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씨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2010. 10. 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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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민호 기자]

타블로는 자신의 학력 논란을 증명하기 위해 졸업 후 처음으로 스탠퍼드를 찾았다.

ⓒ MBC 화면캡쳐

어느 날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타블로의 스탠퍼드 학력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타블로가 사실은 스탠퍼드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코웃음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주장을 편 누리꾼이 하나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를 내놓기 시작한다. 어라? 이거, 읽어보니 그냥 헛소리가 아니네?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찾자고 드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예능에 나와서 말한 과거의 에피소드들이 주된 타깃이 됐다. 2002년 월드컵 전에 한국에서 1년간 학원 강사를 했다는데, 그땐 그가 스탠퍼드에 재학하던 시절이었다. 스탠퍼드에 다니면서 어떻게 학원 강사를 할 수 있나? 또, 세계적인 명문대인 스탠퍼드를 글쓰기 실력만으로 갔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른바 '타블로 온라인'은 그렇게 시작됐다.

결론부터 얘기하고 넘어가자. 지난 1일 MBC에서 방영된 <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 > 로 인해 그의 학력 논란은 사실상 종결됐다. 타블로는 직접 스탠퍼드에 찾아가 자신의 졸업 여부를 증명해줄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타블로가 스탠퍼드를 다녔으며 졸업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주장하던 반박자료들을 차례로 논파했다. '타블로 온라인'은 끝났다.

타블로는 철저한 피해자였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까지 오기까지 타블로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가래로 막을 거 호미로 막는다는 말이 있듯이, 타블로는 이번 학력 논란을 초기에 진화할 수 있었음에도 다소 사태를 방관한 부분이 있다. 미적대는 그의 대응으로 대중들은 "뒤가 구리니까 그런 것 아니냐"는 더 큰 의문을 갖게 됐고, 이로 인해 중립적이던 이들도 그를 의심하는 쪽으로 기울게 됐다.

안일했던 타블로의 초기 대응은 논란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스탠퍼드의 '토바이어스 울프' 교수는 타블로의 주장이 사실임을 밝혔다.

ⓒ MBC 화면캡쳐

그러나 타블로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본다면 그의 대응이 안일했던 것도 이해는 간다. 나는 스탠퍼드를 나온 게 맞는데, 왜 그걸 증명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 충분히 들 수 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대학교를 나온 게 맞는데, 누군가 사람들에게 "그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졸업증명서를 떼다 주겠는가, 헛소리로 치부하고 말겠는가.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2008년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으로 연예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사실이 드러났고 대중들은 충격받았다. 그리고 그 불똥은 타블로에게도 튀어, 그의 학력도 위조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타블로 측은 학력위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야기는 쉽게 사그라졌다. 어쩌면, 타블로는 이번 일 역시 그때와 같이 간단하게 마무리 지어질 것이란 생각을 했을 수 있다.

타블로가 잘못한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순진하다는 것이다. 미련할 정도로 순진했다. 그는 이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가지는 의미를 잘 몰랐다. 그는 사람들이 스탠퍼드 졸업장을 가진 힙합 가수로 자신을 보고 있음을 몰랐다. 난 그가 그걸 몰랐다고 생각한다. 알았다면, 일을 이렇게 키울 수가 없다. 알고도 그랬다면 그건, 바보다. 그런데 타블로가 바보일 리는 없으니, 몰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남 엄마 가라사대,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고, 가수가 노래만 잘 부르면 되지, 대학도 잘 나와야 하나? 물론 그럴 필요 없다. 송강호, 서태지가 명문대 나왔나? 그건 아니다. 그러나 명문대 나와서 연예인하면 덕 보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태희, 서울대 덕 봤다. 김정훈, 서울대 치대 덕 봤다. 서경석과 이윤석, 서울대와 연세대 나온 덕 봤다. 이건 부인할 수 없다.

최근 가수로 활동 중인 개그우먼 출신 곽현화, 인터넷에 기사 뜰 때마다 주된 타이틀이 무엇이던가. '이대 나온 여자'다. 아역 출신 탤런트 이인혜가 왜 '엄친딸'로 유명한가. 고려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쟤는 연예인인데 공부도 잘했대." 이 말 한마디가 무한한 이미지 상승을 불러온다. 연예인들은 학창시절 끼를 주체 못해 공부는 뒷전일 것이었으리란 일종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므로.

타블로에 대한 우리들의 '열폭'

누리꾼들이 타블로에 대해 쓴 악플들.

ⓒ MBC 화면캡쳐

그런데 타블로, 무려 스탠퍼드다. 이건 서울대를 넘어선다. 후광에 눈이 부신다. 스탠퍼드가 어떤 곳인가. 하버드, 예일 등과 함께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톱클래스의 명문대 아니던가. 그런데 거길 빌빌대다 겨우 졸업장만 딴 것도 아니고, 무려 '석사'로 마쳤단다. 그것도 학점은 거의 만점으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게다가 이 친구, 캐나다 시민권자라 군대도 안 간다네. 대한민국 남자의 절반은 미필이요, 나머지 절반은 예비역인데, 이건 둘 다 못 견디는 일 아닌가. 학창시절 공부 잘해 최고 명문대 나와, 음악에 재능 있어 가수하며 돈 왕창 벌어, 거기에 유명한 영화배우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지. 외관상 완벽해도 너무 완벽한 거라. 이쯤 되면 이제 우리네 심정은 '열폭(열등감 폭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사람들, 잘 나가는 놈 나서서 발 걸어 넘어뜨리지는 못해도, 그놈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땅바닥을 뒹굴면 그거 보고는 재미있다고 웃는다. 왜? 차마 발 걸 용기는 없지만, 웃는 건 옆에 있는 놈들 뒤에 서서 조용히 할 수 있으니까. 익명성에 기대 남의 불행을 조롱하는 일 정도는, '양심'에 크게 위배되지 않으니까. 누구에게나 양심의 마지노선은 있는 법이고, 대다수 사람들에겐 딱 그 정도가 양심의 마지노선이니까.

'타블로 온라인'에 참가한 숱한 누리꾼들의 마지노선은 "타블로 의심스럽네", "타블로, 진실을 밝혀라"였다. 여기서 좀 더 나가 "타블로 추방시켜 버리죠"가 마지노선인 이도 있었고, 더 나아가 "타블로와 그 가족들을 철저하게 망가뜨려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소위 '종교'의 영역에 들어선다. 외부의 말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내가 하는 말만 진리가 되는 경지. 의심할 바 없는, '종교'다.

종교의 영역에 들어선 이들은 내버려두자. 그 사람들은 종교의 영역에서 할렐루야 외치며 자신들의 진리에 파묻혀 살다가 사법부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그 때 가서야 정신을 차릴까, 지금으로선 '쇠귀에 경 읽기' 밖에 안 된다. 문제는 나머지다. 익명성에 기대 뒤에 숨어서 킬킬거리던 우리들. 여기서 우리들이라고 말한 건 나 역시 잠시나마 타블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타블로 온라인'이 끝난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는 타블로.

ⓒ MBC 화면캡쳐

우리는, 열폭했다. 아니라고? 타블로가 스탠퍼드 이미지로 연예인 생활에 얼마나 큰 덕을 봤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타블로는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친 거 아니냐. 이건 열폭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공급자이자 상품인 연예인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였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가?

물론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타블로가 스탠퍼드 성적표를 공개했던 시점에서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둬야 했다. 초기에는, 그럴 수 있었다. 타블로가 안일하게 대응했으므로.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나서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타블로가 성적표를 공개했대. 그런데 '씰(seal)'이 이상하다나? 그럼 그것도 위조된 거네. 논문번호하고 여권 공개해라. 그럼 믿을게.

종교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타블로 온라인'은 끝났다. 이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타블로 스탠퍼드 나온 거 맞대. 그래? 그럼 됐네. 이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될까? 그럼 책임은 누가 지나? 종교의 영역에 계신 분들이? 물론 그 사람들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 우리도 일부는 나눠서 져야 한다. 따라 웃고, 손가락질했으므로. 그 손가락질에 타블로는 집 밖에 나가길 꺼릴 정도로 아파하고 힘들어했으므로.

큰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딱, 한마디면 된다.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된다. 트위터든 블로그든 미니홈피든 포털사이트 댓글이든 '온라인'이라면 어디라도 좋으니 그 한마디만 하자, 진심을 담아. 그 사과를 보고 타블로가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게. 그게 지난 몇 개월 '타블로 온라인'에 동조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부터 시작하련다. 타블로씨,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쉽진 않겠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좋은 음악 들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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