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추락하는 중산층엔 '희망'이 없다

2010. 4. 15. 11: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경제위기·고용불안으로 빈곤층 편입… '삶에 대한 꿈' 격차도 벌어져

한국의 중산층이 70%? 정부가 잘못된 중산층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 붕괴의 원인 분석과 대책에도 방향이 어긋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계에서 보는 중산층은 30~40% 수준. 그러나 이들마저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소득격차와 고용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더욱 심각한 것은 단순히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에서는 지위 상승의 희망까지 포기하게 되는 '희망격차사회'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 대한민국에는 중산층의, 중산층으로의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3월 16일 통계청은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를 제외한 도시가구의 월 중위(中位)소득이 302만2000원이라고 밝혔다. 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를 제외한 한국 도시가구 가운데 중산층의 월 평균 가처분소득은 151만1000~453만3000원이다. 반면에 151만1000원 미만을 버는 가구는 빈곤층, 453만3000원 이상을 버는 가구는 고소득층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조세와 4대 연금 보험료를 포함한 국민 부담률이 26.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전 소득이 가구당 월 205만5782만~616만7347만원이면 중산층이란 결과가 나온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할 경우 2467만~7401만원 수준이 '대한민국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한국 중산층 70%? OECD 기준의 맹점

통계청은 이 기준에 따라 지난해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을 66.7%로 집계했다. 2003년(70.1%)과 비교하면 3.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에 빈곤층은 11.6%에서 13.1%, 상류층은 18.3%에서 20.2%로 각각 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중산층 분류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가구의 70% 안팎이 중산층이라는 통계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게다가 월 평균 151만원과 453만원 소득가구의 삶을 한데 묶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중산층을 분류하기 때문이다. OECD는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 미만을 중산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OECD 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직장인 연봉 비교 사이트인 페이오픈의 설문 결과 우리 국민은 가구당 연간소득이 5000만~7000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7000만원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OECD 가입국의 경우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OECD에 속한 국가들은 의료나 보육, 교육 등 기본적인 복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소득으로는 그 외의 것에 소비하는 추세"라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개인 소득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폭이 상당히 넓어 그 특성을 규정하기 힘든 OECD 기준 중산층 대신 '미들클래스'라는 용어를 쓴다. 미들클래스는 산업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계급으로, 노동계급과 다르고 자본가계급(기업가)과도 다르다. 미들클래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산업화 진전에 따라 대기업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계층으로, 경영이나 관리감독 등 중간경영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는 고학력과 훈련 정도, 자격증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이다. 법률가, 의사, 회계사 등이 이들에 속하며 이들은 자격증을 보유함으로써 공장노동자와 다른 보수나 사회적 신분을 지니게 됐다. 여기에 사무직(화이트칼라) 가운데에서도 승진 등 미래가 보장되는 경력직도 포함해 이들을 보통 중간계급, 미들클래스로 규정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주요인

중산층의 규정과 개념에 따라 중산층의 위기 수준도 달라진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서구 학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간계급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득·자산·직업·학력 등으로 측정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라면서 "2006년 한국사회학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핵심적 중산층은 40%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중산층의 범위와 위기 진단 또한 이런 현실적인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대한민국 중산층을 '70% 안팎'으로 보고 있는 통계청이 분석한 중산층 감소 주원인은 '고령화로 1인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은 20.2%로 2000년 15.6%보다 크게 늘었다. 이 가운데 노령화된 1인가구가 늘면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기술 발전도 빈곤층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반면에 저급 노동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편입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중산층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70% 안팎'이라는 큰 범위 탓에 분석에 있어 정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광영 교수는 "모호한 중산층 개념을 정확하게 중간계급으로 정의한 다음 그 위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면서 "중간계급이 줄어드는 것, 규모가 변치 않더라도 불안정 상태가 되는 것, 규모도 고용도 보장되지만 소득이 준 것 등을 중간계급 위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외환 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산층(중간계급)의 규모가 줄었다. 특히 사무직과 경영관리직의 변화가 상당히 컸다. 경영관리직의 경우 10년 동안 30% 가까이가 자영업이나 노동직으로 전환됐다. 또 자영업의 경우 대부분 영세상인으로 파악됐다. 신 교수는 "상당히 안정되고 성공한, 한국경제가 성장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집단이 줄어든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불안정한 사회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산층의 위기는 규모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정도 큰 요인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을 보장받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명예퇴직, 조기퇴직 등이 원인이다. 고용 불안의 정도를 보면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 비정규직 바람은 대학 시간강사 등 이전에 중산층으로 분류되던 전문직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신 교수가 지적하는 중산층 붕괴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확산이다. 중산층의 규모가 줄지도 않고 고용도 다소 안정돼 있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신 교수는 "2000년대 말 소득 차이의 주요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라면서 "1998년과 2007년에 대해 경영관리직 정규직의 월급을 지수 100으로 놓고 각종 직군의 급여 수준을 비교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한편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생기면서 소득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중산층에 대한 고용주나 자영업자와의 간극에도 변화가 있다. 1998년 당시엔 고용주와 중간계급 간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졌다.(1998년 지수 126.9 → 2007년 지수 178.6) 반면에 자영업자와의 격차는 줄었다.(1998년 지수 47.6 → 2007년 지수 78.1) 위로는 벌어지고 아래로 가까워지면서 중산층의 계급 자체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침체·희망격차사회 우려

중산층의 붕괴는 내수 기반 및 성장 동력의 약화, 빈부격차 확대 등을 초래한다. 중산층의 붕괴는 경제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급하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지만 이는 기업의 참여와 투자 활성화 등과 맞물려 있다.

신 교수는 "중산층을 살린다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고용과 소득의 안정화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것이 중산층을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일부에선 고소득자의 세금을 깎아 내수를 활성화시켜서 경기를 부양해 중산층을 두텁게 만든다고 하지만 이는 조지 W 부시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한 중산층 부양정책으로 이미 다 실패했다"면서 "고소득층은 자산이 여유롭기 때문에 소비를 할 만큼 한 사람들로, 이들의 소비 창출은 결국 국외 소비다. 세금을 깎아 주면 실제로 중산층이 아닌 고소득층, 즉 부자가 혜택을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비정규직 문제를 개별기업 차원에서 다룰 경우 기업마인드를 벗어날 수 없다"며 정부의 조정을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기업 단위가 아닌 국민경제 단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흔히 비정규직을 노동계급만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노동계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중산층에도 그런 문제가 온 것으로, 안정적인 세력들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극히 취약한 사회 안전망 확충과 과다한 가계비 부담의 요인인 사교육비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질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사교육비가 많이 들면서 교육 외 소비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집 한 채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동산에 몰리는 것이다.

남은영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OECD 국가 가운데 사회적 안전망이 잘돼 있다는 스웨덴의 경우 소득 300만원이나 500만원이나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부담하는 몫이 많기 때문에 300만원 소득의 스웨덴 사람처럼 살려면 5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 번 추락한 중산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막연한 성공 가능성이 사라지고, 게다가 그런 꿈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희망격차사회'라고 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격차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에서는 "내가 잘살 수 있다"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자식만큼은 교육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는 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대해 투자해 왔지만 비정규직 등 중산층을 붕괴시키는 환경에선 이런 희망과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하고 살아보겠다는 그런 강한 성취 동기가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었지만 이것이 사라지면 심각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에너지의 소실로 경제 회복이 더욱 더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