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예산 중 '이름만 복지'도 있다

2011. 1. 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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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주택기금 17조8000억원 '사회복지 직접 비용'으로 보기 어려워

예산은 수치로 표시된다. 그러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복지예산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 보건복지부 2011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에 들어가고 있다"며 "내년(2011년) 복지예산은 역대 최대로 약 28~30% 가까운 예산이 복지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OECD 기준, 주택기금은 비복지

이 대통령은 '역대 최대'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문제는 기준을 설정하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복지예산의 규모를 무엇과 비교할 것인가와 어떤 항목을 복지예산으로 잡을 것이냐다.

'역대 최대'라는 말이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2011년도 복지예산 규모는 약 86조4000억원이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애초 정부안보다 1214억원 증가했다. 전체 중앙정부 지출 309조1000억원의 28%다. 정부 총지출 대비 비중으로는 역대 최고가 맞다. 그러나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에서는 어떤 반복지 정권이 등장해도 '역대 최고'를 기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복지예산은 2007년 '국가재정법'이 시행되면서 산출방식이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부터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여러 정부 부처에서 집행하는 예산 중 목적이 유사한 것들을 모아 예산을 편성하는 프로그램 예산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중앙부처 사업 9000여개는 행정·국방·사회복지 등 16개 분야로 재편된다. 이 제도에서는 전체 16개 분야 중 사회복지 분야와 보건 분야를 합쳐 복지 지출을 계산한다. 보건복지가족부, 국토해양부, 여성부, 노동부, 국방부 등 여러 중앙부처가 펼치는 사업들 중 어떤 것을 복지분야 지출로 잡느냐에 따라 복지 지출 규모가 달라진다.

각 부처의 복지 관련 사업을 합하면 통상 160개 가까이 된다. 세부 항목들의 개수는 이보다 더 많다. 이 때문에 예산 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연구자들조차 정부가 복지예산으로 잡고 있는 항목들 중 엄밀한 의미에서 복지로 볼 수 있는 것과 복지로 보기 어려운 것을 구분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160개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을 정부에 요청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자료를 받지 못했다"며 "더 큰 문제는 모든 내역을 다 들여다보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복지예산으로 보기에 모호한 항목들이 몇 개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주택부문 지출이다. 정부는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주택 관련 사업을 모두 복지 지출 항목으로 잡고 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국토해양부 소관 기금인 국민주택기금은 복지예산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한규 민주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정부가 복지분야 지출이라고 잡고 있는 항목에 대해서 복지 지출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예산 편성권은 정부에 있고 특정 항목이 복지예산이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법률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의 복지 지출 기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복지 지출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OECD에 복지 관련 통계를 제출할 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관련 항목들을 재분류하도록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경환 연구위원은 "OECD 기준은 사회복지를 위해 직접적으로 지출된 비용만을 복지 지출에 포함시킨다"며 "주택융자금, 국민주택기금 등은 복지 지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무지출 증가는 자연적 증가분

국민주택기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나. 2011년도 국민주택기금 지출액은 17조8000억원이다. 전체 복지 지출의 20%가 넘는다. 이 중 대부분은 국민임대주택 건설 융자, 주택구입 자금, 전세자금 융자 등 국민주택기금 융자사업이다. OECD 기준에 따른다면 국민주택기금에서 나가는 융자금은 복지 지출로 보기 어렵다. "사회복지를 위해 직접적으로 지출된 비용"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융자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부 재정으로 다시 회수된다. 이 때문에 오건호 실장은 "이 부분을 복지에 포함시키려면 융자액 전체가 아니라 융자금 이자와 시장금리의 차액만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융자를 해주었다면 그 차액은 특정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지출된 비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대인 부소장이 문제라고 지목하는 것은 국민주택기금 중에서도 보금자리주택사업 지출액이다. 2011년 국민주택기금 지출액 중 50%가 넘는 9조5000억여원이 보금자리주택사업에 지원된다. 선 부소장은 "보금자리주택사업의 3분의 2가량은 서민용 공공임대가 아닌 공공분양 물량"이라며 "이 부분은 사실상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으로 잡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복지예산으로 잡혀 있는 것 중에는 "재정비촉진지구(일명 뉴타운) 기반시설 설치비 지원 강화를 위해 재정비촉진사업 지원확대"란 것도 있다. 국토해양부 소관 사업으로, 정부안보다 200억원 증액된 총 500억원이 이 사업 명목으로 잡혀 있다. 고경환 연구위원은 이 또한 "OECD 기준 공공복지 지출에서는 당연히 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의무지출 증가분이다. 의무지출 증가분은 공적연금 약 2조원, 보건복지 약 1조2000억원 등 총 3조6000억원이 넘는다. 전체 복지예산 대비 약 4%를 차지한다. 의무지출 증가분에 앞서 주택부문 증가분을 합치면 5조원 가까운 규모다. 올해 복지 지출 대비 약 6%를 차지한다. 그 반면 2011년 복지 지출 증가액인 전년 대비 6.2%에 육박하는 수치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역대 정권 가운데 총재정 대비로 보면 복지 지출 규모가 사상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복지 지출 증가분 6.2% 가운데 6%는 가만히 두어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복지예산 증액이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지출 확장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정부는 총지출 대비 복지예산 비중이 28%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자랑한다. 그러나 총지출 대비 복지예산은 OECD가 한 국가의 복지 수준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아니다. OECD는 복지 지출 규모를 따질 때 총재정 대비 복지 지출 규모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 규모는 9%로 추정된다. 같은 해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평균 공공복지 지출은 약 20% 수준이다. 11%포인트의 격차가 있다. 2009년 한국의 GDP는 1093조원이었다. 2009년을 기준으로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복지 지출을 2011년도 복지 지출 규모보다 110조원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복지지출 규모가 OECD 기준과 다르다거나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에 비해 뒤처진다는 것은 현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간 비교를 위해서는 복지지출 증가율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노무현 정부 임기 중 정부 총지출 증가율은 평균 6.8%였다. 복지 지출은 2003년 41조7000억원에서 2008년에는 67조6000억원이 됐다. 증가율 10.1%다. 이명박 정부 시기 복지 지출 증가율은 어떨까. 오건호 실장이 현 정부가 마련한 2010~2014년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을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현 정부는 2008~2014년 복지 지출 평균증가율을 6.9%로 잡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 평균 증가율 10.1%와 비교하면 70% 수준이다. 이에 대해서 기획재정부는 "2006~2008년 평균 증가율은 10.0%인 반면 2009~2010년 평균 증가율은 9.6%로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무현정부 복지지출 증가율보다 낮아

정부도 OECD와 비교해 한국 복지 지출 비중이 낮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보도 참고자료에서 "조세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공공복지 지출이) 2010년은 8.9% 수준으로 OECD 평균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 수준으로 복지 지출이 아직 낮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다른 선진국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신규 제도 도입 없이 현행 제도 유지만으로도 복지 지출 규모는 2050년께 21~25%까지 증가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덧붙여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복지 규모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린이와 어른의 체중을 비교하면서 어린이 몸무게가 적다고 하는 것과 같다"며 "이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비교대상이 된 어른의 체중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한규 전문위원은 "기획재정부의 논리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따라 정부 지출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으로, 복지 지출이 자연적으로 늘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겠다는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식의 반론도 있다. 오건호 실장은 "정부 예상대로 2050년 복지 지출이 GDP의 20% 수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정부 재정 전망과 달리 복지 지출 규모가 낮아질 개연성도 크다"고 본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2009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평균 공공복지 지출 규모는 19.3%이다. 이들 국가의 평균 고령화율은 14.8%다. 그런데 통계청 인구전망에 따르면 2050년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38.2%로 예측된다. 이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2050년 GDP 대비 20% 수준의 공공복지 지출로 과연 고령화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복지지출 축소 개연성은 현 정부의 감세 기조와 연관돼 있다. 오건호 실장은 "2007년 21%였던 조세부담률이 올해 19.3%로 낮아졌는데, 현 정부의 2010~2014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도 조세부담률을 19% 수준으로 잡고 있다"며 "세입 확충방안이 신속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현행 재원구조에서 향후 복지 지출을 감당할 수 없기에 복지제도의 급여 하향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봤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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