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제2의 카나리아' 희생을 막아야 한다"

장일호 ilhostyle@sisain.co.kr 2010. 6. 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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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비호지킨 림프종 발병 뒤 사망, 유방암 발병 투병, 화학물질 중독으로 암이나 만성질환에 걸린 환자만 200여명, 50여명의 노동자 자녀가 선천성 장애아. 하지만 회사는 "자연적인 발병이다. 작업환경과 관련 있다는 증거가 없다"라고 해명.

어디서 많이 보고 접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 사례는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중심에 선 삼성 얘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인 IBM 사례이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등 희귀암 논란은 삼성에서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삼성 보다 앞서 미국이나 영국 반도체 산업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이 회사의 초기 대응도 삼성과 똑같았다. 회사와 무관한 개인 질병이라는 것이다. IBM은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대규모 사업장이라서 자연발병일 수 있다"라고 버텼다. 삼성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워낙 많은 사람이 근무하다 보니 우연히 백혈병 환자가 눈에 띄는 것일뿐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치 삼성이 논란을 앞서 경험한 IBM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 하다. 그러나 삼성은 IBM이 이미 써 먹은 '말'만 따랐을 뿐 희귀암 논란을 거치며 IBM이 바꾼 개선책인 '행동'은 따르지 않고 있다.

시사IN은 삼성 백혈병 논란을 계기로 IBM 사례 등을 추적했다. IBM 사례와 관련해서 지난 35년치 IBM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보고서인 '기업사망자료'를 분석한 리차드 클랩(Richard Clapp)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클랩 박사는 하버드 대학 공중 보건학 석사를 거쳐 보스턴 대학 전염병학 박사를 따고 보스턴 대학 환경위생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스턴 의사 운영위원회 공동 위원장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 전문 학술지인 < 뉴 솔루션 > 명예 편집장인 찰스 레벤스타인(Charles Levenstein) 박사. 현재 메사추세츠 주립대학(로웰 캠퍼스) 작업환경학 명예교수이며 터프츠 의대 산업 보건의 외래 교수이기도 하다.

시사IN은 클랩 박사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 전문 학술지인 < 뉴 솔루션 > 명예 편집장인 찰스 레벤스타인(Charles Levenstein) 박사와도 접촉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 공중보건 생리학(산업 보건)을 졸업하고 MIT 경제학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현재 메사추세츠 주립대학(로웰 캠퍼스) 작업환경학 명예교수이며 터프츠 의대 산업 보건의 외래 교수이기도 하다.

시사IN은 또 미국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유해물질로 인한 질병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결성된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 설립자 테드 스미스(Ted Smith)도 접촉했다. 그는 전자제품 되가져오기 운동연합(Electronics TakeBack Coalition) 설립자로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Challenging The Chip) > 저자이다. 그의 부인은 반도체 노동자들을 대변해 변호사 활동을 한 아만다 허즈(Amanda Hawes)이다. 그녀는 산타클라라 노동안전보건센터(SCCOSH) 설립자이며 캘리포니아 워크세이프(Worksafe) 이사로 있다. 암이나 선천성 기형과 같은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전자산업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사IN은 이 부부에게도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

리차드 클랩(Richard Clapp) 박사는 하버드 대학 공중 보건학 석사를 거쳐 보스턴 대학 전염병학 박사를 따고 보스턴 대학 환경위생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스턴 의사 운영위원회 공동 위원장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미국 인터넷 신문인 < 허핑턴 포스트 > 에는 '그들은 카나리아였나?(Were They Canaries? The Too Short Lives of Park Ji-Yeon and Yu-mi Hwang)'라는 기사가 실렸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잇달아 숨진 박지연· 황유미씨를 다룬 기사였다. 클랩 박사는 허핑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이 어린 여성들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다"라고 정의했다. 유독가스를 탐지할 측정기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려갔다. 메탄, 일산화탄소에 매우 민감해 노출되면 쉽게 죽는 카나리아는 광부들에게는 '생명줄'이었다. 카나리아가 죽으면 광부들은 살기 위해 탈출했다. 클랩 박사는 박지연씨와 황유미씨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을 경고한 '감시병(sentinel)'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통계치로는 알 수 없는 위험과 변화를 알려주는 징후였다는 뜻이다.

'삼성 백혈병' 논란은 이미 삼성만의 문제를 뛰어넘었다. < 한겨레21 > 812호에 따르면, 네덜란드 'APG자산운용'을 포함한 8곳의 기관투자가가 지난 5월21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에게 '투자자 공동질의서'를 보냈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노동환경 안전정책과 실행에 관한 리뷰'라는 제목의 질의서를 통해 '삼성 백혈병' 논란을 질의했다. 백혈병 논란에 대한 삼성의 재조사 방침과 관련해 △언제부터 계획을 이행할 것인지 △조사 결과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조사 결과를 투자자들과 언론에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 △현재 투병 중인 사실이 알려진 전직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적 지원 등 대책이 있는지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전체적인 작업장 안전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는지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 4월15일 공장 공개 때 기자들에게 한 것처럼 의혹이 없도록 답변 한 걸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미국의 권위 있는 산업안전보건 전문학술지 < 뉴 솔루션 > 은 세계 62개 단체의 이름으로 삼성과 한국정부에 책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이 성명을 주도한 실리콘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의 테드 스미스는 시사I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IBM과 삼성의 경우 매우 유사한 사례로 본다. 이들은 비슷한 화학물질을 사용했으며, 유사한 암을 발생시켰다"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IBM 소송 당시 예방의학자로 법정에 제출할 진술서를 썼던 보스턴 대학의 리처드 클랩 박사도 시사IN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내가 이해하기로 삼성의 클린룸 노동자들이 노출된 유기용제는 IBM 노동자들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삼성과 유사한 IBM 사례는 어떤 것일까?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 방지연합(SVTC) 설립자 테드 스미스(왼쪽)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하나인 IBM에서 근무했던 많은 노동자들 역시 암 등의 질병으로 사망했다. IBM에서 희귀암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캘리포니아 산 호세(San Jose)의 IBM 산하 연구소에서 여러종류의 암이 집단 발병했다. 당시 연구 개발실 12명 중 1명이 뇌암, 2명이 임파조혈기계암, 2명이 소화기 암을 앓은 것이다. 쉬쉬하던 삼성과 달리 IBM은 자체적으로 학계와 계약을 맺고 역학연구를 의뢰했다. 지난 1996년 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 결과 기술직에서 10년 이상 일할 경우 뇌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연구자는 부서 및 직무 노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해석이 어렵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이 연구에 사용된 30여년치 IBM 노동자의 사망파일을 클랩 박사가 입수했고, 재조사를 벌였다.)

이후에도 IBM 엔지니어였던 리 레쓰는 골수종으로, 제조노동자였던 닐 오발(Nellie Ovalle)은 백혈병으로, 루시 니본(Lucy Kneebone)은 위암으로. 이들 외에도 '알려진' 200여 명의 사람들이 직업병으로 고통 받았다. IBM 노동자의 자녀가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례도 50여 건에 달했다. IBM 문제가 공론화 됐다.

2004년 비호지킨 림프종으로 사망한 짐 무어(Jim Moore)와 1993년부터 유방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앨리다 에르난데즈(Alida Hernandez)는 2003년 IBM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무어는 27년간 근무한 뒤 1993년 IBM을 나왔고, 에르난데즈는 14년 동안 일하고 1991년 퇴직했다. 그리고 2년 뒤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IBM이 클린룸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클린룸에서 계속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사가 불법적으로 독성 화학물질을 노동자에게 노출시킨 점, 암이 발생하기 전까지 몇 년씩이나 유해한 작업환경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긴 점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였다. 이들은 각종 세척 용제와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따위 화학물질을 취급했고, 이들의 작업복은 그것을 막아주지 못했다. '꿈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클린룸'에서 이들이 얻은 것은 '암'이었다.

지난 4월 미국 인터넷 신문인 < 허핑턴 포스트 > 에는 '그들은 카나리아였나?(Were They Canaries? The Too Short Lives of Park Ji-Yeon and Yu-mi Hwang)'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IBM은 "IBM처럼 큰 사업장에서는 우연히 많은 노동자들이 희귀 질환에 걸릴 수 있다" "IBM에서 일했기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없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보스턴 대학의 예방의학자 클랩 박사가 35년 동안 IBM 노동자의 사망원인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 기업사망자료 > 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IBM 노동자의 사망 원인 가운데 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 인구 집단의 수준보다 높게 나왔다. 1961년~2001년 사이 IBM 종사자 가운데 사망자 3196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클랩의 연구 결과 전체 암종에 대한 비례사망비는 남성은 106.9, 여성은 114.6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노동통계사무국의 반도체 산업 직업성 질환 통계와도 일치하는 결과다. 노동통계사무국은 2001년 전체 제조업에서 노동손실을 초래한 사례 가운데 6.3%가 질환 때문이며, 제조업 중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는 이 비율이 15.4%로 매우 높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송에서 클랩 박사가 분석해 제출한 진술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IBM 노동자들은 패소했다. 하지만 IBM은 삼성의 대응과는 달랐다. IBM은 소송 이후 위험한 화학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생산 설비를 축소하거나 자동화했고 해외로 이전했다. 적어도 자사 노동자 보호에 나선 것이다. 보험사와 회사 그리고 당사자 3자가 만나 합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산재도 IBM은 인정했다.

클랩 박사는 시사IN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소송 이후 IBM의 클린룸 작업이 자동화되고 독성물질이 안전한 화학물질로 대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IBM 노동자 쪽 소송을 담당했던 아만다 허즈 변호사도 "소송 이후 회사의 운영정보를 공유하고 다시는 비밀이 없도록 했다. 소송 당사자인 앨리다 에르난데즈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미래의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대만, 중국과 태국 등지로 옮겨와 IBM이 저지른 익숙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삼성 백혈병' 논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산업의학계가 삼성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사IN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 뉴 솔루션 > 의 명예편집장이자 메사추세츠 의대 명예교수인 찰스 레벤스타인은 "삼성 직업성 암 논란을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삼성은 피해자들에 대해 알맞은 의료와 보상을 지원해야 하며, 반드시 공정에 사용하는 독성물질과 그것의 위험에 대해 안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올림 지난 5월 24일, 미국 실리콘 밸리의 산 호세에 있는 삼성전자 앞에서 산타클라라 노동 평의회 회원 등 15명이 삼성 백혈병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레벤스타인 교수는 삼성전자가 엔지니어에게 제공한 환경수첩에 나와 있는 트리클로로에틸렌, 벤젠, 디메틸아세트아미드 등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 물질들은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며, 더 많은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독성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는 "또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노동 조건에 대한 정부의 감독 역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삼성 백혈병' 논란에 대한 삼성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재조사 방침을 밝힌 한편으로 산재 신청자들을 찾아다니며 합의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합의라는 미봉책으로 제2의 카나리아 희생을 막을 수 있을까? 박지연씨와 황유미씨를 카나리아에 비유했던 클랩 박사는 시사IN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경제나 기술이 아니며, 돈이 더 들더라도 반도체 산업에서 안전한 물질과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끔찍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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