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수업" 의욕도 잠시.. "문제나 풀어요" 학생 원성에 주입식 U턴

2011. 10. 5.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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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사를 말하다] <3> 입시에 실종된 창의인성교육

너무 높은 현실의 벽

독서 수업 애써 준비해도 "입시에 방해" 학부모 민원… "학원 진도 맞춰라" 압력도

고뇌 깊어지는 교단

학생부 조작 강요 당하고 비수능 과목은 설 땅 잃어… "교육 파행" 알고도 자조만

경기 안양 A고 3학년 국어 교사 L씨는 지난 학기 선택과목으로 야심차게 독서수업을 시작했다가 결국 몇 주 만에 수업을 포기한 뒤 교사의 역할에 한계를 절감했다. L씨는 학생들과 도서실을 방문, 일주일마다 읽은 책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기획했다. 선택과목시간을 통해서라도 미지의 책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 결국 학생들의 논술ㆍ구술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도움이 될 책을 추리고 수업준비에 공을 들였지만, 한 달도 안돼 수업은 삐걱댔다. "그냥 문제집 풀어요", "고3이 시간도 없는데 책은 문제집에 나온 지문 읽으면 되잖아요" 등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흘러나온 것. 동료교사들도 "거, 고3반 들어가며 너무 이상적인 것만 찾는 것 아니냐"는 핀잔을 줬다. 수업시간마다 심드렁한 학생 반응에 못이긴 L씨는 기존 국어수업에서도 하는 EBS 수능 언어영역 교재 풀이를 반복하는 것으로 수업 내용을 바꿨다.

L씨는 "입시를 앞두고 조급한 학생들의 마음을 탓할 수만은 없고, 그것까지 헤아리는 일이 교사의 역할"이라면서도 "언제까지 대한민국 교실이 온종일 수박 겉핥기식 문제풀이에 매달려야 하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창의수업보단 입시가 우선

지난해부터 창의인성교육, 잠재력평가 등이 강조되고 있지만 교사들은 공정한 입시를 치러야 하는 현실과 창의성 교육정책이 뒤섞인 교실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계량화한 내신점수로 공정하게 입시를 치러야 하는 일이 절박한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염두에 둔 수업과 평가는 언감생심이라는 것.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들과 함께 각종 창의적 수업모델과 수업지도안을 개발해 일선학교에 배포하는 한편, 각종 교사연수와 포럼을 열고 있다. 또 각 시도교육청은 시험의 서술형 평가 비율을 30%, 40% 등 일정비율 이상으로 확대하라는 지침을 일선학교에 전달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문제풀이나 주입, 암기식 교수법보다는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수업하고 평가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충남 B고 사회과 교사 K씨는 "애초에 교사에게 미리 짜인 교육과정 외의 다양한 시도를 할 권한이 많지 않은 데다, 독특한 수업을 시도하면 '입시 고민은 안 하냐'는 학부모 민원에 학교만 시끄러워진다"며 "교사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식으로 자조하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 C고 국어과 교사 Y씨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고 에세이 형식의 수행평가를 받아 교사의 재량으로 점수를 매겼다가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 조금만 올려달라는 항의와 민원에 종일 시달렸다"며 "중간고사 주관식 문제조차 무조건 단답형, 암기해서 똑 떨어지는 답만 나오는 문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교사들 사이의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상급학교 진학이 절박한 학생들을 매일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고리타분한 주입식 교육이 최선이라고 느낄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경기 파주의 한 혁신학교 지리과 교사는 "환경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혁신학교에서조차 교사의 자율적, 창의적 교과수업은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인성교육? 조작과 편법 교육!

이처럼 입시가 일선학교의 최우선 과제가 되다 보니, 학생에게 바른 길을 보여야 할 교사들이 입시에 관해서는 편법과 조작을 가르치는 상황까지 비일비재하다. 한국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서울 자율형사립고의 한 교사는 "학교장으로부터 학생의 수행평가 점수를 조정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올해 교장 및 교사가 집단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 적발된 서울 B고, 지난해 기업가 아들에게 시험 답안지를 유출한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 된 서울 D고 등 학교 차원의 부정행위도 적지 않다(한국일보 3월 31일자 11면 참조).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국어과 교사는 "성적이 높은 중학생을 많이 유치하려면, 대학을 잘 보내야 하고 그러려면 학교가 소위 상위권 학생들만 수행평가 점수를 높여줘 내신을 부풀리는 것"이라며 "교사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파행적 인성교육의 한 단면 아니겠냐"고 개탄했다.

입시에 방해되면 무조건 "No"

교사들이 수업권 자체를 침해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체육수업, 비수능 과목 수업이 아예 폐지되거나, 학부모 민원에 따라 수업 내용이 바뀌는 것이다. 인천의 한 일반고 교사는 "체육시간에도 '수능 준비해야 하니 실내수업 하라'는 교장의 강요 때문에 아예 체육수업은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방학 중 교육과정목표에 따라 나름대로 교재를 재구성해 수업을 준비했다는 경기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는 "학기가 시작된 뒤 학부모로부터 '학원 진도와 맞지 않는다'는 민원이 들어왔고, 수업계획안에 동의했던 교장이 '무조건 진도대로 교과서만 나가라'고 지시해 어쩔 수 없이 따랐다"고 허탈해 했다.

서울 한 일반고 수학과 교사는 "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는 어떤 전문성을 갖추고 교과를 지도할지, 어떤 인생의 지도자가 될지 푸른 꿈에 부풀었는데 요즘은 그냥 어떻게 EBS 문제 하나 더 풀지만 생각하는 상황"이라며 "정말 교사가 이래도 좋은지 죄책감만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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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기자 kkang@hk.co.kr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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