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대학생 여친, 스스로를 마녀라고 했다"

2012. 5. 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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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살해 대학생 여친과 '사령카페' 활동한 여고생의 증언위안도 잠시…등지자 보복, 참극 '사령카페'의 두 얼굴

고등학생 송유나(가명)양은 반신반의했다.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바람산 어린이공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전하는 기사에 송양이 알고 있는 이들이 등장했다. "그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랬을 법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 놀랐죠."

5일 저녁, 경기도 ㄱ시 분식점에서 송양을 만났다. 신분 노출을 극력 꺼렸지만, 깔끔한 외모와 단정한 차림새는 중산층 부모를 둔 여고생의 것이었다. 송양은 "사령카페의 실상을 전하고 싶다"며 사건 관련자들에 얽힌 기억을 끄집어냈다. "한때는 저도 (사령에) 미쳐 있었거든요."

지난해 10월, 학교 친구가 송양에게 "재밌는 게 있다"며 인터넷 사령카페 주소를 알려줬다. "한창때는 5분에 한번씩 글이 올라왔어요. 애들이 스마트폰으로 수업 중에도 글을 올렸거든요." 송양이 가입한 카페는 지난해 6월 네이버에 개설됐다. 사령카페의 본거지라는 의미에서 '본사카'라 불린다. 한때 회원이 3000여명에 이르렀다. 지난 2월 폐쇄됐는데, 이를 전후해 갈라져 나온 100여개의 크고 작은 사령카페가 현재 활동중이다.

사령을 가족처럼 여기며가정불화 잠시 잊었지만…카페회원 한때 3000여명상대 저주·주술 글 떠돌자회원간 다툼·비방 심해져"사령은 없다" 선언뒤 탈퇴그러자 내게 공격 쏟아져

"나도 '사령 소환'(사령을 불러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송양은 말했다. 그에게 사령은 "악령을 쫓는 수호신이자 애완동물처럼 키울 수 있는 존재"였다. 실제로 <한겨레>가 어느 비밀 사령카페에 접속해 살펴보니, 정서적 애착을 표현하는 글이 많았다. "꼬마 사령이 배고프다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모습이 보이면 사진을 같이 찍고 노래방도 가고 싶다", "내 손 잡아 주신 거 안다.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느 회원은 "시험 시간에 가슴이 아팠다. 내 사령들이 놀아달라고 나를 때린 거였다. 내 새끼들 미안해, 미안해"라는 글을 올렸다.

송양도 사령으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그 무렵, 가족들끼리 맨날 싸웠어요. 외로웠어요. 탈출구가 필요했죠. 사령카페 활동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 카페의 매니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다수 회원이 중고등학생이고 그중에서도 여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령을 여럿 불러 '사령팸'(사령 가족의 약어)을 구성해, 사령을 언니·오빠로 부르거나 스스로 사령들의 엄마로 지칭한다.

송양은 지난해 11월, 박아무개(20)씨를 '본사카'에서 만났다. 지난달 30일 살해당한 김아무개(20)씨의 옛 여자친구인 박씨는 김씨가 숨지기 직전 범행 현장을 빠져나왔다. 현장에 있었던 홍아무개(15)양도 같은 카페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송양은 기억했다. 김씨를 직접 흉기로 찌른 이아무개(16)군은 다른 사령카페에서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

송양이 카페에 가입한 직후부터 사령카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죽으면 사령이 된다"며 자살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무기구현'(기를 모아 상대를 공격하는 것) 등 저주나 주술이 게시판에 떠돌았다. 이를 비방하는 회원들이 등장하면서 다툼도 많아졌다. 결국 지난해 말, 박씨의 주도로 새로운 비밀 카페가 만들어졌다. 비방에 신경쓰지 않고 '더 깊은 사령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송양도 가입했다. 카카오톡에 채팅방도 만들었다. "수업 시간에도 (사령에 대해) 대화하려면 채팅방이 필요했거든요."

송양이 사령 활동을 그만두게 만든 것도 박씨였다. "악령계에 가서 마녀로 인증받았다면서 스스로 마녀를 자처했다"고 송양은 박씨를 회고했다. 대학생인 박씨는 '사령의 세계'에서 10대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언니가 하는 말이면 100% 믿었다"고 송양은 말했다.

사령 활동의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된 송양은 지난 1월 "사령은 없다"고 선언하고 카페를 탈퇴했다. "(박씨 등이) 채팅방에서 나를 상대로 '언령'(기를 모아서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하기도 했대요." 학교와 가족의 압박을 피해 사령으로부터 위안을 구하던 이들이 비밀스런 자신의 세계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양상으로 변해간 것이다. 고교생 이군·홍양 등이 잔혹한 범행에 가담한 배경에 박씨 등이 주도한 사령카페 활동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3일 살인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던 박씨를 주말 동안 다시 불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사령카페 활동에 다른 피의자들보다 깊이 관련된 점은 사실이다.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할 부분이 있는지 조사하여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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