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매경] 진보당 분열의 근원 NL과 PD

2012. 5. 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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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이 제19대 총선에서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도 분당 위기에 직면하는 내홍에 시달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단순한 갈등을 넘어 목숨을 건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비당권파는 경선 부정 시비가 발생한 비례대표 후보들과 당권파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당권파는 경선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으니 사퇴는 부당하다고 버티고 있다. 물론 경선 부정 시비가 단초가 되긴 했지만 당내 갈등의 뿌리는 보다 더 근원적인 데서 유래한다.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 인사들이 연합해 통합진보당이 탄생했지만 지난 4ㆍ11 총선에 대비한다는 공통점 외에는 정치적, 정책적, 이념적 동질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통합진보당 지도부 인사들은 각기 다른 노선을 걸어왔다.

◆ 이질적 조합의 진보당 통합진보당은 정치권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진보세력으로 분류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성향이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조직 구성을 이루고 있다. 정당이 추구하는 목적도 지난 4ㆍ11 총선에서 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겠다는 것만 유일한 교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을 주축으로 국민참여당이 합류하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가세해 통합진보당이 출범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 출신 이정희, 국민참여당 출신 유시민, 진보신당 출신 심상정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리고 향후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위해 조준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공동대표로 추가 영입했다.

그러나 핵심 당직인 사무총장과 공동정책위의장을 민노당 출신 장원섭, 이의엽 씨가 각각 맡음으로써 이정희 공동대표와 함께 민노당 출신이 당권파로 불리게 됐다. 국민참여당 출신은 옛 열린우리당 인사 중 민주당을 떠난 이른바 '노무현의 사람들'로 유시민 공동대표와 천호선 공동대변인, 강동원 씨 등이 있다.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는 한때 민노당에서 활동했으나 정책노선 등의 갈등으로 진보신당을 창당해 나왔다가, 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한 인사들로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씨 등을 들 수 있다.

◆ NL과 PD의 해묵은 갈등이 연원정치권에서는 통합진보당 갈등의 연원을 보다 더 근본적인 데서 찾고 있다. 과거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학생운동을 양분했던 NL(National Liberationㆍ민족해방)계열과 PD(People's Democracyㆍ민중민주)계열의 반목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안에서 NL은 당권파, PD는 진보신당 탈당파가 해당된다. 국민참여당도 굳이 분류하자면 NL에 해당하지만 민노당 출신 당권파와는 거리가 있다.

단순화하자면 NL은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가 외세에 의한 분단, 즉 미국의 개입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우선 미국을 몰아낸 후 북한과 통일을 추진한다는 노선을 따른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ㆍ미 FTA 반대 등에 주력한다.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른바 '주사파'도 NL계열로 분류된다.

PD는 옛 소련의 순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시한다. 민중에 의한 혁명을 통해 독재를 타도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이념을 추구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종북 또는 반미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재벌개혁과 노동운동에 역량을 집중한다. 실제로 NL계열인 진보당 당권파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북한 나름의 자위를 위한 이유가 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반면 비당권파인 PD계열은 당의 '종북성 제거'를 요구해 왔다.

NL과 PD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운동권 출신들이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1월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0년에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으나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얻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PD계열이 민노당을 주도했지만 NL계열의 민노당 입당이 늘어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NL계열이 PD계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지하조직 '일심회'를 만들어 민노당에 침투한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 불거지고 최기영 당시 민노당 사무부총장이 핵심 당직자와 당원명부를 북한에 넘겨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NL과 PD의 극렬한 대립이 시작됐다.

이어 2008년 2월 임시 전당대회에서 PD계열은 일심회에 연루된 당원의 제명을 요구했으나 NL계열이 이를 무시하자 대거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 당권파의 뿌리 민혁당 & 경기동부연합이정희 공동대표를 필두로 한 당권파가 통합진보당의 주축이라면 과연 당권파의 근원은 어디일까.

당권파의 면면을 보면 이석기 비례대표 2번 당선자와 김재연 3번 당선자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성남 중원에서 진보당 몫으로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가 성추행 사건으로 낙마한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 윤원석 전 사장과 그 뒤를 이어 후보가 된 김미희 전 민노당 최고위원도 당권파에 속한다. 장원섭 사무총장과 이의엽 공동정책위의장도 당권파의 주요 인사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당권파의 핵심인사들은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민혁당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김영환 씨가 간첩 윤택림을 통해 91년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남한으로 내려와 이듬해인 1992년 3월에 창당한 지하단체다. 주체사상을 주요 이념으로 하고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는 조직이었다.

1997년 김씨의 전향과 민혁당 해체 선언으로 세가 약화됐으나 1999년 당시 안기부에 의해 민혁당의 존재와 과거 활동의 전말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와해됐다.

진보당 비례대표 2번 당선자 이석기 씨는 당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으로서 수배를 받아 3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 검거됐다. 민혁당 영남위원회 부산지역위원장이었던 이의엽 현 진보당 공동정책위의장도 2000년 9월 검거됐다.

민혁당 산하의 영남위원회는 민혁당 사건보다 1년여 앞서 발각됐는데 진보당의 김창현 울산광역시당 공동대표, 진보당 산하 진보연구원 박경순 부원장이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서울 관악을에서 당선된 이상규 당선자도 민혁당 관련 판결문에 등장한다.

당권파의 주축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1991년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등 13개 단체와 재야 운동권이 한데 모여 8개 지역연합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으로 출범했는데 그중 하나가 경기동부연합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처음부터 옛 민노당의 주류는 아니었으나 PD계열을 몰아내고 전국연합 중심의 NL계열이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인천연합, 울산연합, 광주ㆍ전남연합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했다.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지목되고 있고 우위영 진보당 공동대변인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성남지부장 출신으로 경기동부연합에서 활동했다.

◆ 주사파의 이동 민혁당 출신이든 경기동부연합 세력이든 근간은 '주사파'다. 다만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위해서 또는 기성 정치판에 들어온 후에 이념적 정체성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북한과 직접 연계돼 활동한 지하당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이후 거의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서울대 82학번 김영환 씨가 독자적으로 주체사상을 수용해 학생운동권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자생 '주사파'가 형성됐다.

김씨는 북한 방송 '구국의 소리'와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을 공부한 후 서울대 동아리인 고전연구회 동료들에게 이를 설파하고 '강철서신' '해방서신' 등 팸플릿을 통해 수도권 대학에 전파해 나갔다.

이어 1986년 주사파 세력은 구국학생연맹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다가갔고 이를 기반으로 전대협이 결성되면서 학생운동의 핵심을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의 임종석ㆍ임수경 씨 등이 당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이후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북한 주민의 참상 등이 알려지고 주사파의 원조인 김영환 씨가 전향하면서 일부는 주사파를 포기했다.

그러나 남은 세력 중 상당수는 민주노동당을 통해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민주노동당 안에서 세력을 급속도로 확산해 현재 통합진보당 중심세력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이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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