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0대 살인이 게임 탓이라고요?"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입력 2011. 1. 6. 10:24 수정 2011. 1. 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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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던 모든 '초딩·중딩'은 '강퇴'당한다. 새벽 6시까지 다시 접속할 방법은 없다. 낙심한 초딩·중딩은 잠자리에 들거나 미루어둔 공부를 한다.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국내 모든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막는 '셧다운 제도'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이다.

이 제도가 조만간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규제 범위에 의견 차이를 보이던 문화관광체육부와 여성가족부가 최근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 이용을 규제하는 조항을 청소년보호법에 추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리니지·마비노기·메이플스토리 등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은 온라인 게임이 규제를 받게 된다.

문화관광체육부는 지난 12월17일 셧다운제 도입을 포함한 2011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청소년 약 51만명, 전체 초·중·고교생 가운데 약 7%가 '게임 과몰입' 상태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11월23일 학부모 53.6%, 교사 85.3%, 청소년 46.7%가 "청소년은 스스로 인터넷 게임 이용 습관을 통제하기 어렵다"라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셧다운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학부모 단체 등 청소년들의 게임 규제에 찬성하는 시민단체는 이번 정부 대책을 대체로 반겼다.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은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잠을 자야 한다. 게임 시간 규제는 문화 향유권 규제가 아니라, 그들의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윤무영 일부에서는 '셧다운' 제도가 청소년의 건강을 보장한다며 환영한다.

셧다운 제도 정당성·효용성 의문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12월22일 문화연대가 주최한 청소년 토론회 '청소년 게임 이용의 법률 규제, 무엇이 문제인가'에 참석한 김성호군(14)은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공부시키며 우리의 잠과 건강을 해치는 학교·학원·학부모, 입시 경쟁 위주 사회가 갑자기 청소년의 건강권과 수면권을 보장해준다며 게임 규제를 얘기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태균 평등학부모회 대표도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는 원인은 과도한 학습과 경쟁, 대안 놀이 인프라 부족 등이 원인인데, 무조건 게임 규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배가 가려운데 등을 긁는 격이다"라고 말했다.

셧다운제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네트워크에 접속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만 규제받을 뿐 PC 게임과 비디오 게임 등은 아무 제재를 받지 않는 데다가, 주민등록번호 도용과 외국 계정 생성 등으로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자주 서든어택 같은 온라인 게임을 즐긴다는 강희민군(13)은 "중학생쯤 되면 웬만한 애들은 부모님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성인용 게임에 접속한다"라고 말했다.

정당성과 실효성을 떠나, 왜 하필 이 시점에 셧다운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게 됐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게임에 중독됐다고 알려진' 10~20대가 부모나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최근 자주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손쉽게 청소년의 게임 규제가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은 11월29일 < kbs뉴스라인 > '청소년 게임 중독 대책은?' 코너에 출연해 "만약 셧다운 제도가 더 일찍 실시됐다면 지난 11월16일 부산에서 일어난 게임 중독 중학생의 모친 살해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이런 사건은 심리적·사회적 조건 등을 다층적으로 따져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단면적으로 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장씨는 "최근 게임에 중독되거나 교사에게 반항하는 학생 사례가 청소년 담론을 지배하면서 사회 내에서 청소년들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넘어 '규제받아야 할 비행집단'으로 규정돼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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