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번, 다른 출발..등록금이 가른 '미래'

2011. 5. 3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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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학자금 대출받은 학생들

대학원 진학 일찍 접고 학비 상환쉬운 ROTC로

부모가 등록금 준 학생들

취업 경쟁력 높이려 학원 다니고 유학계획

금요일이었던 지난 27일, 서울 ㅇ대학교 2010학번 송미경(여·가명)씨는 집에 있었다. 주 5일 중 수업이 있는 날은 4일이다. 일부러 수강신청을 그렇게 했다. 집을 나서면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달 용돈 30만원은 책값·교통비·밥값을 대기에도 늘 빠듯하다. 2학년 들어서는 열심히 하던 동아리 활동을 접었다. 선배들로부터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부담스러웠다. 프랑스어 강의를 듣고 싶지만 엄두를 못 낸다. 외국에서 살다 온 수강생이 많아 최선을 다해도 좋은 학점을 받기 힘들다. 학점이 깎이면 치열한 장학금 경쟁에서도 밀린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지만 월소득은 200만원가량. 더구나 동생도 대학생이다. 맏딸인 그는 3학기 모두 학자금을 대출받고 장학금을 보태 등록금을 마련했다. 여유가 없으니 속상할 틈조차 없다. 방학 동안 편의점(시급 2700원), 휴대전화 부품공장(시급 3500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돈 모으기는 쉽지 않았고 시간은 아까웠다. 학자금을 대출받아 당장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미래는 달라져 버렸다. "대학 졸업 뒤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졸업한 뒤 바로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까 힘들겠죠? 그래서 돈도 벌고 그나마 제가 재밌게 할 수 있는 번역을 하려고 해요. 늘 불안하죠. 대출금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 됐다는 사람도 많으니까…."

<한겨레>가 지난 19일부터 서울 ㅇ대 영어영문학부 2010학번 재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뒤 가정환경이 다른 학생 8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학생의 등록금 부담 정도는 강의를 선택하고 수업을 집중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수업 집중도는 떨어졌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점을 고려하다 보니 수업 선택 폭도 좁아졌다. 또 대출금을 갚기 위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하기도 했다. 같은 학교·학번이지만 그 출발선은 제각기 다른 셈이다.

미경씨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은 성찬식(남·가명)씨는 학군단(ROTC)에 지원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군 복무를 하면서도 월급이 나오므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따랐다. 사실 그는 학군단에 들어가는 게 마뜩잖다. 기간도 길고 어학연수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30명을 뽑는데 50명이 지원했으니, 떨어질지 모른다.

미경씨나 찬식씨는 부모가 용돈을 지원해주지만, 박상욱(남·가명)씨는 용돈은 물론 학자금 대출 이자까지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안이 기우는 바람에 가계빚이 1억원에 이른다. 집도 경매에 넘어가 친척이 얻어준 집에 살고 있다. 매주 17시간 이상씩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늘 피곤한 그는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다. 시급이 센 일을 해볼까도 했다. "아는 선배가 호스트바에서 한달에 300만원씩 번다더라고요. 막노동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힘들 것 같아 겁이 났어요." 그는 이번 방학에도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을 생각이다.

반면 등록금을 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이들은 방학 때 학원에서 토익이나 토플 강의를 수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환학생이 되거나 취업을 위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아버지 직장에서 등록금을 지원해준다는 이은정(여·가명)씨는 지난 방학에 토익학원에 다녔다. 최대한 전공을 살려 일자리를 얻는 게 그의 목표다. 서울 강남에 사는 정수언(남·가명)씨는 지금까지 돈 문제로 집안에서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 군대를 다녀온 뒤 어학연수도 가고, 외국어를 하나 더 공부해 번역 일을 하고 싶다. 유학도 고려중이다.

등록금은 학업뿐만이 아니라 이성교제에도 훼방을 놓는다. 미경씨는 간혹 남자친구의 존재가 버겁다. "연애도 돈이잖아요. 솔직히 전 남자친구를 안 만나고 싶을 때도 많아요." 박현정 박태우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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