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보낸 12년보다 공무원 생활 4년이 더 좋더라"

2011. 11. 13.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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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편한 직업' 더 이상 없다

[중앙일보]

성형외과와 피부과, 치과 간판이 빼곡히 벽면을 채우고 있는 서울 압구정동 일대. 최정동 기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 정부 부처에서 기술서기관(4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명식(가명·47)씨. 그는 4년 전까지만 해도 경기도 화성시의 한 외과의원 원장이었다. 김씨가 12년간이나 운영하던 의원을 접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극심한 경쟁 때문이었다. 김씨는 의대 졸업 후 병원에서 월급의사로 일하다가 개원을 했다. 2억원을 투자했고 간호사 4명을 뒀다. 개원 후 월 순이익이 1000만~1500만원 정도 돼 그런대로 쏠쏠했다. 외과인 탓에 환자의 불평과 항의가 적지 않았고 어린 간호사들과 함께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버틸 만했다.

그러나 조용하던 동네에 경쟁 병·의원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신 시설과 호텔급 서비스를 자랑하는 대형병원까지 들어섰다. 환자들은 점차 새로운 병원으로 몰렸다. 그러자 병원 수입은 차츰 줄어 손에 쥐는 돈이 600만~700만원 선으로 반 토막 났다. 게다가 상황이 더 악화될 건 뻔했다.

김씨는 "죽도록 공부하고 힘든 인턴·레지던트 생활을 겪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의사는 연금도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칼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4년 전 모든 걸 버리고 진료와 의료지원 업무를 맡을 공무원 채용에 지원했다. 연봉은 8000만원 정도다. 그는 "오후 6시 전에 퇴근을 할 수 있고 주말에는 항상 가족들과 보낸다"며 "의사로 지낸 시간보다 최근 4년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 수도권 지방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까지 하고 3년 전 개업한 50대의 A 변호사. 그는 최근 같이 일하던 초년병 변호사를 해고했다.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개업 1년차 땐 벌이가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관'의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버텨 보자"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끌어갔지만 적자가 이어졌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봉급에 드는 돈이 매달 1000만원 안팎이었다. 하지만 수입이 1000만원이 채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그는 "한때는 사건을 물어다 주는 '브로커'를 쓸까도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통상 '사무장'이라 불리는 브로커를 그는 '마약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한번 브로커가 가져오는 사건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브로커에 사건수임을 의존하는 형태가 고착되기 쉽기 때문이다. A씨는 "브로커에게 건당 300만원 안팎을 주고 나면 사건을 맡아도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동료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B 변호사도 비슷한 고민을 하다 아예 '국선전담변호사'를 하기로 했다. 국선변호사를 하게 되면 '좋은 일'을 한다는 보람도 있는 데다 매달 800만원 안팎의 고정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한 변호사는 "내년이면 로스쿨에서 1500명이나 되는 변호사가 첫 배출되는 데다 사법연수원에서도 1000명 가까운 인력이 쏟아지는데 정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한때 신분 상승의 통로로 여겨졌던 사자 직업에 이상 기류가 확연해지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낙오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신분상승의 통로가 막히고 어려워지면서 또다른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평균 수입(사업자등록 된 사업장 기준)은 변리사가 5억9000여만원, 변호사 3억9000여만원, 회계사 2억8000만원이었다. 하지만 변호사의 경우 연수입 2400만원 이하를 신고한 비율도 무려 15.5%나 됐다. 변리사가 9.8%, 회계사 9.1%이었다.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세다. 변리사의 경우 수입 2400만원은 평균치의 4%에 불과하다. 최고 소득자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진다. 그만큼 고소득 전문직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장모(43)씨는 "예전보다 회계사가 많아져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고 있다"며 "수입이나 대우가 옛날만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병·의원, 한의원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의원은 2006년 기준으로 1312곳이 개업하고 776곳이 문을 닫아 폐업률 59.1%를 기록했다. 폐업률은 갈수록 증가해 지난해엔 75.1%나 됐다. 치과의원도 지난해 폐업률이 62.7%를 기록했다. 일반의원의 폐업률은 더 높아 77.9%에 이른다.

병·의원 분야의 회계업무를 많이 담당해온 성만석 회계사는 의료계의 빈익빈 부익부를 이렇게 설명한다.

"흔히 잘나가는 성형외과의 한 해 매출액은 700억~800억원에 이른다. 성형외과 마진율은 40%나 된다. 반면 개원 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산의 한 전문의는 3년 전 12억원(9억원 대출)을 투자해 피부과를 오픈했다가 월 600만원에 달하는 이자와 운영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한의원은 자생한방병원 등 일부 유명 한방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사(枯死)' 직전이다. 최근 개원한 지방의 한 한방병원은 환자가 없어 200개 병상 중 30%만 가동하고 있다. 한의원은 격화되는 경쟁 외에 주요 수익원이었던 한약(보약)을 대체하는 홍삼·비아그라 등의 등장으로 이중 타격을 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직종 단체들에서는 한결같이 수급조절을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우선 내세우고 있다. 시장에 비해 너무 많은 인력이 배출되면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장동민 홍보이사는 "한의사가 과거 40년 동안엔 총 8000명이 배출되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한 해 약 800명꼴로 새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현재 한의사가 2만 명으로 늘었다"며 "이런 식이면 폭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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