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나도 '씨바' '졸라' 하고 싶다"

대담 2011. 12. 2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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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세대에게] <11> 문재인 변호사

[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이현수 최우영기자][[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세대에게] < 11 > 문재인 변호사]

아직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문재인 변호사는 "기타 정도는 배워놓았더라면"하고 후회했다. 그 정도 낭만은 지금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 같았다. "예능엔 재능이 없지만, 막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문제가 없어 오히려 문제인 사람, 문재인?

인터뷰 중에 딸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드럼이 치고 싶어 밴드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SKY 나오지 않아도 지금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자랑한 바로 그 딸이었다. 마주 앉은 기자에게도 대화가 다 들렸다.

"아빠, 죄송한데요. 오시는 길에 건전지 좀 사오세요" "그래~, 얼마 얼마짜리?" "AA짜리 4개요" "음 그래 알았다."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출가한 딸은 문 이사장이 나가고 없을 때 엄마가 걱정돼 가끔씩 친정을 찾는다. 그의 집은 경남 양산에서도 아주 외진 곳. 청와대를 나오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려고" 이사한 곳이다.

지난 9일 부산시 연제구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권주자로서가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선배 문재인으로서 인터뷰를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온몸을 던진 인권변호사, 거기에다 가족을 위해 AA짜리 건전지를 챙기고, 드럼을 치고 싶어하는 딸을 지지할 줄 아는 선배라면, 자격이 충분하다 싶었다.

"젊은 시절 일탈이 내 감수성을 키웠다"

그를 만나기 전엔 '문제가 없어 오히려 문제인 사람, 문재인'이라 생각했다. 그는 왠지 실수라는 걸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문제아였다고 대놓고 말했다. 대신 그런 일탈에서 자유로운 정신과 비판적 감수성을 배운, '착한 문제아'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술을 많이 마셨어요. 한번은 봄소풍 때 친구와 1차 막걸리, 2차 소주를 진탕 마셨는데, 친구가 인사불성이 돼서 담임선생님 앞에서 기절을 해버렸어요. 할 수 없이 저도 자수를 했는데, 그때 걸리고 나서 선생님이 저만 보면 '어이, 문재인, 막걸리 한잔 어때' 그랬죠. 그때는 용케 넘어갔는데, 결국 학교 뒷산에서 막걸리 마시다 정학을 당했죠. 규칙하고는 잘 안 맞는 체질이다, 늘 생각했죠, 대학 때도 시국적인 것 때문에 구속되고 제적되기도 했고, 통행금지 위반해서 구류를 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변호사 하면서도 술 먹고 실수한 사람은 더러 이해가 갈 때가 많아요."

젊은 시절 규칙의 구속으로부터의 일탈, 나쁘기만 한 것 같지 않았다. "당시에는 일탈이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경험이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고성방가하면서 감수성의 촉수를 키우는 거죠. 규칙, 그거 너무 잘 지키기만 하면 아주 온순한 시민, 순종적인 시민이 되고 마는 거잖아요. 역사의 발전도, 개인의 발전도 없는. 그래서 삶 자체를 너무 규격화해서 거기서 한두 발짝만 벗어나도 대단한 문제인 것처럼 여기는 지금 교육이 안타까운 거죠."

반평생 부조리와 불의에 저항했던 그의 삶의 밑천도 고교대항 야구시합만 있는 날이면 부산고, 부산상고 학생들과 엎치락뒤치락 패싸움을 벌이던 시절(그는 경남고 출신이다) 낭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패, 남의 시선, 그거 다 쫄지마"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눈에 보이는 구속과 규율이 사라지자, 낭만도 사라졌다. 지금 청년들은 모든 게 내 책임, 내 능력 탓이라 생각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도 이것을 안타까워했다.

"암울했던 독재시대에는 자유와 인권을 가로막는 적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였거든요. 그러면 오히려 쉬울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삶의 문제이다 보니, 적이 누구인지,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는 거에요. 이럴 때 빠지기 쉬운 게 바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취업이 안 되는 건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자기자신에 대해 쫄고 있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달달 볶아야 하는 것, 청년문제에 대한 그의 진단이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쫄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삶, 지나온 실패, 앞으로 겪게 될 실패,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타인의 시선, 이런 것에 대해 다 쫄지 마라는 것이죠. 실패하고 자빠져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면 길이 나오거든요."

그는 "지금 청년들은 세상에 당당히 임할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단군이래 가장 능력 있잖아요. 선배세대들이 유교적 가치, 가부장적 가치에 갇혀 가질 수 없었던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을 갖추고 있잖아요. 그리고 드디어 적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된 거에요. 전세계적인 현상이죠.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2040의 분노, 미국의 반월가 시위를 보세요. 이젠 젊은 사람들이 정치의식, 사회의식을 가지게 된 거에요."

쫄거나 주눅들지도 말고, 분노와 치열함을 속으로만 삼키지도 말고, 오히려 그 분노를 표현하고 요구하라는 것이다.

"나도 '씨바' '졸라'가 부럽다"

그런데 지금 대중이 평가하는 문 이사장의 캐릭터는 평상심, 침착함, 반듯한 품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보여준 그의 절제된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장례식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백원우 민주당 의원을 대신해 정중히 사과하던 모습.

"저도 주체를 못할 정도로 화가 날 때도 있고, 너무 당황스러워 허둥지둥하기도 하죠. 제 속으로는 악마가 우글거리든, 욕설이 부글거리든, 눈앞이 캄캄하든, 겉으로는 거룩한 말로, 아주 침착한 듯이, 허허. 어떻게 보면 체면 차리는 거라 할 수도 있고요. 백원우 의원 때도 그 짧은 순간 갈등이 많았어요. 한편으로 '백원우 잘했어' 그런 마음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상주로서) 예는 갖춰야 할 것 같고, 그게 백원우를 살리는 길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꼼수처럼 '씨바' '졸라' 할 수 있는 게 참 부럽더라고요. 저는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젊은 세대만큼은 자기 주장 감추지 않고 밝히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욕설이 속으로 부글거릴 때도 많다고 그는 얘기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뱉어본 욕이라곤 "인마 정도". "변호사 시작할 때 노무현 변호사와 같이 했잖아요. 저보다 일곱 살이 많았는데도 깍듯하게 존칭 써가며 대해줬어요. 어린 나이에 변호사를 했기 때문에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노력도 했고요. 민주화 운동할 때부턴 맥주 안 마시고 소주만 마신다, 가라오케는 절대 안 간다, 삶 자체를 민중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죠. 아마 이런 것들이 지금 제 성격에 많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그가 평생 노래방에 가본 거라곤 딱 2번, 술은 좋아하지만 주로 소주만 마시지 폭탄주는 '아주' 싫어한다. 그는 누구보다 분노할 줄 알지만, 그 분노를 거르고 숙성시켜 표현할 줄도 아는 사람 같았다.

"가난이 나를 일찍 철들게 했다"

그는 아직 자전거를 탈줄 모른다. 어린 시절 자전거 살 돈도 없었고, 자전거 빌려 탈 돈도 없었다. 어머니를 따라 기차표 암표 장사하러 따라가기도 했다. 물론 어머니는 포기하고 왔지만 말이다. 그래서 돈을 왕창 벌고 싶었을 것 같기도 했다.

"가난이 참 고통스러웠는데, 자존감이랄까, '돈이 없으면 불편하긴 하지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면서 처지를 달랬죠. 살아오면서 세속적인 성공에 크게 마음 두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가난 때문에 주위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됐고, 일찍 철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청년시절 문재인보다 지금의 청년들이 더 가난할지도 모른다. 그는 자전거를 못 타지만, 지금 청춘들은 취업을 못하고 결혼을 못한다, 그는 암표 장사에 따라가야 했지만, 지금 청춘들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팔아야 한다. "저희 때는 갈수록 좋아졌는데, 지금 젊은 친구들은 결핍을 모르고 자라다가 학교 마칠 때 되면 앞길이 턱 막히는 거죠. 그것이 정말 안타깝죠. 다 기성세대 책임입니다." 그는 자신의 배고팠던 가난보다 청춘들의 할 일없는 가난에 진심으로 더 마음 아파했다.

"배고팠던 나의 가난보다 지금 청춘들의 할 일 없는 가난이 더 아프다"

청춘들을 위해 직접 새로운 질서를 만들 생각이 없는지,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대놓고 물어봤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제가 힘을 보태야지요. 안철수 원장도 느끼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분께는 굉장한 지지가 있잖아요. 이미지만 좋게 보여진 게 아니라 지지를 받을 만한 실질적인 것을 갖춘 분이잖아요. 안 원장이 직접 하지 않겠다고 하면 힘을 보태라고 요청을 드려야 할거고, 직접 할 작정이라면 거꾸로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거고. 그분이 직접 하시든, 안 하시든 책임감을 느끼셔야 하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탬이 되고 기여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직접 하겠다'가 아니라 '보탬이 되고 기여가 되겠다'는 그에게는 그런 책임감이 가장 큰 '운명'인 것 같았다.

문 이사장의 사무실에는 괘종시계 유리에 쓰여진 '축 발전 노무현'이라는 글씨만이 그의 반평생 벗이자 동지였던 노 전 대통령의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16년 전 문 이사장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을 때 선물 받은 시계였다. 1995년 그 해는 노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에 출마했다 떨어졌던 때. 노 전 대통령은 낙선연설에서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살아있는 영혼'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쫄지 말 것", "자유로운 정신으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것", 문 이사장의 메시지는 노 전대통령 낙선연설의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이현수 최우영기자 h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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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이현수 최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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