상조 교수는 공화국 대신 왕국·제국이 더 적당한 표현이라고 수정했다)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만들어내는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죠. 삼성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경쟁 그룹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서도 견제가 불가능한 존재가 됐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다이내믹스)뿐만 아니라 사회의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소가 됐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삼성그룹이 놀라운 경영성과를 얻은 데는 임직원의 노력과 함께 환율정책, 공정거래 정책 등 국가의 정책을 왜곡함으로써 생기는 부당한 이익도 상당합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중소기업의 피해를 양산하는 삼성 특유의 하도급관계에서 비롯된 결과가 함께 있습니다.

김용철

삼성전자 생산공장이 70% 이상 외국에 있어 국부 창출도 많지 않죠. 또 금융 쪽을 보면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계열사가 많습니다. 삼성카드는 (소비자에게) 포인트를 많이 줘 많이들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따져보면 가맹점 수수료가 다른 카드사보다 1% 이상 높습니다. 포인트 가맹점은 거기서 1.5% 또 높아요. 영세가맹점이 부가세 10%와 카드수수료 5.1% 등을 줍니다. 그 수수료를 받고 (삼성카드는) 소비자에게 0.5~0.7%를 돌려줍니다. 되짚어보면 시민들이 더 도와줘야 할 영세가맹점에서 고리를 뜯는 것에 협조하는 것입니다. 또 삼성화재가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렌트카 비용을 떼먹었는데도 시장점유율이 50%가 넘습니다(삼성특검은 삼성화재가 자동차 사고 피해자들이 렌트카 비용을 받을 수 있는데도 관련 조항을 잘 알지 못해 청구하지 않은 것을 따로 모아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조

시민들이 이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작으나마 참여하는 것이 근본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행동과 인식을 바꾸는 방법은 의무감을 강조하는 것보다, 그것을 하면 경제적 이득 또는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게 기본적인 것 같습니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도 그렇고 정부와 언론 등도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만큼, 삼성그룹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용철

3대뿐만 아니라 4대, 5대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세습이 악이라고 판단할 순 없습니다. 다만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절차를 거치고 상응하는 권한만 행사해야 합니다. 삼성그룹이 독주·질주하는 동안 그들은 이익을 위해 국가기관의 기능을 순치·왜곡하려고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동안 자라나는 세대가 취업난 등 치열한 경쟁을 치르면서 '세상이 그런 거 아니냐'는 의식이 팽배해지는, 그런 살맛 안 나는 세상이 돼버릴까 걱정됩니다.

김상조

삼성전자 세금(2009년 기준)을 보면 법인세율이 22%인데, 실제로 내는 실효 법인세율은 11%에 불과합니다. 법인세법에 정해진 것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명목세율은 낮지만 실제 법인세율은 훨씬 높습니다. 이처럼 조세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이 대기업에 편향된 상황에서 과연 삼성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서민이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좀더 정확한 사실관계를 가지고 삼성을 바라봐야 합니다.

김용철

시민들이 삼성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어요.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냉철하게 대해야 합니다.

김상조

정부가 지난 8월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해 '가신'들을 사면했습니다. 연말에는 전략기획실이 어떤 형태로든 부활하는 등 3년 전 모습으로 돌아갈 전망입니다.

김용철

회장실·비서실·전략기획실 등은 전부 책임을 지는 조직이 아닙니다. 제가 있을 때도 문서상이든 구두상이든 결재를 하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조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렇다고 저분들이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에 각종 협찬을 제공합니다. 법률가로서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며 협찬하는 것은 일종의 배임수증죄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어느 언론이든지 특히 그나마 (삼성그룹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진보 쪽 언론이 가장 경제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더 강해져야 합니다.

김상조

최근 '재벌의 언론지배에 관한 보고서'를 냈는데, 과거 < 한겨레 > < 경향신문 > 의 삼성전자 광고물량을 1로 하면 < 한국일보 > 가 약간 많고, < 조선일보 > < 중앙일보 > < 동아일보 > 는 두 배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김 변호사 사건 이후 < 한겨레 > < 경향신문 > 은 완전히 X축에 붙어 있고(0에 가깝다는 뜻), < 한국일보 > 와 < 조선일보 > < 중앙일보 > < 동아일보 > 의 차이도 벌어졌습니다. 광고비를 통해 선택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노골화한 것이죠. 또 광고비가 월별로 갑자기 튀어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이건희 회장 사면, 경영 복귀 등이 있었습니다. 이는 삼성이 광고비로 언론을 통제 대상으로 삼고, 김 변호사나 시민단체가 얘기하는 것은 아예 무시하는 전략을 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용철

중증장애인 야학 선생을 하면서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내면서 사회적 발언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쓴 것은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공적으로 할 말을 남겨놓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흔쾌히 대담에 응한 것은 (주선한 이들이) 좋은 사람들이고, 현재로서는 발언을 할 (다른) 사회적 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궁상인데, 근본적으로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등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언가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정치 얘기는 아닙니다.

김상조

기업 비리는 내부고발이 아니면 드러날 일이 없는데, 사회 구성원으로서 큰일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김 변호사가 준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김용철

내부고발자 가운데 유일하게 구속이 안 된 사람입니다. 특혜받은 사람입니다. 과한 대접도 받고 있습니다. 주차비를 받지 않겠다는 분도 많아요. 엊그제 해장국집에 갔는데 특별히 선지도 더 넣어줬습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과는 또 다른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한 것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임을 한 번 검증해본 절차였죠. 동시에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과제가 더 선명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배신자' '변절자'로 욕먹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단지 그렇게만 욕하면 다른 문제를 덮으려는 사람입니다. 대형 범죄에 대해 입을 다무는 나라에서 남의 윤리의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옳은지 따져봐야 합니다.

김상조

상식의 맥시멈이 도덕이고 상식의 미니멈이 법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상식의 미니멈인 법률도 안 지키면서 남에게는 법률뿐만 아니라 도덕까지 지킬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부고발이나 공익제보가 있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이 전하는 내용을 더 많이 봐야 합니다. 앞으로도 틀림없이 내부고발자나 공익제보자들이 나올 텐데,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더 잘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

정리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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