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파묻었는데.. 농장서 일하는 우리는?

2011. 1. 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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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2010년 12월 3일, 충남도가 경북 안동의 양돈농장과 역학관계가 있는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2개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돼지 2만 191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 3일, 천북면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사진은 보령시 천북면의 한 돼지 농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돼지들을 살처분장소로 몰고 있는 모습.

ⓒ 보령시제공

구제역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이나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죽어가는 가축들과 피해를 입고 있는 축산 농가들에게 쏠려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축산노동자들의 한숨 소리도 들린다.

지난 3일 구제역이 발생한 충남 천안의 한 돼지농장에서 만난 50대 축산노동자 이아무개씨. 이 농장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다는 그는 왜 돼지농가 얘기만 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은 들어주지 않느냐며 하소연해왔다. 그리고 기자에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축산업 노동자들의 솔직한 심정과 무대책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7일 보내왔다.

그는 이번 사태로 "양돈 사업체를 경영해 온 사업주들도 그렇지만 그 안에서 목을 매고 어려움을 참아가며 생활을 영위해 온 많은 종사자들이 갈 곳을 잃고 있으며, 일자리를 잃은 축산 종사자들이 전국의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어서 구제역 전파의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구제역 발생농가에 대한 보상처리 문제 등이 거론되며 축산농장들이 잠정 폐쇄 단계를 밟고 있지만, 4대 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한 실직 종업원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급한 나머지 전국으로 흩어지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들이 대다수인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그는 "극소수의 농장주들은 살처분 보상금으로 1~2년 정도 호황을 누리거나 재기를 노릴 수 있겠지만 대부분 농가들은 많은 부채로 인하여 살처분과 함께 다시는 일어설 여건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하였다.

다음 글은 천안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씨가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

저는 천안에서 15년째 돼지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50대의 축산 종사자입니다. 과거에는 직접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었지만 참담하게 실패를 겪은 끝에 지금은 다른 사람이 경영하는 양돈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 구제역이라는 질병이 터지면서 크게는 나라의 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생활인으로서 받는 압박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다. 97년인가 대만에서처럼 나라 안의 모든 돼지를 파묻는 상황이라도 된다면 양돈이라는 사업체를 경영해온 사업주들도 그렇지만 그 안에서 목을 매고 어려움을 참아가며 생활을 영위해온 많은 종사원들은 갈 곳마저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살아오면서 느끼는 바로는 나름대로 경제적인 여건도 되고 사업으로서의 수완도 있는 사람들이 전망을 좋게 보면서 경영하는 것이 양돈장일 수 있겠지만 거기에서 종사하는 인력들은 그러한 생각이나 여건을 가진 젊은 층은 많지 않은 현실이고 대부분 인생유전에 다름없는 어려운 지경까지 몰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종사자들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고 사업주의 어려움이나 선택으로 4대 보험에 가입되지도 않아 실직이 될 경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생활은 물론 거의 재취업이나 이직에도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물론 더 많은 종사인력인 외국인들의 경우에도 다를 바가 없는데 그나마 정식으로 등록된 인력들은 낫겠지만 절반이 넘는 불법체류자들은 또 다시 절박한 상태에서 아무런 일거리나 돈벌이를 위하여 여기저기 흩어지거나 흘러들어가게 되어 당국자들이 늘 지적하고 염려하던 것처럼 우리 국가의 불안한 요소를 더욱 키우는 이유 중 하나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 발생지역에서는 해당 가축을 실제로 생매장하면서 이루어진 보상과정에서도 종사인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잠정 폐쇄된 사업장에서 실직된 종사원들이 자신이나 가족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다급한 나머지 스스로 알아보고 재취업하게 되겠기에 그 또한 이번과 같은 상황에서는 질병을 오히려 더욱 전파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고 봅니다. 언제나 인력이 모자라는 업계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이와 같이 발생국가에서 온 외국인이거나 말거나, 또 발생지역의 농가에서 있었거나 말거나 따지지 않던 것이 관례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기회에 제가 속한 축산업은 많은 재편이 이루어지리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선 환경에 관하여 너무나 부담스런 존재로 여겨지기에 작금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이나 생매장으로 더욱 심각한 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주변의 민원을 더욱 받게 되어 도시화되는 지역에서는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고 상당히 위축될 전망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구제역을 비롯한 전염병의 발생 책임이 있는 사업장은 강제 폐쇄를 한다거나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는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마저 나오는데 그러한 막중한 책임이나 조치는 그 인과관계가 엄중하게 다루어진 뒤에 이루어져야 하는 점인데도 불구하고 늘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방향으로 내몰리는 식인 우리 나라의 행정이나 업계 동향을 다시 한 번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어쩌면 돼지의 경우에는 살처분된 수량 때문에 살아남은 농가들은 1~2년 정도 아주 호황을 누릴 것이고 그래서 보상금을 받은 농장주들 중 몇몇은 다시금 사업을 경영하고자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농가들이 많은 부채로 인하여 살처분과 함께 다시 일어설 여건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고 그마저 '한 입도 없는' 종사인력들은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직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날에는 드디어 우리들의 나랏님께서 높으신 분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구제역에 관한 공식적인 논의를 하였다고 합니다만, 휴대폰이나 자동차 하나 더 팔아먹자고 농촌과 농민들은 몽땅 죽거나 말거나 생각도 미치지 못하시는 분들께서 어떤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주실 것인지는 전혀 기대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그저 정치적으로만 보이기에 그렇게 바라보는 내 머리나 내 눈이 잘못된 것인지.... 물론 이번 파동도 곧 수그러들 것이고 무엇이든지 매스컴에서 떠들어대지만 않으면 잊어주고 마는 너무나 고마운 우리 국민들은 이내 구제역이라는 단어를 잊어 줄 것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쇠고기 등심도 먹고 삼겹살도 먹어주고 사슴피도 마셔댈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 대한민국에서 이번 사태로 사업기반마저 어렵게 되어 쪽박신세가 된 사업주나 그나마 직장마저 잃는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구명도생하여 살더라도 그러한 아픔마저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마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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