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언제쯤이면 조카들이 편히 잠들수 있을지.."

2013. 2. 1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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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10주기

[동아일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로 두 조카를 잃은 김정강 할머니는 15일 대구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전상징 조형물을 찾았다. 김 할머니는 "얼마나 뜨거웠을까…"라며 조형물에 새겨진 조카 이름을 매만졌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5일 오후 대구 동구 용수동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김정강 할머니(69)가 높이 8m의 안전상징 조형물 앞에 백합을 헌화한 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화강석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을 바라보던 그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경아, 은정아∼, 이모는 아직도 이래(이렇게) 너덜(너희들) 보면 눈물만 나는구나." 야윈 손으로 조카의 이름을 매만지던 그는 "쌍둥이처럼 서로 의지하던 조카들이 같은 날 화를 당했다. 시뻘건 불이 얼마나 뜨거웠겠느냐"며 울먹였다.

김 할머니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10주기를 앞두고 희생자였던 조카들을 찾았다.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는 당시의 참사를 교훈 삼아 안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개관한 곳. 김 할머니의 조카들을 비롯해 묏자리를 정하지 못한 희생자 유골 29기가 묻힌 장소이기도 하다. 서은경(당시 26세), 은정 씨(당시 24세) 자매는 참사 당일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강사로 일하던 음악학원으로 출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김 할머니가 조카 자매를 10년 동안 챙기는 건 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카들의 어머니이자 김 할머니의 여동생인 김춘현 씨(당시 47세)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난 지 약 7개월 후인 2003년 9월 11일 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경남 창녕의 작은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태풍 '매미'로 인한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딸과 손녀를 잃은 팔순의 친정어머니마저 지난해 12월 25일 눈을 감았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을 맞았지만 유족과 부상자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하다. 유족 상당수는 뒷수습에 매달리다 가족이 흩어지거나 생계가 엉망이 됐다. 부상자 역시 호흡 곤란과 성대 손상, 목 통증을 호소하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 위원장(69)은 "부상자 대부분이 참사의 악몽과 고통 속에 아직도 힘겹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전동차에 불을 지른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의 범죄로 192명이 희생되고 148명이 부상한 최악의 사건이다. 방화범 김대한은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으나 2004년 8월 수감 중에 지병으로 숨졌다. 시간이 흘러 사고 현장인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 역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벽에 유족과 시민들의 애타는 사연이 적힌 '통곡의 벽'만 남아 있다.

희생의 대가로 얻은 소중한 교훈과 안전을 되새겨야 할 추모사업은 더디기만 하다. 시민안전테마파크와 안전상징 조형물은 세워졌지만 지역주민의 반대로 '추모'라는 단어조차 넣지 못했다. 희생자 유품 전시관과 추모 벽 조성 등 후속 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피해 단체들 간의 합의를 유도하고 추모사업을 이끌 공익재단 설립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대학 입학을 앞뒀던 딸(당시 18세)을 잃은 황명애 희생자대책위 사무국장(56)은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게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이자 가장 큰 추모"라고 강조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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