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1인출판' 모두가 저자? 아무나 저자?

2010. 11.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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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자출판시대 디지털 책시장 성공 여부 설왕설래

이용호씨(28)는 저자다. 얼마 전 그의 책이 나왔다. 제목은 <공포에 대한 6가지 이야기>. 지난 11월 2일, 판매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한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11월 5일 현재 주간종합 58위, 공포 장르 부문에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읽을 수 없다. 전자책이기 때문이다.

<공포에 대한 6가지 이야기>는 인터파크 전자책 코너에서 팔리고 있다. 가격은 900원. 평균적인 일반 종이책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전자책의 경우 한 달 동안 100개가 팔리는 일도 많지 않은데, 그의 책은 11월 2일 하루 만에 300개가 팔렸다. 첫 책으로는 매우 성공적이다.

이씨는 PC통신 시절 '어둠의 저편'이라는 이름의 나우누리 공포소설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공포소설에 대한 관심은 진작부터 있었던 셈이다. 정작 인터넷 시대에 웹으로 진출한 것은 채 1년이 안 됐다.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자신이 직접 들었거나 들은 이야기에 상상력을 가미한 공포 이야기를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포털사이트 네이트로 옮겨 '나와 귀신 이야기'를 연재했다.

이번에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조회 수 100만을 넘어섰다. 올해 9월에는 웹진 <문장> 장르 소설부문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이씨가 자기 콘텐츠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애초 계획은 기존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것이었다. 혼자서 출판사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그만뒀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인터넷 상에서 상당수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해도 기존 출판시장에서 그는 무명에 가깝다. 출판시장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작가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작용했다. 다른 하나는 전자책시장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이씨는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같은 태블릿PC 보급이 확산되면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뉴스를 통해 전자책 출판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전자책으로 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껏 쌓아둔 공포 이야기 콘텐츠 중 네티즌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던 것들만 뽑아내 전자책 출판사이트에 넘겼다. 텍스트 형태의 원고를 전자책 포맷 표준인 이펍(epub)으로 바꿔 전자책으로 만드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김선태씨(67)는 기성 동화작가다. 1968년에 등단해 교사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11권의 동화책을 출간했다. 그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과 그동안 써온 동화 등 책으로 치면 120여권 분량의 콘텐츠를 갖고 있다.

하이퍼텍스트·동영상 다양한 실험

김씨가 전자책 출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새롭게 시도한 동화 형식을 기존 인쇄출판에서는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5월 한 문학지에 자신이 쓴 동화를 게재할 생각이었다. 결국은 싣지 못했다. 그가 쓴 원고가 여러 개의 결말을 갖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갈등과 선택의 지점이 있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면 작가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밀고나간다. 당연히 결론도 하나다. 내가 쓴 원고는 갈등의 분기점에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복수의 결말을 갖는 구조였다"면서 "그러다보니 인쇄출판 매체에는 어울리지 않아 디지털 출판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그는 전자책 출판사이트에 자신이 쓴 동화책 다섯 권의 원고를 넘겼다.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들도 전자책 콘텐츠가 되기에 충분하다. 차승현씨(53)는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 2007년부터 2008년 사이에 보낸 편지들을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얼마 전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차씨는 15년 전에도 책을 낸 적이 있다. <초보아빠 고참되기>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담은 책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등장으로 전자출판이 활성화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자책을 냈다.

진입장벽 낮고 수익배분 비율 높아

전자책 출판의 장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콘텐츠만 있다면 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인쇄출판에 비해 훨씬 간편하다. 콘텐츠가 전자책 형태로 탄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이틀을 넘기지 않는다. 비용 면에서도 인쇄출판의 장벽은 높다. 10여권이 넘는 동화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김선태씨는 "만약 개인 블로그에 올려놓은 내용을 기존 출판사에서 자비 출판 형식으로 출판할 경우 최소 400만원은 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자책 출판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 저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 부담은 없다. 국내에서 저자와 전자책 출판사이트는 대부분 전자책 콘텐츠 판매 수익을 5대 5로 나눈다. 전자책 출판사이트는 이 수익을 다시 인터파크 같은 유통채널과 나눈다. 저자가 스토어에 콘텐츠를 직접 올리는 아이북스의 경우 애플이 콘텐츠 판매 수익의 3할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저자 몫이다.

IT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친밀도가 필요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60대인 김선태씨의 경우를 보면 된다. 김씨는 도스 시절에 잠깐 컴퓨터를 배운 것이 그가 가진 IT 지식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김선태씨와 차승현씨는 아이패드는 물론이고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자책 출판을 고려하는 이들이라면 꾸준히 콘텐츠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이용호씨, 김선태씨, 차승현씨는 모두 인터넷에 꾸준히 글을 올려 왔다. 이용호씨는 게시판 형태의 웹과 포털사이트에 자기 콘텐츠를 올려 왔고, 김선태씨는 그동안 써온 동화 원고를 갖고 있는 데다 따로 블로그도 갖고 있다. 차승현씨는 블로그 내용을 고스란히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전자책 출판은 분명 평범한 사람들이 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인터파크와 제휴한 전자책 출판사이트인 '북씨'의 박용수 대표는 "우리는 한 권을 1만명이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1만명이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면서 "책을 낸다는 것이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면 앞으로는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로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 초 1인 출판사 이펍팩토리를 세워 전자출판을 하고 있는 유찬웅 대표도 "대중들이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판의 용이함과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다. 전자책 콘텐츠는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지난 9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북씨의 경우 매달 150여권의 전자책을 만들어낸다. 출판 종수로만 치면 기존 출판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질적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담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박용수 대표는 "저자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 게다가 일반 인쇄출판물과는 달리 언론매체에서 리뷰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호씨의 전자책이 많은 호응을 얻은 데는 그가 기존 인터넷 사이트에서 상당수의 고정독자들을 갖추고 있었다는 이유가 작용했다. 이씨는 "전자책을 만들 결심을 하고 대략 전자책이 나오기 한 달 전부터 그 사실을 알려 입소문이 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처럼 조회 수 100만이 넘어가는 콘텐츠를 갖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 전자출판사 설립

진입장벽이 앞으로도 계속 낮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느냐도 의문이다. 유찬웅 대표는 "콘텐츠의 양이 많아질 경우 주목 받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지금처럼 텍스트에 이미지를 결합하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안 된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가 보급되면 풍부한 이미지는 기본이고, 동영상 콘텐츠까지 결합된 전자책들이 나올 것이다. 그 정도 수준의 전자책을 만들어내려면 개인보다는 전문인력을 갖춘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출판사가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이 책을 내거나 1인 출판사를 꾸려가는 초기 비용은 기존 인쇄출판 방식보다 훨씬 적게 들겠지만,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지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유 대표는 그러나 "기존 출판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저자들이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얼마 전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가 G2010이라는 전자책 출판사를 설립했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기 책을 직접 전자책으로 출판하겠다는 것인데, 국내에서도 지명도 있는 저자들이 뛰어든다면 저자는 출판사에서 받는 인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독자는 훨씬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된다.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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