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잡은 고등학생 "게임에서 하던 것과 달리.."

2010. 6. 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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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주연 기자]고등학교에 각종 무기들이 등장했다. 분당 600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M60 기관총, 최대 2600m까지 나가는 M16 소총, 엄청난 화력을 지닌 박격포 등이 일렬로 전시된 운동장엔 군인들도 보인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치며 실탄 없는 총의 방아쇠를 당겨보게 했다. M60 방아쇠를 당긴 한 학생의 어깨가 반동으로 들썩였다. 군인은 학생에게 "호흡을 멈춘 채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도방위사령부 57사단이 실시하는 '6.25전쟁 60주년 현역지휘관 청소년 안보교육'이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 경동교등학교에서 열렸다. 학교 운동장에 군 장비가 전시된 가운데 현역군인에게 소총 사용법을 교육받은 학생이 직접 소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현역군인에게 M60기관총 사용법을 교육받은 학생이 직접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80년대 교련 수업의 모습이 아니다. 21일 오후 서울 경동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안보교육' 현장이다. 국방부가 마련한 '안보교육' 행사는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기획 되었다. 학생들에게 6·25 전쟁에 대해 알리고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기체험'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M16 소총 방아쇠를 당겨보고는 "신기하다"며 총 주변을 떠나지 않던 윤재국(19)군은 "이 행사를 왜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국일(19)군은 "곧 전쟁 터질지도 모르니까 교육시키려고 체험하는 거 아니냐"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왜' 하는지 모른 채 총을 접한 학생들은 단순한 '흥미'에 총을 쏴 보았다. 학생들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웃었고, 방독면을 쓰고 25kg 군장을 멘 친구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K-2 소총을 쏴본 김동엽(17)군은 "게임에서 하던 것과는 달리 진동도 느껴지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폭력적인 게임을 통해 전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던 아이들에게 '무기체험'의 기회까지 준 셈이다.

이러한 '안보교육'에 대해 '전쟁없는세상' 여옥 활동가는 "이런 교육이 전쟁을 더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해 도리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보교육'은 없고 '무기체험'만 남은 안보교육 행사는 이날부터 일주일간 안보교육을 신청한 전국 420개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57사단 소속 김해근 중령은 이날의 체험 교육에 대해 "군과 학생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자평했다.

▲ 소총 다루는 법 교육받는 고등학생들

현역군인들이 학생들에게 소총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 권우성

현역군인이 학생들에게 M60 기관총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 총알은 없지만... 위험한 장난

학생들이 실제 소총을 들고 친구를 향해 사격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남침'이라 누누히 강조해도 '북침'이라 손드는 아이들

안보교육 행사에는 체험 뿐 아니라 '한반도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주제의 강연도 강당에서 이어졌다.

강연에 쓰인 육군 홍보 동영상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 재래식 무기로 한반도 안보에 위협", "힘이 없으면 멸망, 힘이 있으면 생존", "끊임없는 대남 도발 이어가는 북한, 가장 최근 사례는 천안함"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에 대한 강조는 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졌다.

학교는 이러한 교육을 왜 신청한 것일까. 경동고등학교 김종원 교장은 "안보 특강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오늘 행사를 마련했다"며 "애국심을 가지면 위기에 닥쳤을 때 목숨 바쳐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라에 위기가 터지면 나가서 싸우다 죽으라는 마음으로 내 자식도 군대에 보냈다"며 "부모 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군 당국의 계획대로라면 아이들은 이 강연을 듣고 '애국심에 고취' 되어야 할 터, 하지만 아이들은 집중하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물을 마시러 자리를 떴고, 의자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으며, 뒤를 돌아 친구와 떠들었다. 강연에는 귀를 닫은 채 책을 펴들고 공부 삼매경에 빠진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수도방위사령부 57사단이 실시하는 '6.25전쟁 60주년 현역지휘관 청소년 안보교육'이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 경동교등학교에서 열려 김해근 중령이 안보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도중 김 중령이 학생들에게 '6.25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문제를 내고 있다. '북침'이 정답이라는 질문에 손을 든 일부 학생들은 '북한이 침략을 해서 북침이다'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 권우성

학생들의 주목을 잠시 끈 건 퀴즈시간이었다.김 중령은 아이들에게 "6·25는 북침일까, 남침일까"라고 퀴즈를 냈다. 남침에 손을 든 학생은 3명 남짓, 북침에 손을 든 학생은 20여명 정도 되었다. 당황한 김 중령이 북침이라 손 든 학생에게 "북침이 뭐냐"고 묻자 학생은 "북한이 침략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이해가 간 듯 김 중령은 "우리가 북쪽으로 쳐들어간 것이 북침"이라며 "정답은 남침"이라고 설명했다. 김 중령은 다시 '남침인지 북침인지' 물었다. 아직도 북침이라고 손을 든 학생이 2명 있었다. 김 중령이 왜 북침이라고 하느냐 묻자 학생은 얼버무린 채 답을 하지 않았다.

'남침'이라고 누누이 강조했음에도 여전히 '북침'이라 손드는 학생에게 놀란 듯 잠시 말을 잊은 김 중령은 서둘러 강연을 이어갔다.

학생들은 더위에 지치고, 강연자는 무관심에 지치고

안보교육이 진행되는 체육관이 무덥고, 스피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등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자거나 책을 꺼내 공부를 하며 안보교육에 집중하지 못했다.

ⓒ 권우성

강연 전에 육군 57사단에서 나누어준 보도자료에 적힌 대로라면 "김 중령이 강단에 올라서자 처음 보는 장교정복을 본 학생들에게서 감탄사가 나왔"어야 했고 "동영상 시청 간에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사뭇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보였"어야 했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

'안보교육'에 아이들은 "너무 덥고 지루해서" 지쳤고, 강연자는 아이들의 '관심 없음'에 지쳤다. 전혀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진땀깨나 뺀 김 중령은 경동고의 한 선생님에게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겠다"며 "모두 군대로 보내시죠"라며 자리를 떴다.

'전쟁없는세상' 여옥 활동가는 이러한 강연에 대해 "전쟁이 일어났을 상황을 가정하고 전쟁에서 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만이 국가를 지킬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교육한 것"이라며 "국방부의 안보의식이 너무 좁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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