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데 4개 국어 능숙 .. 일본 감동시킨 한국여성

박소영 2011. 6. 1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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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안 들리는 내가 .. 』 낸 도쿄 국제금융사 직원 김수림씨

[중앙일보 박소영]

국제적인 금융회사의 법무담당 심의관으로 일하는 30대 후반의 여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가 성실한 남편, 귀여운 딸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면 '잘난 사람의 자기 자랑'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책 『귀가 안 들리는 내가 4개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읽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저자 김수림(39·사진)씨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네 살 때 버려졌다. 여섯 살엔 청력을 잃었다. 12세가 돼서야 일본에서 술집을 하는 어머니와 살게 됐지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모습이 그 책에 담겨있다.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3쇄를 찍을 정도로 일본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뿌리고 있다.

 12일 도쿄 롯폰기에 있는 크레디트 스위스 회의실에서 만난 김씨는 "안녕하세요"라고 또렷한 우리말로 인사를 해왔다. 오른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 왼쪽 귀는 보청기를 끼고 자동차 경적 소리가 겨우 들리는 정도다. 김씨는 기자의 입술을 읽으며 대화를 나눴다. '정말 4개 국어를 할까' 인터뷰 중간 우리말과 영어로 질문을 해봤다. 보란 듯이 해당 언어로 답변이 돌아왔다.

 - 어떻게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됐나.

 "한국어는 어려서, 일본어는 어머니가 있는 일본으로 와 살기 위해 익혔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장애인인 내가 당당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배웠다."

 - 어릴 적 고생을 많이 했다는데.

 "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네 살 때 아버지가 전라도에 있는 먼 친척집에 나를 맡겼다. 9개월 만에 나타난 어머니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일본으로 갔다. 열이 나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갔는데 나중에 보니 청력을 상실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말할 때 입을 읽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지바(千葉)현에서 술집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가게 단골 집에서 4년 동안 더부살이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도 배웠다. 성적은 바닥이었다. 게다가 뚱뚱하고 못생긴 한국 여자애는 언제나 이지메(왕따) 대상이었다."

 - 어머니는 딸의 청각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는데.

 "어머니는 내가 남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청각장애인 등록을 권했지만 그것도 거부했다. 어머니의 기대에 맞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큰 스트레스였다. 헬렌 켈러는 '눈이 안 보이면 사물에서 멀어지지만 귀가 안 들리면 사람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정보가 제한되면서 사람과 멀어지고, 어느 한 순간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 그런 현실에서 탈출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않으면 이런 생활이 평생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현듯 생각한 게 영어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설득해 2년간 영국에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씩 발음기호를 보고 발음을 연구했다. 마지막엔 내 발음을 제3자가 확인해주는 과정을 거쳐 단어 하나하나를 배웠다."

 (※2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김씨는 2년제 대학을 나와 오지(王子)제지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이별한 뒤 우울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10개월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 재기를 다짐한 김씨는 4년간 모은 돈으로 3년여의 세계 여행을 떠났다.)

 - 어떻게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나.

 "취업박람회에 가보니 한산한 부스가 있었다. 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상담창구에 앉아 있었는데, 골드만삭스 인사담당 직원이었다. ▶귀가 안 들리는 데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 ▶4개 국어 구사 ▶3년간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 뜻밖에 합격 연락이 왔다. 처음엔 관리직에서 일했고 입사 3년차에 금융준법감시업무가 주어졌다. 4년 전 지금 직장으로 옮겼다."

 - 회사생활에 어려움도 많을 텐데.

 "내 책상엔 전화가 없다. 쓸모 없으니 치워달라고 했다. 회의에는 쫓아가지 못한다. 그럴 땐 동료가 내 옆에서 메모를 해 도와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장애인은 아무리 애써도 반드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좌절도 하지만, 결국엔 장애를 인정해야 자신도 사회도 편해진다. 나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에게 보답한다."

 - 인생의 목표는.

 "새로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인터넷 만남사이트에서 출판사 직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두 살 된 딸이 있다.)

도쿄=글·사진 박소영 특파원

▶박소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olive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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