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조카·아들 친구까지 특채한 '정 많은' 구청장

주진우 기자 입력 2010. 9. 27. 10:22 수정 2022. 1. 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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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대물림은 공무원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상황도 꽤 심각했다. 한인수 전 금천구청장은 재직 시 처남·조카·처조카·아들의 친구 등 수십명의 지인을 공무원으로 특채했다.

유명환은 억울하다. 지난 7월 외교통상부 통상전문가 특별 채용시험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1명을 합격시키기 위한 쇼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외교관은 세습되기 때문에 그는 당당했다. 유 장관은 “장관의 딸이니 더 공정하게 심사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후광이 있어야 영사과·북미국·워싱턴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출세 부서를 거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홍순영·유종하 전 외교부 장관의 아들은 거의 모두 워싱턴 주미 대사관에 근무한다.

공무원은 시험으로만 뽑는다? 물론 아니다. 공무원 특채·특권의 대물림은 외통부 일만은 아니다. 9월7일 전국공무원노조 양성윤 위원장은 “신분의 대물림은 공무원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외교부뿐 아니라 다른 부처와 공공기관·대학·지자체에서도 유 장관 딸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나선 한인수 전 금천구청장.
특히 중앙행정기관보다는 지방자치단체로 갈수록 그 폐해가 심각하다. 지난해 철원군청은 정호조 철원군수(62·한나라당)의 자격이 안 되는 딸을 7급 보건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정 군수는 사법처리를 피했지만, 군수 딸의 합격을 도운 군청 직원 두 명은 기소됐다. 하지만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정 군수는 663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한다.

〈시사IN〉은 지자체 인사 전횡이 얼마나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려 서울시 금천구청에서 입수한 자료(표 참조)를 통해 공무원 특채 현황을 들여다보았다. 기능직·상용직 공무원 가운데 결원이 생기면 서류와 면접을 통해 채용했다. 산하기관인 시설관리공단은 정규 신입사원조차 필기시험을 보지 않았다. 금천구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상용직과 기능직은 물론 시설관리공단도 시험으로 사람을 뽑을 정도의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채 인원은 전 구청장과 고위 공무원들의 친인척 및 지인들로 짜였다. 물론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 우연히 고위 공무원들과 친인척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연줄이 채용의 결정적 기준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청 상용직은 정원 외 상근 인력으로 정식 공무원은 아니다. 하지만 무기한 계약 근로자로 상용직 노조의 도움을 받는다. 상용직은 입사하자마자 7급 15호봉 월급을 받는다. 상용직 공무원으로는 주로 환경미화원과 청원경찰 그리고 시설 보수 인력과 단순 노무 인력이 포함된다.

금천구청 상용직으로 특채된 직원 가운데는 한인수 전 구청장과 관련 있는 인사가 많다. 한인수 전 구청장은 2002년 6월~2010년 6월(민선 3·4기) 한나라당 소속으로 두 차례 금천구청장을 지냈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낙선했다. 한 전 구청장과 관련된 이 직원들은 환경미화와 청원경찰이 아니라 다른 업무에 종사하는 특징이 있다. 세무2과 이 아무개씨, 가정복지과 이 아무개씨, 공원녹지과 오 아무개씨, 교통행정과 권 아무개씨, 총무과 김 아무개씨, 치수방재과 이 아무개씨 등이 한 전 구청장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이다. 금천구청의 한 공무원은 “공무원이 9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 데 보통 13~20년 걸린다. 스물대여섯 먹은 어린애들이 아무런 재능도 이유도 없이 상용직 7급 대우를 받으니, 다른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연줄과 인맥이 채용 기준

기능직 공무원은 직업공무원법에 분류된 정규직 공무원이다. 전기·기계 기능, 운전 등 특별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기능직 공무원으로 채용한다. 그런데 기능직 특채에서도 유독 한씨가 눈에 띄었다. 토목과·교통지도과·보건위생과·청소행정과·감사담당관실·여권과 등에 한인수 전 금천구청장의 친척이 채용됐다. 교육문화체육과 필기 9급으로 채용된 정 아무개씨(35)와 의회 사무국 경비 8급으로 채용된 장 아무개씨(35)는 한 전 구청장 아들의 친구다. 기능직 직원 가운데 한 전 구청장의 친인척 등 한 구청장 관련자가 32명에 달했다. 금천구청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계약직이나 상용직으로 들어왔다가 나중에 정규기능직으로 ‘신분 세탁’을 하는 사례가 많다. 한 구청장은 구청장 당선을 자기 사람을 마음대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지자체 산하기관은 지자체 유력 인사 친인척들의 집합소라는 공무원노조의 지적이 있었다. 금천구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천구청 산하기관인 시설관리공단의 채용 조건은 연줄이었다(시설관리공단은 구청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로와 기반 시설 공사·보수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를 모아 설립한 법인이다), 금천구 시설관리공단에는 한 전 구청장의 처남, 전 구청장 비서의 조카, 구청 과장의 아들, 구청 팀장의 처 등 지자체 유력 인사의 친인척들이 대거 인맥 지도를 그리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금천구 시설관리공단 문화체육센터 운영팀장(3급)을 맡고 있는 전영식 팀장은 한 전 구청장의 처남이다. 2003년 금천구 사회체육진흥회에서 활동하다 금천구 시설관리공단에 들어왔다. 그 전에는 요식업중앙회에 근무했다고 한다. 전영식 팀장은 “한 전 구청장의 친척이어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체육센터 관장님과 테니스를 치면서 친분을 쌓아 공단에서 일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영지원팀 이 아무개씨(5급)는 금천구청 손 아무개 민원팀장의 조카다. 이씨는 “정규 채용 때 정식으로 입사해 2005년 1월부터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국공무원노조 금천지부의 한 관계자는 “한인수 전 구청장의 연줄이 채용 자격이 되는 전횡에 대해 의회에서 크게 문제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천구청 한 관계자는 “한인수 구청장의 비서는 청소부 채용을 미끼로 500만원을 받았다가 파면됐다. 2006년 8억원가량이었던 한 구청장의 재산은 4년 만에 15억원대로 증가하는데, 자리를 팔아 재산을 늘렸다는 소문이 구청 내에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취재 기간 한인수 전 구청장의 휴대전화와 자택 전화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처남 전영식 팀장은 “해외에 나가 계신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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