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이 남긴 빵부스러기, 배고파서 먹습니다

2011. 6. 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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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다시 수능 보려고 그래요? 아무튼 자퇴처리 완료 되었어요."

행정실 직원의 사무적인 음성을 끝으로 나의 최종학력은 '고졸'로 확정 되었다. 멀쩡하게 입학한 학교를 왜 때려쳤냐는 질문을 지난 1년 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으니 간결하게 타이핑 한다.

일단 재미가 없었고, 학비는 너무 비쌌다. 1년 등록금을 천 만 원이라 가정했을 때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이를 감당하기 위해선 2300시간을 꼬박 일해야 한다. 하루 꼬박 8시간 씩, 300일 가까이 노동해야 감당할 수 있는 학비를 충당해 가며 다닐 만큼 대학이 재밌는 곳은 못 되었다. 결과적으로 청년실업 300만 시대에 다른 이들보다 조금 일찍 청년백수가 된 것이랄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은 대한민국에서 유독 강하게 내리박힌다.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여러 가지 경험해 보라고 국가에서 용돈도 좀 쥐어줄 법도 하지만, 이 나라에 그딴 게 어디 있겠는가. 결국 굶어 죽지 않기 위한 궁여지책의 공간, '알바*'을 탐색한다. 월 급여 200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텔레마케터 공고, 1년 365일 떠 있는 엑스트라 모집 공고를 스킵하고, 그냥 가까운 번화가에 위치한 커피숍에 전화를 넣는다. 이 바닥에서 6개월이라는 경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기에 바로 채용되었다.

난 8시간 풀타임 커피노동자, 숨 돌릴 틈이 없다

커피숍의 매장 전경.

ⓒ 김하진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뜨거운 라떼 두 잔이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시고요, 아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희 매장에서는 카푸치노를 차갑게 준비해드리지 않고 있어요. 네. 그럼 카푸치노 대신 카페 모카로 한 잔 하시고요, 아이스로요. 위에 생크림 올라가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빼드릴까요? 알겠습니다. 주문 확인해 드릴게요. 뜨거운 라떼 두 잔, 아이스 모카 한 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셨습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시고요? 네. 음료 4잔 1만8500원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할인이나 적립 되는 카드는 없으세요? 아, 없으시다고요. 네 결제 도와드릴게요. 카드 받았습니다. 앞 쪽에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드 받으시고요, 감사합니다. 음료 준비되면 오른쪽 픽업 테이블에서 준비해드릴 게요. 아, 영수증. 버려드릴 게요. 뒤에 분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고객님을 향해 비트도, 라임도 없는 속사포를 쏟아내고 나면 다음 고객이, 또 다음 고객이 기다리고 있다. 흔히들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 교사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뭔 놈에 묻고 따질 것이 이리도 많은지… 주문할 고객이 끊기면 숨 좀 돌릴 법도 하건만 그럴 리 없다.

블랜더에 얼음 넣어 스무디 갈고, 샷 뽑고, 샷 들어간 아메리카노에 얼음 붓고, 우유 스팀하고, 시럽 넣고, 리드 채우고, 휘핑 제조하고, 바 백(Bar Back)에서 설거지 돌리고, 트레이 닦고, 홀 청소하고, 재떨이 채우고, 오븐에 베이커리를 익히고, 식재료에 유통기한 표기사항을 확인하고, 팥빙수에 쓰일 재료를 손질하고…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커피숍 노동자가 수행해야 할 동작들을 잘게 쪼개면 가히 수백, 수천에 이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짓들을 서서 한다. 달리 말하면 앉을 시간도 없다. 난 8시간 풀타임 근무하니까 8시간 서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4320원, 쉽게 말해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렇다면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나의 월급은 얼마일까? 정부 측이든, 노동계든 40시간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 급여를 90만2880원으로 책정한다.

최저임금 4320원에 월 급여를 산정하는 공식을 대입하면 위의 금액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네 청년 노동자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월 급여 산정공식에는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주휴수당이 포함되는데, 나를 비롯한 청년노동자들은 이 주휴수당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월급은, 최저임금 산정금액인 90만2880원에서 주휴수당을 제한 75만816원이다. 썩을.

고객님이 남긴 빵, 입으로 털어넣은 나는 '최저임금노동자'

사족이 길었다. 아무튼, 점심 값으로 1시간 30분 어치 노동력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나는 편법을 택한다. 고객님이 남긴 음식을 섭취한다. '만원의 행복'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람이 그렇게 된다. 지난 얼마 간이 고객님들이 남긴 베이커리를 바라보며 갈등하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투척한 시간들이었다면, 최근에는 최소한의 갈등도 없이 입으로 털어 넣는다.

지구상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수많은 난민들을 고찰하며, 남아 있는 음식들이 아깝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도중 너무 배가 고파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원초적 본능의 발로다. 눅눅하게 식은 빵 조각을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며 설거지에 집중하다가,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당황한 나머지 입 안의 내용물들을 꿀꺽 삼키기 일쑤다. 창피하고 목구멍 아프다. 사람이 자의식을 상실할 수록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던데, 커피숍 노동자 생활 7개월 만에 남은 음식물을 섭취하며 자의식의 바닥을 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쉼 없이 말하고 끊임없이 서있느라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이 만원 인파 속에 너덜너덜 걸쳐 있다. 이대로 돌아가 맥주 한 캔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잠들면, 어느새 알람이 울리고, 다시 출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통장에는 연체이자가 포함된 통신 요금이 빠져 나갈 것이며, 룸메이트에게 이번 달 월세를 제때 분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낄 것이며, 지난 주에 음악 CD 몇 장 지른 것을 후회할 것이다.

한 시간 꼬박 일해도 따뜻한 밥 한 끼는커녕 내가 뽑는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실 수 없는 아이러니가 나를 절망과 권태로움으로 이끈다. 이 미친 세상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견뎌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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