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성폭행 고소장을 견본으로..인권 팽개친 경찰

2011. 2. 16.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실명·주민번호 쓰인 채로

다른 사건 피해자에 건네

용인동부경찰서 "큰 잘못"

경기도 용인시에서 성폭력상담소를 맡고 있는 양해경 소장은 지난 10일 상담소를 찾은 한 여성(23)이 내민 종이 한 장을 보고 소스라쳤다. 양 소장이 "성폭력 피해는 고소장을 써야 한다"고 하자, 이 여성은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고 하던데…"라며 가방에서 에이(A)4 용지 한 장을 꺼내 든 것이다.

이 종이엔 '고소장'이라는 제목 아래 '2003년 5월 말 용인시 한 아파트 앞길에서 인근 여관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30대 여성의 피해 사실'이 쓰여 있었다. 고소인인 피해 여성의 이름과 주소, 집 전화번호와 휴대전화번호는 물론 13자리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피해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경위와 장소 등도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었다.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고소장의 출처였다. 성폭력상담소를 찾기 이틀 전인 8일 용인동부경찰서 한 지구대를 찾았던 이 여성은 경찰관에게 성폭행 사건 접수방법을 물었고, 경찰관은 "소장이 필요하다"며 이런 내용이 적힌 고소장 복사본을 건네줬다는 것이다.

양 소장은 '경찰이 견본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고소장에 쓰인 주민등록번호로 실명 확인이 필요한 관공서의 인터넷 누리집에 접속하자 '실명이 확인됐다'는 인증이 떨어졌다. 고소장에 등장한 여성은 실재 인물이었던 것이다.

양 소장은 "고소장의 피해 여성은 이제 40대 초반이 된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며 "8년 전 작성한 수치스럽고도 매우 비밀스런 서류가 이런 식으로 떠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라고 말했다.

김성렬 용인동부경찰서장은 "그런 서류가 어쩌다 지구대에 그대로 남았는지, 왜 고소장을 그대로 민원인에게 넘겼는지 조사하겠다"며 "경찰이 큰 잘못을 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사가 끝나는 대로 관련자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용인/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통장 죽음 부른 난방요금 '폭탄'심장이식 5살배기의 사투 "아빠 살려주세요""북, 중국에 넘어간 '위화도 개발권' 남쪽에 먼저 제안"엠티·축제 빠지면 벌금 '학생회가 너무해'태양 폭발 소리 들어보니 거대한 굉음이…'아이고 허리야' 이회창 집회도중 퇴장실제 성폭행 고소장을 견본으로…인권 팽개친 경찰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공식 SNS 계정: 트위터 www.twitter.com/hanitweet/ 미투데이 http://me2day.net/hankyoreh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