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덫에 갇힌 '77만원 세대'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2010. 10. 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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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마이너스 인생'을 못 벗어나는 '청년 워킹푸어족'이 늘어나고 있다. 눈앞의 생활고 탓에 미래 계획도 '캄캄'한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20대 청년층이 대한민국의 '신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워킹푸어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청년 워킹푸어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청년 워킹푸어족은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늘어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가운데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2008년 3월 최고점(32.2%)을 찍은 이후 줄곧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청년층이 워킹푸어로 전락한다는 것은 이미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통해 예견되었다. < 88만원 세대 > 를 쓴 우석훈 박사는 '88만원 세대'를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를 제외하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백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 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라고 정의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청년들의 상황은 어떨까. 한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은커녕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청년층은 '88만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77만원 세대'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77만원 세대'는 '88만원 세대'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88만원 세대'는 경쟁 사회, 승자 독식 구조에 철저하게 승복한다. 그들은 토익·토플 등 책에 파고들고 각종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며 자신들의 '스펙 쌓기'에만 몰두한다. '77만원 세대'는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이미 한 차례 걸러진 이들이다. 이들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기보다 당장 한 주, 한 달의 밥벌이를 고민해야 한다. '77만원 세대'는 바로 낙오된 청년 구직자들의 '깊은 절망'을 상징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청년 노동자 권익단체인 '청년유니온'은 충격적인 자료를 공개했다. 평균 나이가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워킹푸어로 전락했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한 달에 84만9천원 벌어 91만2천원 지출

청년유니온은 지난 5월 한 달 동안 학원강사와 구직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비정규 사무직 등 1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가계부를 작성하게 했다. 이들 모두 1인 가구로 평균 연령은 29.4세였다. 한 달 평균 84만9천원을 벌었고, 91만5천원을 지출했다. 매달 6만6천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금득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가계부 조사를 할 때 보니, 소득이 40만~70만원 선으로 저조한 사람은 급히 돈을 벌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경우였다. 버는 돈이 적은데도 일을 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을 '잠시 머물러 있는 곳'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한 번 임시직,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면 다른 정규직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가계부 내역을 보면 이들이 교육,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대부분 '0원'이었다. 청년 노동자가 77만원 세대, 66만원 세대, 심한 경우 44만원 세대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형태,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 2010년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구직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버겁다. 문제는 청년 워킹푸어들이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아직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청년 워킹푸어가 부각되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한국의 청년 노동자들이 독립적 가구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만 해도 청년들이 20대 이전에 독립하기 때문에 이들의 고용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부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의 저소득 문제가 청년층의 독립적 문제가 되기보다는 가구 전체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유독 청년 워킹푸어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것도 이러한 구조 탓이 크다"라고 꼬집었다.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청년들의 미래 또한 그리 밝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반기 기업 공채를 앞두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학생회관 앞. 올 하반기 채용을 앞두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대학생 김형석씨(26)는 "사실 청년 워킹푸어 문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곳저곳 입사 지원서를 내고 있는데, 졸업 후 백수로 지내는 선배들도 많고 주변에 취업한 사람이 없어 불안할 따름이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들이 '단속적인 노동 시장', 즉 짧고, 비연속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장기적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 한 달, 1년의 소득을 위해 일하는 청년 워킹푸어들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일자리'를 자신의 미래를 실현하는 일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청년 워킹푸어들은 오늘 흘린 땀방울이 내일의 희망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현주 기자 / ch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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