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연설이 아닌 말을 했다

2010. 5. 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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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별기획] 1부 윤회-되살아나는 기억블로그 글로 화제가 됐던 배우 김여진…"듣는 사람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사람, 그래, 난 그런 사람들의 팬이다"

'노무현과 나'란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고작 감기로 죽을 것같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다. 고열에, 기침에, 몸살에…. 전화를 받고, 설명을 듣고, 대답을 하는 과정이 다 고역이었다. 감기약과 열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던 내게 < 한겨레21 > 은 봉창 두드리는 것과 같은 부탁을 해왔다. 사실 난 그때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 1년이 흘렀구나. 세월 참…. 그래, 그때 참 뜨거웠지. 그 거리도, 가슴도, 사람들의 눈물도.' 쓰겠다, 안 쓰겠다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잠이 들었다.

지루한 것보다 천박한 게 좋았다

나도 꽤 많이 울었었다. 가슴이 아팠다. 난 정치를 모른다. 아니 일부러라도 알려 들지 않았다. 신문도 안 보고 뉴스도 안 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쭉 그렇게 살았다. 연기만 하자. 다른 데 관심 두지 말자.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 상황은 그렇게 나를 스쳐 흘러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던가? 아니 그때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하긴 했나? 그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흐릿하게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 감탄했던 기억은 난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모든 장애를 정면 돌파해내던 힘.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했던 기억. 대통령이 된 뒤 행보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알게 되는 몇몇 말과 행보와 사건들…. 어느 대통령과도 달랐던 말. 그는 말을 했다. 늘 연설이 아닌 말을 하고 있었다. 자기만의 말투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자신의 진심과 이상과 분노와 유머를 담아 말을 했다. 가끔 뉴스를 봤다. 재미있어서. 그가 말하는 방법이 재미있어서 잠시 뉴스에 귀기울였다. 킥킥 웃을 때도 있었고, "오오, 저렇게까지?" 하며 통쾌해할 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말 때문에 그를 싫어했다. 천박하다고까지 했다. 내가 그다지 고상하지 않아서인지 지루한 것보단 좋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말은, 아니 연설은 대부분 지루하다. 뻔하게 들리고 때론 거짓말 같다. 입바른 소리 같다. 그래서 듣고 싶지 않다. 그런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과 행보가 지루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서울시청 앞 노제가 있던 날, 그 속에 앉아 울고 나서 블로그에 짧은 글을 썼다. 기사화됐고 온갖 리플이 달렸다고 한다(난 안 봤다. 주변에서 보고 얘기해주었다). 이 글을 요청받았을 때 망설였다. 두렵기도 했다. < 한겨레21 > 에 '노무현'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왠지 손해를 볼 것만 같다. 김제동씨, 손석희씨가 떠오른다. 두 사람 다 개인적으로 팬이다. 아주 좋아한다. 두 사람 다 말을 참 말답게 하는 사람들이다. 매력 있고 맛깔나게, 듣는 사람 재미있고 통쾌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난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목소리와 말투와 어법으로 드러낼 줄 아는 사람. 듣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소통할 줄 아는 사람. 화가 나게 하든 감동하게 하든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 그래, 난 그런 사람들의 팬이다. 노 전 대통령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가 어떤 생각과 이상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어떤 식으로 말하는가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던 나는 아주 감정적인 팬일 뿐이다.

연구하지 마시고 그냥 재밌게 구경하세요

이 글은 팬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글이다. 조금 그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새삼 화도 난다. 두려움 따위 알게 뭐람.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쓴다. 열이 내리기 전에. 더 두려워지고,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그분이 좋은 데 가셨으면 좋겠다. 편히 쉬고 계시면 좋겠다. 여기서야 뭐가 어찌 돌아가든 그저 맘 편히 계시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나갈 거예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어떻게든. 당신은 그저 웃으며 편히 구경하세요. 너무 몰두하지 마시고, 연구하지 마시고, 그냥 재밌게 보세요. 울지 마시고요. 아파하지 마시고요. 아셨죠? 그럼 이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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