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가 제주 공동체를 산산이 부쉈다

주진우 기자 입력 2011. 8. 31. 12:23 수정 2011. 8. 3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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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바다. 제주 사람들은 구럼비낭나무(까마귀쪽나무)가 많다고 해서 구럼비 해안이라 부른다. 구럼비 해안은 1㎞에 이르는 용암 바위 한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디나 엽서가 될 만한 그림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제주올레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나다는 7코스가 지나는 길목이다. 이곳은 생명의 땅이기도 하다. 멸종 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와 자색수지맨드라미, 천연기념물 연산호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앞바다에는 돌고래가 헤엄치며 논다. 강정마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에 선정되었다.

2007년 4월26일. 이 아름다운 생명의 땅이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강정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날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해군기지 때문이다.

2002년 해군이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첫손가락에 꼽힌 곳은 화순항(서귀포시 안덕면)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2005년 위미마을(서귀포시 남원읍)로 해군기지 예정지를 바꾸었다. 여기에서도 주민들의 반발이 컸다. 그러자 강정마을로 예정지가 옮겨진 것이다.

해군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강정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과 제반 여건이 불리했다. 멸종 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이 많아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해군은 주민과의 마찰이 적다며 강정을 해군기지로 선택하게 된다. 애초 해군기지 예정지였던 화순항·위미마을에서는 바다를 텃밭으로 사는 해녀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자 정부는 강정마을 해녀들을 적극 공략했다. 정부는 해녀 1인당 5000만~7000만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지급했다.

ⓒ한향란

2007년 4월23일 해군기지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가 열린다는 공고가 마을에 붙었다. 사흘 뒤인 4월26일 주민 1500여 명 중 87명이 참여한 회의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됐다.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됐다고 한다. 5월14일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지를 확정 발표했다. 그해 8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72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2006년부터 해군기지 건설은 강행된다.

포클레인이 들어온 후 강정마을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보상을 받은 이와 못 받은 이, 가족·친지·이웃끼리 등을 돌리고 싸우는 갈등과 불화의 마을이 되었다. 심지어는 해군기지 찬성파가 가는 목욕탕, 반대파가 가는 목욕탕도 다르다. ㄱ슈퍼마켓은 찬성파, ㄴ슈퍼마켓은 반대파가 이용한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기자를 반기고, 찬성하는 주민들은 기자에게 냉담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가슴속 상처가 깊어졌다. 자살을 기도한 이도 있었다. 2009년 제주지역 신문의 정신심리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살 충동을 느낀 사람이 43.9%, 자살 계획을 짜거나 시도한 사람이 34.7%로 나타났다. 강정마을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조현오 뜨자 긴장감 고조

2011년 7월 조현오 경찰청장이 강정마을을 다녀갔다. 조 청장은 "해군기지 사업은 끌 만큼 끌었다. 더 이상 공사를 방해하는 불법행위를 방치할 수 없다. 해군기지 공사 방해 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하라"고 강조했다. 조 청장 방문 며칠 뒤 전투경찰 300여 명이 마을에 배치되면서 강정마을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해군기지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는 8월 말쯤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강정마을의 '비상령'은 강화되었다. 도로마다 골목마다 긴장감이 팽배했다.

ⓒ연합뉴스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동균 마을회장 등을 연행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공권력 투입에 맞서는 사람은 시민활동가 20명, 마을 주민 20명 정도. 경찰의 낌새가 이상하면 사이렌을 울려서 마을 주민들이 뛰어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힘이 모자란다는 것은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골목길에 차를 세워두고 다른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압에 대한 거의 모든 대비책이다. 제주가 고향인 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과 주민 5명이 쇠사슬로 몸을 감은 채 마을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쇠사슬에는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다. 현 전 의원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려고 무자비한 공권력을 투입하려 한다. 힘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막고 싶다"라고 말했다.

국내 주류 언론은 담담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강정마을을 집중 보도했다. 특히 미군의 전략과 관계가 깊은 사건이어서 CNN· < 뉴욕 타임스 > 등 미국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8월7일자 < 뉴욕 타임스 > 에서 세계적인 여성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해군기지는 제주 해안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정교한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우주전쟁 응용 프로그램 따위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해군기지는 제주섬의 환경 재해뿐 아니라 한·중 관계 및 세계적으로 위험한 도발을 부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강정마을을 방문한 전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대사관 부대사 앤 라이트 씨는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서 너무 잘못하고 있어서 미안하다. 강정마을에 대해 세계의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에는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가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1980년 5월 광주는 고립되고 외로운 섬이었다. 강정에 오니 1980년 5월 광주를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교구장이 다른 교구 지역의 문제 때문에 현장을 방문한 것은 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과 5·18 광주항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가톨릭 주교는 보수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시국 사건마다 정권의 편에 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주민 45여 명 사법 처리돼

하지만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관련해서 천주교 주교회의는 '평화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제들은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저지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북한 김정일의 꼭두각시 종북 세력'이라고 발언한 것에 매우 화가 나 있다. 제주교구의 한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을 빨갱이라고 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제주교구 신부들이 오해와 위협을 받고 있다. 공동선을 위한 신부들의 예언자적 투신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24일 해군기지 공사장에서 대형 크레인 조립이 시작되자 강정마을 사람들이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출동한 경찰은 몸싸움을 벌인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시민활동가 등 5명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연행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유치장을 밥 먹듯 드나들고 있다. 항의하던 문정현 신부도 경찰에 연행됐다.

이 아름다운 평화의 마을은 전과자들을 양산하는 마을로 변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전국에서 가장 높은 범죄율을 기록한 것이다. 고권일 해군기지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장은 "해군기지를 반대하다가 강정 사람 45명 정도가 사법 처리됐고, 40~50명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또 한 명의 구속자가 나올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강정에서 태어난 죄로 강정 사람들은 국가 전복 세력이 되었고, 강정마을은 해적들의 범죄 양성소가 되었다. 5·18 때 초기 분위기가 이랬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강정마을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 조선일보 > 와 < 중앙일보 > 는 8월26일 1면 머리기사로 강정마을을 올렸다. 공권력이 무기력하다며 경찰을 질타하고 나섰다. < 중앙일보 > 는 해군기지 공사 중단으로 매월 손실액이 59억원이라고 보도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시위대에 대한 대응이 미온적이었다며 서귀포서장을 경질했다. 8월26일 대검찰청은 대검 청사에서 임정혁 공안부장 주재로 강정마을 관련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다. 회의에는 검찰·경찰·국정원·국방부·국군기무사령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공안대책협의회가 열린 것은 2009년 7월 쌍용자동차 노조 평택공장 점거 이후 2년여 만이다. 한 대검 관계자는 "국책 사업에 반대해 불법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게 한상대 총장의 생각이다. 강정마을은 시범 케이스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 좌익 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공안 검찰을 강조했다.

1980년 5·18 광주, 2006년 평택 대추리, 2009년 용산과 평택 쌍용자동차…. 여론이 바람을 잡고 공안정국이 조성됐다. 이제 강정마을 강제 진압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문정현 신부는 "애초 주민의 동의를 편법·불법으로 받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 정부는 그 단추를 끝까지 채우려고만 한다. 그 뒤에는 공사를 강행해 비용을 줄이려는 삼성과 대림이 있다"라고 말했다. 문 신부는 "무기를 손에 들고 사랑할 수 없다.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평화의 섬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군비 경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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