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35년 전 판문점 살인

기자 2011. 8. 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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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두/논설위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지휘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의 도끼 만행에 숨진 지 18일로 꼭 35주년이다. 당시 북한군 30여명이 휘두른 손도끼·쇠파이프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미국은 북한군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미국시간으로 18일 오후 3시47분부터 4시43분까지 백악관 상황실에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국방부·합참·중앙정보국(CIA) 당국자들은 '워싱턴특별대응그룹(WSAG)' 회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키신저는 "(북한이) 미국인 두 명을 때려 죽인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교수립 직전의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금지했던 B52 폭격기의 한반도 훈련재개도 허락했다.

하지만 대책 논의과정에서 군사보복은 대한민국과 한·미 연합군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며 배제됐다. 북한의 도발이 '대선을 앞둔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을 띄우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판단했던 CIA는 베트남 때처럼 철군론이 나올까봐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화당 후보 최종 경선을 위해 미주리주 캔자스 전당대회장에 가 있던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확전 위험을 막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자제시켰다. 남은 방안은 고작 '미루나무를 통째로 베어버리자'는 것이었다. 8월21일 미국은 나무 절단에 착수하며 북한의 재도발을 차단하기 위해 B52 폭격기까지 띄웠고 동해에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대기시켰다. 한 시간 뒤 김일성은 휴전 23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한 친서를 보내며 사실상 사과했다. 휴전 이후 최악의 북한군 만행이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북한의 허담 외교부장은 때마침 스리랑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에서 '판문점 사건은 미국이 전쟁 도화선에 불을 댕기기 위해 저지른 도발'이라고 뒤집어씌웠다. 기막힌 후안무치였다. 분단 이후 한반도 평화 파괴 세력은 연평도 포격도발까지 줄곧 북한이었다. 그때마다 북한은 잡아떼거나 본말을 전도시켰다. 미국 대선 시기에 보란 듯이 미군 장교들을 쳐죽였던 북한에 대남 도발은 일도 아니었다. 한·미 양국이 엄포만 놓지 대규모 인명손실, 경제불안 우려 때문에 진짜 강력 대응은 못한다는 한계도 이용한다. 내년에 한·미 양국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판문점 도끼만행이 옛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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