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물가지수' 이번에도 실패하나

송지혜 기자 2012. 2. 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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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갖고 장보면, 어디서 잃어버린 것 같아. 계산해보면 맞는데, 산 게 별로 없거든." 지난해 12월 주부 고명진씨(54)는 서울 가락동 수산물공판장에서 신선한 갈치 한 마리를 손에 들었다가 놓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결국 갈치 여섯 토막을 2만7000원에 구입해 저녁 식탁에 올렸다. 이날 국은 육개장, 후식은 단감. 한 끼 식사에 든 비용이 무려 6만원이었다.

고씨는 매년 쓰는 가계부를 비교해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물가가 전년도와 대조해 터무니없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고씨 가계의 식료품비는 2008년 3월 56만9120원, 2009년 3월 68만7170원(전년 대비 20.7% 상승), 2010년 3월 76만5280원(11.3%), 2011년 3월 81만9620원(7%)이 들었다. 3년간 평균 8만3500원(10.6%) 오른 수치이다.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네 식구 아침식사에 1만원, 큰딸 점심 도시락에 들어가는 김치·햄·달걀·어묵 따위에 4000원이 든다. 네 식구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먹으려면 고등어·나물·감자 따위로만 찬을 마련해도 3만원은 거뜬히 넘어선다. 이따금 먹는 사과·배·감·귤 같은 후식은 1만원이 넘는다. 먹는 양이나 내용은 변하지 않았는데 가격만 올랐다.

1월8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품목별 소비자물가상승률'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가격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품목은 고춧가루다. 전년보다 50.6%나 치솟았다. 콩(43.7%)·부엌용구(42.9%)·오징어채(40.9%)·마른오징어(37.5%)·고등학교 교과서(36.6%)·장갑(31.3%)·오징어(29.1%)·소금(28.6%)·돼지고기(28.1%)가 그 뒤를 이으며 상위 10대 상승 품목에 올랐다.

이보다 앞선 1월3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품목별로 물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이름을 걸고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고추 국장' '배추 과장' '쇠고기 차관보'처럼 공직을 걸고 물가를 챙기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배추 가격이 1만5000∼2만원이면, 20달러인데 지구상에 20달러짜리 배추가 어디 있느냐. 올해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MB 물가지수' 번번이 실패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되는 세 번째 물가 관리다. 2008년 3월, 생활필수품 52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는 'MB 물가지수'를 지정했다. 2008∼2011년 이들 품목의 물가상승률은 15.2%에 달했다. 2011년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요금·삼겹살 등 10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는 '신MB 물가지수'를 발표했다. 이들 품목은 22.5%나 치솟았다. 반면 같은 기간에 소비자물가지수는 10%였다. 즉, MB 물가지수와 신MB 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보다 각각 1.5배와 2.25배 더 많이 오른 것이다.

2008년 1월과 2012년 1월 식료품비를 비교하면 그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우유(1ℓ) 1750원→2350원(34% 상승), 종가집 포기김치(4.5㎏) 2만2900원(3.7㎏) →2만6200원(29%), 목우촌 로스햄(500g) 4450원→6750원(51%), 농심 신라면(5개입) 2600원→3170원(21%), 하림 들깨녹두삼계탕(800g) 8500원→1만3900원(63%). 4년 전 5개 품목을 구입할 때 4만200원이 들었던 데 비해 지금은 5만2370원이 든다. 총 1만2170원(30%)이 올랐다.

2008년 8월과 2011년 8월, 3년 사이 음식점 가격 오름세도 심상치 않다. 냉면(서울 주교동 우래옥) 9000원→1만1000원, 칼국수(서울 무교동 곰국시집) 7000원→9000원, 자장면(서울 회현동 야래향) 5000원→7000원, 돼지갈비(250g·서울 신당동 우성갈비) 8000원→1만2000원, 보쌈(일산 설문동 두리원손두부) 2만원→3만원. 기본적으로 식사는 2000원, 요리는 5000원 이상 올랐다.

장사를 하는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교남동에 위치한 중식집 현무관 신우섭 사장(34)은 "돼지고기·식용유·설탕·양파·달걀 가격 상승 때문에 지난해 4월부터 자장면 값을 500원 인상해 4500원씩 받는다. 서민들이 오는 곳이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이현수씨(58)는 흥정하는 손님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는 물건 값을 깎아줄 수 없다. 귤 한 상자를 2만5000원에 팔면 2000원 남는다"라고 푸념했다.

그나마 자녀의 교육비 지출이 없으면 다행이다. '품목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따르면, 전년도에 비해 지난해 고등학교 교과서는 36.6%, 고등학교 학원비는 4.9% 상승했다. 전체 물가상승률 4%를 웃돈다. 사교육비 부담은 도시 근로자 가구의 지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통계청은 교육비가 38만5000원으로 소비지출 1위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사교육비 비중은 더 높아진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황 아무개씨(52)는 올해 고3·고1이 되는 자녀를 두고 있다.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총 120만원가량. 황씨 가계수입의 30% 이상이 교육비로 쓰인다.

고3 자녀가 학원에서 수강하는 논술·영어·수학 과목은 80여 만원. 고1이 되는 둘째 역시 수학·영어에 31만9000원을 지출한다. 교재비와 문제집을 사는 데 10만원가량이 추가 지출된다. 최근 황씨는 자녀들의 학원비 지출이 부담돼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황씨는 "사교육비가 부담되지만, 모든 지출을 줄여도 교육비를 줄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억눌렀던 공공요금 인상도 물가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당 774.37원이던 도시가스 요금을 815.78원으로 인상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전기요금이 평균 4.9% 올랐다. 김중겸 한국전력 신임 사장은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하철, 간선·지선버스 요금을 1000원으로 올린 서울시는 올해 이를 1100원으로 추가 인상할 방침이다. 하수도 요금도 2014년까지 매년 단계적으로 2배 가까이 올린다.

문제는 소득이다. 1년 전과 비교한 지난해 실질임금 상승률은 -3.49%. 소비자물가가 4% 뛰었지만, 임금이 오르지 않아 노동자가 실제로 받는 월급은 줄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낸 경제고통지수는 7.5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4%와 실업률 3.5%가 더해진 결과다. 이는 카드대란 직후인 2001년 8.1,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7.9 이후 지난 10년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11년 12월 생필품 가격 동향에 따르면, 시중에서 유통되는 102개 주요 생필품 가운데 전달보다 가격이 오른 품목은 전체의 68%에 달했다. 유통업계는 된장찌개 3∼4인분을 끓이기 위해 된장(80g)·호박(반 개)·감자(100g)·양파(100g)·대파(100g)·바지락(200g)·두부(반 모)·고춧가루(10g)를 사는 데 6600원을 써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4년 동안 물가와의 전쟁을 치러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환율·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을 그대로 둔 채 '공무원의 개인기'에 의존한 물가관리 대책을 펴온 것이 한계에 이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부 고명진씨는 "경제가 살아났다고 해도 물가가 오르면 경제상황은 나쁜 것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라고 하지만 장을 보면 체감 상승률은 몇 배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취재 도움: 김지혜 인턴 기자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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