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 믿어도 되나요?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입력 2011. 3. 26. 12:22 수정 2011. 3.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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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위 원전 강국. 그간 세계 원자력 산업계에서 대한민국을 수식할 때 사용한 말이다. 2011년 3월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상업용 원자로는 21기. 부산시 기장군·울산시 울주군의 고리·신고리 원자력발전소(원전)에서 5기, 경북 경주시 양북면의 월성 원전에서 4기, 전남 영광군의 영광 원전에서 6기, 경북 울진군의 울진 원전에서 6기의 원자로가 핵연료로 전기를 생산한다. 연구 목적으로 쓰이는 원자로(연구로)도 있다. 서울 공릉동에 2기, 대전 덕진동·경기 기흥읍에 각각 1기의 연구로가 가동 중이거나, 정지·폐로 절차를 밟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존 원전 4곳에 원자로 9기를 새로 짓고 있거나, 지을 계획이다. 삼척·영덕·울진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오는 4월 사업부지가 결정될 신규 원전에도 원자로 6기가 건설될 예정이다(26~27쪽 딸린 기사 참조). 모두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하고,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현 36%에서 59%까지 올리겠다'는 정부의 국가에너지 기본계획(2008년 8월 발표)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다.

고리 1호기(위)는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마치고 10년 연장을 한 국내 최고령 원자로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 르네상스'를 향한 정부의 발걸음에도 제동이 걸렸다.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기술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난 일본조차 비상사태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고, 국내 원전의 현재와 향후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 정부는 연방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한다. 3월1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원전은 일본보다 100배 이상 안전하다는 보고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17일 "우리 원전은 일본과 달리 안전기준이 높아졌을 때 설계돼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국내 원전이 일본보다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첫째, 비등형 원자로(Boiling Water Reactor ·BWR)를 쓰는 일본 원전과 달리, 우리나라 원전 21기는 모두 가압형(Pressurized Water Reactor·PWR) 발전 방식을 택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비등형 원자로는 핵연료에 닿은 물이 수증기가 되어 직접 터빈을 돌리기 때문에 격납용기 바깥이 방사능에 오염되기 쉽지만, 한국의 가압형 원자로는 노심을 흐르는 물과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의 순환 회로가 분리되어 있는 덕에 사고가 나도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다(위 그림 참조).

국내 원전도 쓰나미 피해 입을 수 있어

두 번째 근거는 '이제껏 한반도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추정되)는' 규모 6.5의 지진까지 견디는 국내 원전의 내진 설계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다고 알려진 10m 이상 쓰나미가 오지 않는 한, 대부분 해수면 10m 위에 설치된 우리 원전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비상 디젤발전기가 침수돼 사고가 날 위험이 없다는 것도 정부가 안전을 자신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근거들이 국내 원전의 안전을 100%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비등형이든 우리 정부가 자랑하는 가압형이든, 비상 냉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핵연료가 녹아 격납용기를 뚫고 외부로 유출될 위험은 똑같이 존재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 국장은 오히려 가압형이라 더 위험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가압형 원자로에는 직경 3㎝, 길이 20m의 세관이 수천 개 굽어 있어 이들이 노후나 고온·고압으로 균열을 일으키기 쉽다"라는 것이다. 실제 2002년 4월 정기 점검을 위해 가동을 멈춘 울진 원전 4호기에서 증기 발생기 세관이 찢어져 10분 동안 방사능을 머금은 냉각수 45t이 유출되는 '1등급'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지진과 쓰나미로 원전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오창환 교수(전북대·지구환경과학)는 "규모 7.5~8.0의 내진 설계에 그쳤지만, 9.0의 대지진을 맞은 일본 원전을 보면서도 '우리나라는 대지진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규모 6.5로 내진 설계된 원전이면 충분히 안전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 해수면 10m 이상 위치에 건설된 다른 원자로와 달리 고리 1·2호기는 해발 7.5m에, 고리 3·4·신고리 1~4호기는 해발 9.5m에 자리 잡아 쓰나미 피해에 비교적 취약하다. 이 가운데 고리 1호기는 1978년 첫 발전을 시작한 뒤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마치고 10년 연장 가동에 들어선 국내 최고령 원자로이기도 하다.

고리 1호기와 같은 '노후 원전'들의 수명 연장은 일본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도 국내에서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토론회 등을 거치는 원전 신규 건설 때와 달리, 원전 수명 연장 시에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없어서 그간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법 개정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라고 말했다. 2007년 고리 원전 1호기 연장 가동의 근거로 쓰인 '안전 평가 보고서'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내년 11월 설계수명을 다하는 월성 1호기도 현재 수명 연장 절차를 밟고 있다. 월성 원자력본부는 10년 운전 연장을 위해 지난 2009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제출해 올해 안에 연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월성 1호기는 일반 물(H₂O=경수)을 감속재(고속 중성자의 속도를 적절히 떨어뜨려 핵분열을 돕는 물질)로 쓰는 다른 국내 원자로인 경수로(輕水爐)와 달리, 중수(D₂O)를 감속재로 쓰는 중수로(重水爐)로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중수로의 수명이 연장된 사례는 아직 없다.

"수명 다 된 원자로 폐쇄하라"

이석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기획부장은 "경수로인 고리 1호기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기존 부품 그대로 연장했다. 중수로인 월성 1호기는 수평형으로 누워 있어 압력과 부식에 약하고 핵연료봉이 처지는 현상도 있었지만, 이미 원자로 내부나 배관 부품들을 다 교체해서 충분히 연장 가동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원전이라고 특별히 위험한 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일본 원전 사고가 터지자 부산환경운동연합과 경주핵안전연대 등 고리·월성 원전 인근 환경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수명을 마친 국내 원자로를 더 이상 연장 가동하지 말고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가장 먼저 수소 폭발을 일으킨 1호기는 애초 사고 한 달 전인 올해 2월 수명을 마쳐 폐로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로부터 10년 연장을 허락받아 사고 당시까지 가동 중이었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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