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거죠

2011. 6. 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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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저출산은 청년세대 이기주의가 아니라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

↑ 5월 13일 상지대 교내 체육관에서 개최된 취업 박람회 모습.

"이제는 출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해볼 시점이다." "출산 기피행위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무뎌진 책임의식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해 한 일간지 칼럼에 실린 주장이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2명이다. 2009년 1.15명보다 소폭 상승한 수준이지만 한 사회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인 2.1명에는 크게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명에도 미달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칼럼의 내용처럼 '출산의 의무'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사회의 위협으로 떠오른 만큼 출산은 국민의 의무이자 젊은 세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저출산의 주범으로 청년세대의 이기주의나 개인주의가 지목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짐작과는 달리 정작 20~30대 청년세대는 출산에 긍정적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20~30대 미혼여성 11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여성 중 84%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문제는 청년세대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문제는 출산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구조에 있다. 청년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대표적인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2000년 이후 20대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60%를 웃돌던 20대 고용률은 2010년 58%까지 하락했다. 20대 실업률은 8% 안팎으로 전 연령대 실업률 3%보다 높다. OECD의 2008년 고용동향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4세 이하 청년 고용률이 OECD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취업, 결혼, 출산의 생애주기에서 취업이 지연되다보니 결혼, 출산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미혼 여성 84% "아이 낳을 생각 있다"

고용률이 낮은 것뿐만이 아니라 안정된 양질의 일자리가 적은 것도 문제다.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라면 취업을 했더라도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인 강영석씨(30·남·가명)는 결혼을 '정교사가 된 후'로 미루고 있다. 강씨는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둔 게 있어 일단 결혼자금은 마련됐다"면서도 "하지만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라 정교사가 되기 전에는 연애도 결혼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임용고사는 최소 10대 1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사립학교 정교사도 아주 운이 좋아야 될 수 있다"면서 "미래가 불투명해 매일 막막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업률에는 잡히지 않는 통계 밖의 20대들도 취업난의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비경제활동인구로 간주되는 학생이나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실업자로 집계되지는 않지만 취업이 어려워 졸업을 미루거나 장기간의 취업 준비 등으로 취업에 애로를 겪고 있다. 잠재 실업자로 볼 수 있는 20대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20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들 또한 '취업 이후' '합격 이후'로 기약 없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책은 청년실업 대책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황정수씨(33·가명)는 "솔직히 직장이 없는 사람을 어떤 여자가 만나려고 하겠느냐"며 "3년째 연애를 하지 않고 있고 결혼은 일단 합격 이후에 생각하기로 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황씨는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 납부를 유보시켜놓은 상태다. 의료보험도 직장 다니는 동생 밑으로 해두었다. 황씨처럼 '시험 준비'만이 유일한 대비책인 '공시족'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합격'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계획하기 어렵다.

20대의 취업이 지연되다보니 초혼 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1990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28세, 여성 25세였다. 그러나 2010년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2세, 여성 29세다. 4년이 늦춰진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은 "전쟁이 터지지 않은 나라 가운데 불과 20년 만에 젊은이들의 초혼연령이 평균 4세가량 상승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대들은 '취업과의 전쟁' 속에서 더 이상 결혼에 대한 엄두를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저출산은 당연한 결과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년실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기혼자를 대상으로 한 다자녀 가구 지원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젊은층의 출산은 계속해서 줄어드는 반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40~50대의 늦둥이 출산만 늘고 있다.

2010년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3% 증가했다. 셋째아이 이상 출산이 16.5%나 증가하면서 출생아 수를 끌어올린 것이다. 반면 첫째아이 수는 1.1% 감소했다. 첫째아이의 출생이 감소했다는 것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있는 청년세대가 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자녀 가구 지원을 넘어 안정된 일자리 확보와 복지제도 확충이 필요하다. 조민혜씨(26·여·가명)는 "취업을 하기 전에는 결혼과 출산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며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결혼 비용, 육아 비용이 엄두가 안 나 결혼을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 안정된 정규직으로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직장에 들어간 조씨는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조씨는 "일단 빚을 갚아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정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시급한 이유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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